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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적설계론은 지적설계자를 모욕하는 행위 - 사랑니

사랑을 하게 되면 난다는 사랑니, 영어로는 wisdom tooth, 지혜의 이라고 하네요. 지혜로와졌을때 나는 이라고 할까요.
그런데 사랑니 때문에 고통을 당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어쩌면 사랑만큼 아픈 이라서 사랑니라고 할 정도로 말이죠.






위 X선 사진에서 보이는 것처럼, 사랑니는 제대로 나는 경우가 많지 않습니다. 비스듬히 나서 옆 어금니를 건드려 치통을 유발하는가 하면, 치솔이 닿지 않는 곳에 살짝 머리만 내밀어 충치균에 썩어가는 경우도 많죠.
많은 사람들이 어렸을 때 사랑니 없이도 잘 크고, 문제가 생겨 사랑니를 뽑은 후에도 아무런 이상 없이 잘 살고 있습니다. 즉 사랑니 없어도 아무런 문제 없이 사랑을 하면서 잘 살고 있습니다(혹시 wisdom tooth가 없는 사람들이 멍청하게 창조론에 현혹되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말입니다).
씹는데 아무런 역할도 못하고, 차라리 없는 것이 나은 뒷어금니를 창조주가 만든 이유는 무엇일까요? 어느 의사의 말대로 바벨탑의 저주를 아직까지 받고 있는 것일까요?

인류의 조상은 다음과 같이 오스트랄로피테쿠스를 거쳐서 서서히 진화한 존재입니다.




두개골에서 보다시피 인류의 조상은 침팬지처럼 주둥이가 튀어나온 형태였습니다. 그런데 점점 주둥이가 들어가는 형태로 진화하면서 지금의 입이 되었죠. 즉 인류의 조상에 비해 턱이 작아졌다는 - 이가 날 공간이 좁아졌다는 - 뜻이 됩니다. 이 좁아진 공간에 사랑니가 나려고 하니 여러가지 문제가 생긴 것입니다.

그렇다면 앞으로 사랑니가 진화할 - 아주 작아지거나 아예 없어지거나 - 가능성은 없을까요?
만약 사랑니가 생존에 방해되거나(음식을 먹을 수 없거나) 결혼을 할 수 없거나(외형상으로 보기 안좋거나) 한다면 가능할 겁니다. 사랑니를 뽑을 수 있는 치과기술이 없다는 가정 하에서 말이죠.

지적설계론은 지적설계자를 모욕하는 행위 - 상동기관, 상사기관



우연히 위와 같은 창조론자의 글을 본 적이 있습니다. 상동기관(homologous)이 공통된 설계의 증거라는 것은 창조론자 또는 지적설계론자들의 공통된 주장이죠.

그런데 만약 여러분이 지적설계자라면 이런 식의 설계를 할까요?

다음을 봅시다.

척추동물 앞다리
박쥐의 날개와 새의 날개는 둘 다 날기 위해 설계된 기관입니다. 만약 '공통된 설계' 운운하려면 새의 날개와 박쥐의 날개가 '공통된 설계'라고 봐야 합니다.
그런데 박쥐날개는 새의 날개가 아니라 육상동물의 앞발과 '공통된 설계'입니다.
하늘을 나는 데 훨씬 효율적인 새의 날개를 버리고, 왜 육상동물의 앞발의 설계를 바꾸어 박쥐날개를 설계했을까요? 덕분에 박쥐들은 새보다 더 힘겹게 날게 되었죠.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박쥐는 지적설계자에게 뭘 밉보였을까요?




물속에서 움직이기 위한 설계도 존재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래 지느러미(앞밮)나 펭귄 지느러미(날개)도 물고기의 지느러미와 공통된 설계가 아니라 역시 포유류 앞발, 조류 날개와 공통된 설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상동기관을 '공통된 설계'라 주장하는 것은, (비행기 날개의 설계도와 잠수함 스크류의 설계도가 이미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타이어의 설계를 바꾸어 날개와 스크류 역할을 하게 만드는 삽질을 지적설계자가 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지적설계론은 지적설계자를 모욕하는 행위 - 서혜부 탈장

사람의 내장을 싸고 있는 복막이 있습니다. 그러나 가끔 창자의 일부가 복막을 뚫고 튀어나오는 경우가 종종 생깁니다. 이런 증상을 탈장(hernia)이라고 하죠.
남자들의 경우는 '서혜부 탈장(inguinal hernia)'이라는 증상이 자주 생깁니다. 탈장이 사타구니 쪽으로 일어난 경우를 말하는 것이죠.
왜 하필 남자에게만 '서혜부 탈장'이 자주 생길까요?

