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지부조화

한국전쟁 당시 중공군의 인해전술에 의해 많은 미군이 포로가 되었습니다.
얼마 후 중공군은 그 포로들을 이용한 심리전을 행했습니다. 그 포로들이 쓴, 미국을 비난하고 사회주의를 찬양하는 글을 공개한 것이죠. 더구나 그 글은 미군 포로들이 어떤 강압도 없는 상태에서 직접 쓴 글이라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중국에서는 포로들에 대한 이런 작업을 세뇌(洗腦)라 불렀으며, 이후 'Brain washing'으로 번역되어 서구권에서도 연구대상이 되었습니다.

과연 그 미군 포로들은 어떤 세뇌를 받았기에 그런 열렬한 사회주의자가 된 것일까요?

이것에 대한 레온 페스팅거(Leon Festinger)의 실험이 있습니다.

피실험자를 두 모둠 ㉠과 ㉡으로 나누고 그들에게 아주 지루한 작업을 시킵니다. 그 이후 다른 사람들에게 '아주 재미있는 작업을 했다'라고 말하게 합니다. 그 보상으로 ㉠의 사람들에게는 20달러를, ㉡의 사람들에게는 1달러를 주었습니다.

나중에 피실험자들을 모아 그 실험에 대해 이야기를 한 결과, ㉠모둠의 사람들보다 ㉡모둠의 사람들에게서 '아주 재미있는 작업이었다'는 말이 더 많이 나왔다고 하더군요.

두 모둠 다 재미없었던 작업을 '아주 재미있었던 작업이었다'라고 거짓말을 했습니다. 하지만 ㉠의 사람들은 20달러를 받고 거짓말을 한(자신의 양심을 20달러에 판) 반면, ㉡모둠의 사람들은 불과 1달러를 받고 거짓말을 한(자신의 양심을 단 1달러에 판) 것이 되겠죠.
자신의 양심의 값이 1달러밖에 안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모둠 사람들에게 차라리 '아주 재미있는 작업이었다'는 거짓말을 진실로 인식해 버리는 현상 - 난 거짓말을 한 것이 아니다. 실제로 재미있는 작업이었기에 재미있었다고 한 것이다 - 이 더 많이 일어난 것입니다. 이것을 인지부조화(cognitive dissonance)라고 이름붙였죠.

위에서 말한 미군 포로들의 세뇌도 마찬가지입니다.
중공군은 먼저 미군들에게 '미국은 나쁜 나라다'라는 글을 쓰게 합니다. 그리고 그 글을 쓴 사람에게 담배 한갑 따위 사소한 보상을 하죠.
여기서 미군 포로들은 딜레마에 빠집니다. 자신의 조국을 담배 한갑에 팔았다는 자괴감에 빠지는 것입니다. 차라리 동료의 생명을 구했다거나 미국의 승리를 위해서라는 거창한 보상이면 덜했겠지만 말이죠.
이 자괴감에서 벗어나는 가장 쉬운 방법은 '나는 조국을 담배 한갑에 판 것이 아니다. 내 조국이 실제로 잘못되어 있기에 그런 글을 쓴 것이다'라는 인지부조화에 따른 자기합리화(Self Justification)입니다.
이 자기합리화 이후로는 중공군의 강압 없이도 스스로 미국의 모순점을 찾아 비난하는 단계로 접어드는 것입니다.

이런 자기합리화가 잘못된 믿음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입니다. 그리고 잘못된 믿음을 오래 가지고 있던 사람일수록 그 믿음을 버리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정명석이라는 성범죄자가 구속된 이후에도 jms교단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사람들은 이해를 못하죠. 왜 아직까지 저런 인간말종을 떠받들고 있냐구요.
만약 그들이 정명석이 강간범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면 자신들은 '강간범을 숭배하고 있는 멍청이'라는 사실 역시 인정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차라리 정명석을 '세속권력에 핍박받는 선지자'로 인지하는 쪽이 자신들의 자괴감이 덜하기 때문에 인지부조화현상을 겪게 되는 것입니다. 그때문에 누가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정명석을 옹호해주며 jms에 충성을 다하는 것이죠.