태아를 관찰하면, 오른쪽 그림(스캐너가 없어서 디지털 카메라로...^^)과 같이 고환(붉은 동그라미)이 가슴 부분에서 만들어집니다.
그러나 정자라는 것이 온도에 예민해서 너무 높은 온도에서는 기형이 될 가능성이 큽니다. 그때문에 '지적설계자'께서는 태아가 자람에 따라 고환을 밑으로 내려 낭심(노란 화살표)으로 이동시킵니다. 낮은 온도에서 정상적인 정자가 만들어지게끔 하는 '지적설계자'의 배려라고 할 수 있죠. 비록 그 때문에 '남자들만 아는 고통'을 느끼게 되긴 했습니다만.

그러나 '지적설계자'께서는 한가지를 잊었습니다. 가슴과 낭심 사이에 있는 '복막' 말입니다. 고환이 낭심으로 들어가는 동안 어쩔 수 없이 복막을 뚫고 지나가야 하고, 결국 복막은 압력에 취약해집니다. 그 때문에 특히 남성에게 있어 복막이 약해지며, 고환이 지났던 길을 통해 탈장이 진행되기 쉽게 된 것입니다.

그림 및 내용 출처 : 내 안의 물고기(닐 슈빈)


그 외에도 하필 고환이 방광 앞쪽으로 내려오는 바람에 정관의 연결이 왼쪽 그림처럼 방광을 한바퀴 도는 이상한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만약 정자가 온도에 취약하다면, 아예 처음부터 낭심에서 만든다면 취약한 복벽에 의한 탈장위험도, 왼쪽 그림처럼 이상하게 꼬인 정관도 없었을 텐데 말입니다. '지적설계자'는 왜 고환을 가슴에서 만들어 낭심으로 내리는 '쓸모없는 일'을 해서 탈장의 위험에 빠뜨렸을까요?




어류의 경우, 고환은 가슴부위에 위치합니다. 이를테면 상어의 해부도를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태아의 고환이 가슴 부위에 위치하는 것은 개체발생은 계통발생을 반복한다핵켈의 실험을 지지하는 증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에서 사는 변온동물인 어류의 경우 고환의 과열을 걱정할 필요는 없죠. 그러나 뭍에 올라 항온성을 획득하는 과정에서 고환의 위치가 밑으로 내려간 것입니다. 그 와중에 구멍이 뚫려 약해진 복벽도, 방광을 도는 이상한 정관도 만들어진 것입니다.

지적설계론은 지적설계자를 모욕하는 행위 - Vitamin C

15~16세기 유럽에서는 소위 '대항해시대'가 시작되었습니다. 이전까지는 먼바다에 나가면 길을 잃기 쉬웠기에 연안으로만 다녔지만, 항해기술과 측량기술의 발달로 인해 15세기에는 먼 바다를 항해할 수 있었던 것이죠. 게다가 유럽이 아닌 다른 대륙에서 나는 특산물, 특히 인도나 동남아지역의 후추, 정향, 육두구 등을 얻기 위해 몇달에서 몇년에 걸친 항해를 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이때 뱃사람들은 많은 수가 괴혈병(scurvy)으로 고통받았습니다. 오랫동안 바다에 나가 있으면 무력감과 함께 잇몸이 헐고 이가 빠지며 고통 속에서 죽게 됩니다.
그 당시 괴혈병의 원인은 몰랐지만, 괴혈병을 어떻게 피하는지는 알고 있었습니다. 레몬즙을 먹으면 되었거든요. 다만 '신맛'이 괴혈병을 막는 줄 알고 식초를 먹이는 일도 종종 있었습니다만.(출처)


지금이야 괴혈병의 원인은 왼쪽 그림과 같은 비타민 C였다는 것이 알려져 있습니다.

이렇게 비타민 C는 생존에 필수적인 요소이기에 거의 모든 동식물들은 스스로 비타민 C를 합성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비타민 C를 합성할 수 없습니다.

원래부터 합성할 수 없었던 것도 아닙니다. 사람의 유전자를 조사해 보면, 비타민 C를 합성하는 부분이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그 유전자는 손상되어 있기에 아무런 일도 하지 않습니다.

'지적설계자'는 과연 인간에게 비타민 C 합성능력을 주려고 했던 것일까요, 아니면 주지 않으려고 했던 것일까요?

참고로 어떤 창조론자는 이렇게 설명하더군요.
노아와 그의 여덟 식구는 배 안에 들어가서 1년 17일을 살았습니다. 그들은 무려 382일을 그 배 안에서 살았는데 한 사람도 죽지 않았습니다. 처음 비타민-C의 발견 동기가 오랜 기간동안 배를 타고 다니는 선원들에게서 생긴 괴혈병에서부터라고 했는데, 노아와 그 가족들은 무려 1년 17일 동안 배에 있었는데도 괴혈병에 걸리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무엇을 뜻하는 것입니까? 그때까지는 하나님께서 맨 처음에 지어 놓으신 창조 당시의 모습대로 사람이 비타민-C를 스스로 합성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비타민-C를 따로 먹지 않아도 괴혈병에 걸리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 홍수 사건이 일어난 후에 바벨탑 사건이 일어납니다. 그 바벨탑 사건은 사람들이 하나님과 똑같아지려고 하는 교만에서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것을 용서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사건 이후 사람들의 언어가 다 다르게 만드셨지만 그보다 더 근본적인 징계를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유전자를 다시 조작하셨는데, 바로 그 비타민-C를 간에서 합성하지 못하게 하신 것입니다.

사실 성경에는 그런 내용이 나오지 않습니다. 그러나 과학자들은 인류가 맨 처음에 비타민-C를 합성할 수 있었는데 언제부턴가 비타민-C를 합성하지 못하게 되었다고 추정하였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그들은 간 속에 비타민-C를 합성할 수 있는 유전자가 있었다는 흔적을 알아냈습니다. 그런 다음 그 유전자가 과연 얼마나 됐는가를 방사선 동위원소로 추적한 결과 약 5,000년 전에 그 유전자의 기능을 잃게 된 것 같다고 추정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중요한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 바벨탑 사건이 지금으로부터 약 4,500년에서 5,000년 전에 일어난 사건인데, 하나님을 모르는 과학자들이 추정한 것과 그 시기가 너무나 잘 맞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비타민 C를 합성하지 못하는 것은 인간만이 아닙니다. 일부 영장류들과 기니피그, 인도과일박쥐들도 비타민 C를 합성하는 유전자가 손상되어 있습니다. 게다가 비타민 C 결핍으로 인한 고통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15세기, 사람들이 먼바다로 나가기 시작한 때였습니다.죄를 지었는데, 그 벌은 4000년 후에 받는다? 괴혈병으로 죽어가는 사람들이 '아, 나는 바벨탑 때문에 벌을 받는구나'라고 깨달을까요? 실제로 사람들이 괴혈병으로 죽어갈 당시 '바벨탑의 징벌'이라고 깨달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왜 받는지 모르는 벌은 벌이 아니라 고문일 뿐이죠.


진화론적으로는, 이것은 창조론자들이 흔히 말하는 '나쁜 돌연변이'입니다. 유전자에 돌연변이가 일어났는데, 하필이면 생존에 필수적인 비타민 C를 합성하는 부분에서 돌연변이가 일어난 것입니다. 원칙대로라면 이 돌연변이가 생긴 개체는 괴혈병에 걸려 도태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때 그들의 주식은 초식이었습니다. 영장류나 인도과일박쥐는 과일에서, 기니피그는 풀에서 비타민 C를 섭취할 수 있었죠. 그때문에 '자연선택'이 이 결함을 걸러낼 수 없었던 것입니다. 즉 '나쁜 돌연변이'도 살아남을 수 있다는 증거랄까요.