현재 우리나라의 뉴라이트라는 집단도 마찬가지입니다. 제정신이라면 '매국노의 후손'이라는 자괴감에서 벗어나기 힘들겠죠. 그래서 나온 것이 '일제시대 덕분에 우리나라가 잘 살게 되었다. 그런 일제시대를 가져온 것이 우리 조상이다'라는 인지부조화에 빠져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일제시대가 우리나라에 축복이었다'는 사실을 말 그대로 깊이 믿고 있는 것이죠.

창조론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사람들 역시 마찬가지죠. '엉터리 창조론에 빠져있던 멍청이'가 되기 싫어서 한사코 진화론의 증거를 외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덧 : 혹시 이 글 보고 참솔이란 놈도 '엉터리 진화론에 빠져있는 멍청이'가 되기 싫어 한사코 창조론을 외면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고 하는 창조론자가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아니 확실하게 있을 겁니다)
늘 하는 말이지만 진화론은 '이해의 대상'이지 '믿음의 대상'이 아니죠.

우연과 필연

다음 그림처럼 시소 위에 7개의 구슬이 정확하게 평형을 이루고 있습니다.
1. 어느 순간 '우연히' 노란색 구슬이 오른쪽으로 살짝 움직였습니다.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우연히 오른쪽으로 살짝 움직인 노란색 구슬 때문에 전체적인 무게중심이 오른쪽으로 약간 이동하고, 따라서 시소가 약간 오른쪽으로 기울 것입니다. 그와 함께 시소에 기울기가 생겼으니 7개의 구슬이 오른쪽으로 굴러내리기 시작하겠죠.
그에따라 시소는 더욱 오른쪽으로 기울어지고 구슬이 굴러내려가는 속도는 점점 빨라질 겁니다.
마침내 7개의 구슬은 모두 떨어져 바닥에 굴러다니고 시소는 다시 평형을 이루게 될 겁니다.


2. 이번엔 어느 순간 '우연히' 왼쪽에 하강기류가 생겼습니다.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우연히 왼쪽에 생긴 하강기류에 의해 시소가 약간 왼쪽으로 기울 것입니다. 그와 함께 시소에 기울기가 생겼으니 7개의 구슬이 왼쪽으로 굴러내리기 시작하겠죠.
그에따라 시소는 더욱 왼쪽으로 기울어지고 구슬이 굴러내려가는 속도는 점점 빨라질 겁니다.
마침내 7개의 구슬은 모두 떨어져 바닥에 굴러다니고 시소는 다시 평형을 이루게 될 겁니다.

1번과 2번은 각각 전혀 다른 우연이 발생했습니다. 하지만 두가지 전혀 다른 우연의 결과는 어떨까요?
'우연히' 움직인 공이 어떤 공이든, '우연히' 움직인 방향이 어떤 방향이든, '우연히' 일어난 바람이 어떤 쪽이든 그 '우연'의 결과는 '필연적'으로 '7개의 구슬은 모두 떨어져 바닥에 굴러다니고 시소는 다시 평형을 이루게 된다'로 귀결됩니다.

이것이 바로 창조론자들이 멋도 모르고 주장하는 '우연히 생물이 생기고 우연히 개와 고양이가 생기고 우연히 인간이 생겼다'고 알고 있는 진화의 실체입니다. 진화에 우연이 개입하는 것은 틀림없지만, 그 우연은 오로지 필연을 일으키기 위한 방아쇠 역할을 할 뿐이죠. 바로 이 블로그에서도 몇번이나 다루었던 자기조직화에 의해서 말입니다.

이를테면 창조론자들은 모든 생명체가 L형 아미노산들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을 지적하며 '우연히 L형 아미노산만이 생겼다는 것이 말이 되느냐'라고 합니다.
최초 지구의 바다에서 유기물이 합성되었을때에는 L형 아미노산과 D형 아미노산이 같이 합성되었을 겁니다. 그러나 그중에 L형 아미노산이 '우연히' 약간 더 많이 합성되었기에 필연적으로 L형 생명체로 자기조직화된 것입니다.
만약 그때 '우연히' D형 아미노산이 더 많이 생성되었다면 인간을 비롯한 모든 생명체는 D형 아미노산으로 이루어졌을 것이고, 창조론자들은 '우연히 D형 아미노산만이 생겼다는 것이 말이 되느냐'고 불평할 테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