뱀발 : 위에서 인용한 '창조론자'는 의학교수입니다. 이전 게시물을 참조하면, 혹시나 의학교수가 비타민과 유전자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도 '잘못된 권위'냐는 물음이 들어올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충분히 권위를 가질수 있는 의학교수의 유전자 이야기에 제가 감히 딴지를 거는 것은, 그 내용이 '의학의 권위'가 아닌 '성경의 권위'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기독교의 영역에서야 성경의 권위가 태산보다 무겁겠지만, 과학의 영역에서 성경의 권위는 이솝이야기의 권위와 같습니다. 즉 성경이 진실이라고 주장한다면, 이솝이야기에서처럼 토끼와 여우 등이 서로 대화하는 것도 진실이라고 주장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저 홈페이지에는 유전자가 망가진 것이 약 5000년 전으로 밝혀졌다고 했는데 실제로 유전자가 망가진 것은 약 5000년 전(출처)이기 때문에 저는 마음놓고 저 의학교수의 권위를 부정할 수 있습니다.

지적설계론은 지적설계자를 모욕하는 행위 - 갈라파고스 바다이구아나

다윈이 핀치새를 관찰했던 갈라파고스에는 핀치새 이외에 바다이구아나도 살고 있습니다. 차가운 바다 속으로 들어가 조류와 해초를 뜯어먹은 후 육지에서 일광욕으로 차가와진 몸을 덥히는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천적이 없는 세상에서만 가능한 목가적인 나날이겠죠.

그러나 갈라파고스에 사람들의 출입이 빈번해지자 사람들을 따라온 개나 고양이가 증가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이구아나의 새로운 천적으로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새로운 천적에 대한 바다이구아나의 대응은 전혀 없습니다. 고양이가 입맛을 다시며 다가와도 바다이구아나는 그자리에서 꼼짝 않고 가만히 있습니다. 그러다가 결국 잡아먹히고 마는 것이죠.

바다이구아나를 연구한 결과에 따르면, 새로운 천적이 접근할 때 바다이구아나에게서는 스트레스 호르몬이 분비된다고 합니다(즉, 공포를 느낀다는 것입니다). 그려면서도 그 스트레스에 의한 반응 - 도망 - 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죠.

만약 신이, 천적이 없는 갈라파고스에 이구아나를 만들었다면, 그 전지전능하다는 신은 먼 훗날 인간에 의해 새로운 천적이 등장하리라는 것을 몰랐을 리가 없습니다. 그런데 왜 이구아나의 도주본능을 제거했을까요?

진화론의 설명
제가  이 '지적설계론은 지적설계자를 모욕하는 행위' 칼럼을 쓰는 이유는, 이것이 창조론의 부정증거인 동시에 진화론의 긍정증거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보는 창조론자들은 '창조자를 모욕한다고 해서 진화론이 사실이 되느냐' 같은 반응을 보이더군요.
최초에 이 갈라파고스 섬에 진출한 이구아나(해류에 밀려서든)들에게는 도주본능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 돌연변이가 일어나서 스트레스 호르몬에 반응하는 부분이 손상되었습니다.
일반적인 경우라면 이 돌연변이들은 천적에 쉽게 잡아먹혀 도태되었어야 합니다. 하지만 갈라파고스에서는 이 돌연변이를 도태시킬 천적이 아예 없었죠. 오히려 도주를 위한 기관을 만들지 않는 돌연변이들이 진화의 우위를 점할 수 있었습니다.
그때문에 '도주본능이 훼손된' 이구아나들이 남게 된 것입니다.

- 출처 : 진화에 정답이 어딨어?(외르크 치틀라우)

지적설계론은 지적설계자를 모욕하는 행위 - 벌거숭이두더지쥐

아프리카 사막지대에 벌거숭이두더지쥐(naked mole rat)라는 설치류가 살고 있습니다. 이름처럼 털이 하나도 없는 몸에, 땅 속에 굴을 파고 살고 있는 쥐의 일종입니다(사진출처).

그러나 이 벌거숭이두더지쥐의 가장 놀라운 점은, 척추동물에서는 유일하게 벌이나 개미같은 사회생활을 한다는 점입니다.

이들의 무리는 한마리의 여왕과 서너마리의 수컷, 그리고 많게는 300마리에 이르는 암컷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러나 그 중에서 생식의 권리는 여왕만이 가지고 있습니다.

여왕은 생식의 독점권을 지키기 위해 매일같이 자신의 왕국을 시찰합니다. 그리고는 만나는 다른 암컷을 사납게 공격합니다.
여왕에게 공격당하는 암컷은 아무런 반항 없이 여왕에게 짓밟힙니다. 그러는 동안 암컷의 몸에서 스트레스에 의해 분비되는 호르몬이 성호르몬의 분비를 감소시키며, 마침내 불임이 되어 교미에 흥미를 잃어버립니다. 결국 그들의 암컷들은 암흑 속에서 여왕의 구박을 받으며 2세에 대한 희망도 없이 중노동으로 점철된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비록 그들이 살고 있는 곳이 너무나 황량한 곳이라 부족한 먹이를 여왕에게 몰아주는 쪽이 번식에 유리하다고 해도, 꼭 그런 식으로 비참한 생활을 하도록 설계했을 필요가 있었을까요?

지적설계론은 지적설계자를 모욕하는 행위 - 크리스마스섬의 붉은게

가끔씩 동물관련 프로그램에서 방영하는 크리스마스섬 붉은게의 이동에 대해 아실 겁니다.







인도네시아 부근의 작은 섬 크리스마스섬에는 육지에 사는 게가 있습니다. 보통 바닷가에 사는 다른 게들과는 달리 내륙 습기찬 숲속 동굴에 살고 있는 게입니다.

그러나 이들의 산란장소는 숲이 아니라 바다입니다. 매년 우기가 되면, 수천마리의 붉은게들이 산란하기 위해 바다까지 마라톤을 해야 합니다.

8~10cm의 크기에, 한시간에 약 350m를 달리는 속도로 그들이 이동해야 할 거리는 8km에 달합니다. 단순히 계산해도 거의 하루 종일 달려야 하는 거리입니다.
단순히 달리기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때가 되면 천적들이 이 붉은게들의 행렬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게다가 우기라지만 잠시 햇볕이 나게 되면 말라죽을 위험도 생기게 됩니다.

게다가 암케들은 10만여개에 달하는 알을 뱃속에 품고 이동합니다. 이것은 생물학자들 이야기
에 따르면 사람이 5kg짜리 등짐을 지고 마라톤을 하는 셈이라고 합니다.

만약 지적설계자가 붉은게들의 서식지를 숲속 동굴로 정했다면 왜 산란지를 바다로 만들어서 수천만마리의 자신의 창조물들을 1년에 한번씩 죽음의 경주에 몰아넣을까요? 단지 인간들에게 '이동하는 붉은게 무리'라는 장관을 보여주기 위해서였을까요?

지적설계론은 지적설계자를 모욕하는 행위 - 기린의 후두신경

잘못된 설계의 보기로 기린의 후두신경 이야기는 유명하죠. 불과 3,40cm 떨어진 후두를 연결하기 위해 6미터가 넘는 신경섬유를 엮은 것 말입니다.
이번에 실제로 기린 후두신경의 그림을 구한 관계로 기사를 올려볼까 합니다.
원본은 http://shaind.egloos.com/5269843에 있는 그림이며, 후두신경 부분을 붉은색으로 다시 그렸습니다. 보시다시피 후두신경이 목을 타고 내려와 심장 부근에서 대동맥을 한바퀴 돈 후 다시 목을 타고 올라가 후두에 연결되는 모습입니다.
오른쪽의 물고기에서 붉은색으로 연결된 것이 물고기의 후두신경입니다. 물고기의 경우에는 심장과 두뇌가 가깝기에 후두신경이 대동맥과 얽혀 있어도 상관 없습니다. 그러나 진화 과정에서 이러한 구조가 유지되다 보니 기린의 경우에는 위와 같이 황당한 구조를 만들게 된 것이죠.

비단 기린뿐 아니라 말을 포함한 모든 척추동물들이 저런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만약 이것이 지적설계였다면 지적설계자는 '후두신경은 반드시 대동맥을 한바퀴 돌아야 한다'는 일종의 편집증을 가지고 있었다고밖에 생각할 수 없습니다.

지적설계론은 지적설계자를 모욕하는 행위 - 상어



모두들 아시다시피 물고기들은 아가미호흡을 합니다. 대부분의 물고기들은 입으로 물을 머금은 후 그 물을 아가미로 보내 물 속의 산소를 얻습니다. 즉 입과 아가미덮개의 근육을 이용해서 강제로 물을 아가미로 순환시킬 수 있습니다.
과학동아
그러나 그러한 호흡을 할 수 없는 물고기가 존재합니다. 상어에게는 입으로 빨아들인 물을 아가미로 보내는 근육이 없습니다. 단지 헤엄치면서 앞으로 나갈 때, 입으로 들어온 물이 아가미를 스쳐지나가면서 호흡을 할 수 있을 뿐입니다. 만약 상어가 그물에라도 걸려서 앞으로 나갈 수 없게 되면 상어는 그만 질식하게 되고 말죠. 그 때문에 상어는 끊임없이 헤엄을 쳐야 합니다. 상어를 관찰해 보면 그야말로 '잠도 자지 못하고' 24시간 내내 헤엄을 칩니다. 다른 물고기들이 산호초 속에 숨어서라도 잘 수 있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말이죠. 다른 물고기들은 호흡을 하기 위해 아가미근육만을 움직이는데 비해 상어는 호흡을 하기 위해 전신을 다 움직여야 하는 것입니다. 에너지 낭비라는 측면에서도 비효율적이죠. 과연 상어를 잘 수 없게, 그리고 단지 호흡만을 위해 전신을 움직여야 하도록 만들어놓은 것이 제대로된 설계일까요?


지적설계론은 지적설계자를 모욕하는 행위 - 고래

향유고래

모두들 아시다시피 고래는 바다에서 삽니다. 상어나 다른 물고기들과 마찬가지로 말입니다. 바다에서 가장 큰 향유고래나 바다에서 가장 영리한 돌고래처럼 바다에서는 거의 무적인 동물입니다.
하지만 고래는 다른 물고기들에 비해 치명적인 약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상어를 비롯한 다른 물고기들이 아가미호흡을 하는 반면 고래는 허파로 숨을 쉬어야 한다는 점이죠.

물론 고래는 바다속에서 허파를 가지고 살기 위해 나름대로 몇가지 장치를 가지고 있습니다. 고래 허파의 공기교환율은 90%에 달합니다. 즉 숨을 내쉴때(날숨) 허파는 들이쉴때(들숨)의 1/10로 줄어듧니다(인간의 경우 공기교환률은 20% 정도에 불과합니다.). 고래 근육의 미오글로빈 역시 산소를 저장할 수 있습니다. 그 때문에 고래는 오랜 시간 잠수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잠수를 위한 장치가 많더라도 어차피 허파호흡입니다. 평생 물 밖으로 나오지 않고 살 수 있는 상어에 비해 고래는 몇시간에 한번씩은 물 밖으로 나와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익사하는 물고기'꼴이 될 수밖에 없죠.

그뿐 아닙니다. 깊은 바다와 수면 위를 오가야 하는 고래는 잠수병에 걸릴 수밖에 없습니다. 이 잠수병은 고래 평생에 걸쳐 쌓이는 증상입니다.

상어에게 아가미를 달아줄 수 있었으니 기술이 부족했던 것은 아닐 테고, 물에 사는 동물들 중 왜 고래에게만 허파를 달아주어서 익사의 공포와 잠수병의 고통 속에 놔뒀을까요?

지적설계론은 지적설계자를 모욕하는 행위 - 팬더의 엄지

작고하신 스티브 굴드의 '팬더의 엄지'로 유명해진 팬더의 엄지 이야기입니다.
팬더의 손가락을 보면 오른쪽 그림과 같이 손가락이 여섯개임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해부학적으로 봤을때 손가락은 다섯개 뿐입니다. 엄지손가락은 손의 종자골이 변형되어 튀어나온 것입니다. 이 새로운 엄지손가락 덕분에 팬더는 주식인 대나무를 손으로 잡아서 먹을 수 있는 것이죠.

하지만 여기서 한가지 의문점이 생깁니다. 만약 창조주가 팬더에게 엄지손가락을 주려고 했다면 왜 영장류와 같은 엄지손가락을 주지 않았을까요? 왜 애매한 뼈를 억지로 변형시켜, 엄지손가락이 아닌 '엄지손가락 같은' 손가락을 주었을까요?

지적설계론은 지적설계자를 모욕하는 행위 - 가오리와 가자미

가오리와 가자미, 둘다 비슷한 습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납작한 모습을 하고 있으며 천적을 피하기 위해 바다 밑바닥에 납작 붙어 있다는 점에서 비슷한 습성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들이 바닥에 납작 붙기 위해 선택한 길은 전혀 다릅니다.

가오리는 이를테면 정석적인 방법으로 납작한 몸을 얻었습니다. 좌우대칭인 몸을 유지하며 위아래로 납작해진 것입니다. 그때문에 몸이 납작해진 것 외에는 다른 부작용이 없습니다.

하지만 가자미의 경우는 다르죠. 몸이 위아래로 납작해진 것이 아니라 양옆으로 납작해진 것입니다.

일단 둘 다 납작한 몸을 가졌으므로 바다 밑바닥에 납작 붙어서 적의 눈을 피하는 데는 이상 없습니다.

하지만 정석적인 방법으로 납작한 몸을 얻게 된 가오리와는 달리 가자미는 한가지 문제점을 가지게 되었죠. 양옆으로 눌려 납작해진 몸으로 바다 밑바닥에 붙기 위해서는 몸을 옆으로 뉘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항상 한쪽 눈이 모래에 묻히게 됩니다. 결국 가자미는 양쪽에 있던 눈을 한쪽으로 몰아버릴 수밖에 없었습니다.치어때만 해도 정상적으로 양쪽에 위치해 있던 두 눈이, 자라면서 두개골이 뒤틀리면서 한쪽으로 몰리고, 그에 따라 입까지 삐뚤어지는 현상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가오리는 정상적으로 만들었던 지적설계자는, 가자미는 왜 저렇게 비합리적으로 만들었을까요?

생명체가 만들어질 확률

종종 이런 이야기를 듣습니다

"점보제트기를 낱낱이 분해해서 큰 통에 넣어라. 그 후 그 통을 힘껏 흔들어라. 거기서 점보제트기가 완성되어 나올 확률이 생명체가 나타날 확률이다"

창조론의 저런 주장은 직관적으로 볼때 맞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요?

1. 커다란 통에 백만개의 볼트와 백만개의 너트를 넣고 백만년동안 흔들어 봅시다. 그중에 과연 하나라도 볼트와 너트가 맞춰져 나오는 것이 있을까요?
그렇다면 이번에는 플라스크에 백만개의 산소와 이백만개의 수소분자를 넣고 살짝 불을 당겨 봅시다. 모든 수소와 산소가 반응해서 200만개의 물분자가 만들어질 것입니다.
첫번째에서는 100만년이 지나도 하나도 제대로 결합되어 나오지 못하던 것이 두번째는 순식간에 모두가 결합되어 버렸습니다. 볼트와 너트는 물리적 결합인 반면 산소와 수소는 화학적결합이기 때문입니다.(그림출처)
직관적으로는 볼트와 너트가 저절로 조여지고 전선이 저절로 납땜이 된다는 것이 불가능해 보이지만 화학결합으로 구성되는 생물체는 단순히 충돌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결합이 일어납니다.

2. 진화론에서 말하는 생명의 시작은 제트엔진으로 날고 레이더로 장애물을 찾는, 수백만개의 부품으로 만들어진 점보제트기가 아닙니다. 훨씬 간단한 종이글라이더부터 시작한 것입니다. 단순히 몸체와 날개, 즉 6,7개의 부품으로 만들 수 있는 것이죠. 이것만으로도 만들어질 확률은 엄청나게 늘어납니다.
혹시나 종이를 큰 통에 넣고 흔들어도 종이가 붙지 않는다는 분은 1번부터 다시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이런 비행기보단


이런 비행기가 더 만들어지기 쉽죠.


3. 생물체의 핵심 구성성분은 '자기복제분자'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RNA는 주위에서 핵산분자를 끌어모아 자신의 복제를 만들 수 있죠. 마찬가지로 위의 종이비행기의 보기를 든다면 종이날개, 종이몸체 등은 RNA와 같이 주변에서 부품을 모아 자신의 복제를 만들어냅니다. 즉 일단 종이몸체와 종이날개가 만들어졌다면 바다 전체가 짧은 시간에 종이날개와 종이몸체로 가득 차게 됩니다. 그렇다면 몸체와 날개가 만날 가능성도 더욱 높아집니다.
이것이 생명체 전단계를 설명하는 화학진화입니다.(그림출처)



말하자면 생명체가 탄생할 확률은 점보제트기가 저절로 만들어질 확률보다 훨씬 큽니다.

지적설계론은 지적설계자를 모욕하는 행위 - 펭귄과 박쥐

지적설계론자들은 새들의 속이 빈 뼈를 증거로 내놓습니다. 새들의 뼈가 비어있어 몸이 가볍기에 날기에 쉽다고 말입니다.

하지만 똑같이 하늘을 날아다니는 박쥐를 설계할 때는 왜 그런 훌륭한 시스템을 잊어버렸을까요? 박쥐들의 뼈는 속이 가득 차 있어 새뼈에 비해 무겁죠. 똑같이 하늘을 날아다니는 동물을 설계하면서 왜 박쥐만 외면했을까요? 밤에 날아다니는 박쥐의 이미지가 별로 안좋아서? 하지만 실제로 대다수의 박쥐는 과일 등 초식성이거나 해충을 잡아먹는 유익한 동물이죠.

문제는 그뿐만이 아닙니다. 이번에는 펭귄을 살펴보도록 하죠. 아시다시피 펭귄은 하늘을 날아다는 것이 아니라 바닷속을 헤엄치는 동물입니다. 그런데도 속이 빈 뼈를 가지고 있습니다.
펭귄의 경우 속이 빈 뼈는 축복이 아니라 애물단지죠. 물 속에 들어가야 하는데 가벼운 뼈의 부력으로 잠수가 더 힘들어집니다. 차라리 속이 빈 뼈를 박쥐에게 주고 박쥐의 무거운 뼈를 받아왔으면 양쪽에 더 좋았을 텐데 말입니다. 지적설계자가 혼동을 해서 저런 일이 생겼을까요?

지적설계론은 지적설계자를 모욕하는 행위 - 눈

창조론자들은 생물의 몸이 (심지어는 아메바 하나까지도) 너무나 조화로운 구조를 가지고 있기에 절대로 '우연히' 생길 가능성은 없다고 합니다. 누군가 지적존재의 설계에 의하지 않고서는 절대로 만들어질 수 없는 것이라고 말이죠.
하지만 창조론자들이 간과하는 것이 있습니다. 만약 지적존재의 설계를 가정한다면 그 지적존재는 아무것도 모르는 풋내기거나, 부조리를 좋아하는 괴퍅한 성격, 또는 피조물의 고통을 즐기는 비뚫어진 성격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죠.

만약 여러분이 디지털 카메라를 설계한다고 해 봅시다. 우선 왼쪽과 같이 렌즈와 광센서를 설치했습니다. 여기서 광센서에 전기를 공급하고 광센서에서 감지한 것을 내보내는 전선을 추가해야 합니다.
디지털카메라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는 사람이라도 상식적으로 오른쪽 그림과 같이 전선을 광센서 뒤쪽에 배치할 것입니다. 그래야 렌즈를 통해 들어온 빛이 광센서에 잘 도달할 테니까 말입니다.

그런데 '지적설계자'가 설계했다는 눈은 이런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눈에 영양을 공급하는 핏줄과 망막에서 얻은 정보를 보내는 신경이 망막 뒤가 아니라 망막 앞에 분포해 있죠. 이 핏줄과 신경은 눈 한가운데에서 망막을 뚫고 나갑니다. '맹점'이라 부르는, 망막에서 시신경이 분포하지 않는 부분입니다. 실제로 망막을 들여다보면 이런 모양입니다.


이것이 무슨 문제가 될까요? 저 실핏줄들과 신경다발이 망막을 가리고 있기 때문에 눈이 보는 영상은 항상 그물같은 그림자가 생기게 됩니다. 그래서 눈은 1초에도 열번 이상씩 미세하게 좌우로 흔들립니다. 뇌에서는 그렇게 얻은 두개의 영상을 조합해서 실핏줄모양의 그림자를 지우죠.
하지만 사람의 일생, 50~60년동안 1초에 10번 이상씩 눈이 계속 흔들리다 보니 가끔씩 저 핏줄이 망막에서 떨어지는 경우가 생깁니다. 그렇게 되면 그부분의 망막은 영양공급을 못받아 괴사하게 되고 부분실명으로 가게 되는 경우가 생기죠.

과연 사람의 눈을 설계한 설계자는 저런 상식도 없는 풋내기일까요, 아니면 부분실명된 사람들을 보고 좋아하는 새디스트일까요?

엮인글 :

진화론 이야기 - 절반의 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