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미와 아이언맨

마블히어로영화로 아이언맨이 처음 나왔을때 누군가가 이런 질문을 하더군요.

중국산 짝퉁 아이언맨

보통 군인들은 소총이면 소총, 대전차미사일이면 대전차미사일 등 전문화된 한가지 무기만 들고 다니는데 아이언맨은 왜 수많은 무기들을 동시에 가지고 다니나요?


만약 소총수가 탱크를 만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소총수들을 후퇴시키고 대전차미사일병을 배치해야 할 것입니다.

만약 아이언맨이 탱크를 만난다면? 대인무기를 수납하고 대전차무기를 꺼내야겠죠.


만약 대전차미사일병이 전투기의 공격을 받는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대전차미사일병 대신 대공미사일을 준비해야 합니다.

만약 아이언맨이 전투기를 만난다면? 역시 대전차무기를 수납하고 대공무기를 꺼내야 합니다.


즉 아이언맨이라면 군인 하나와 비교하면 안됩니다. 소총수, 대전차병, 대공미사일병, ... 등이 합쳐진 하나의 군단과 비교를 해야 하죠. 여러가지 무기를 가진 군단이 적의 형태에 따라 다른 사단을 내보내듯, 아이언맨 역시 적의 형태에 따라 다른 무기를 사용해야 하기에 수많은 무기들을 장비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와 비슷한 것이 개미와 같은 사회성동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잘 아시다시피 개미는 군집을 보호하기 위해 주저없이 목숨을 내놓습니다. 과연 이런 행동이 어떻게 진화했을까요?

한 군집 안의 개미들도 여러 종류로 분화되어 있는 경우가 많죠. 알만 낳는 여왕개미부터 시작해서 일만 하는 일개미, 둥지를 지키는 병정개미, 꿀을 저장하는 꿀단지개미, 입구를 막는 문지기개미 등등 하나의 무리에도 여러가지 개미들이 존재합니다.

이런 개미들을 인간과 비교할 수 있을까요? 차라리 개미들은 인간의 세포와 비교하는 것이 합당하지 않을까요?

인간의 세포들 하나하나는 그 자신의 생존과 번식을 목표로 하지 않습니다. 어느 정도 분열 이후에는 더이상 분열(번식)하지 않으며 필요하면 스스로 죽기도(apoptosis) 합니다. 하지만 그 결과 인간이라는 개체의 생존을 유지하면서 결과적으로 생식세포의 활동으로 세포들의 번식을 이루게 됩니다.

개미들 하나하나는 그 자신의 생존과 번식을 목표로 하지 않습니다. 알도 낳지 않으며 적이 오면 기꺼이 목숨을 바쳐 공격합니다. 하지만 그 결과 군집이라는 개체의 생존을 유지하면서 결과적으로 여왕개미의 활동으로 개미들의 번식을 이루게 됩니다.

즉 개미군집 자체가 하나의 생물이며 그 안의 개미들은 생물을 이루는 세포 - 여왕개미는 생식세포, 병정개미는 면역세포 등 - 라 생각하는 것이 저들을 이해하는데 좀 더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왜 약자를 살려야 하는가

우연히 발견한 일본 커뮤니티에서의 문답입니다.


약자를 말살한다

논란거리가 될만한 질문이지만, 계속 의문을 가지고 있던 것이라 답해주셨으면 합니다.
자연계에서는 약육강식이라는 말대로 약자가 강자에게 먹힙니다.

그런데도 인간사회에서는 왜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까요?
문명이 시작될 때는 종족들끼리의 싸움이 계속되었고 약자는 죽임을 당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의 사회에서는 약자를 세금 등을 써서 살려둡니다.
우수한 유전자가 살아남는 것이 자연의 섭리가 아닐까요?
오늘날의 인간사회는 이치에 맞지 않는 것이 아닐까요?

인권 같은 이야기는 이번에는 하지 말아주셨으면 합니다.


그러니까... 흔한 착각이지만 자연계에는 [약육강식]이란 없습니다.

약하다고 반드시 잡아먹히는 것도 아니고 강하다고 꼭 잡아먹는 것도 아닙니다.

호랑이는 토끼보다 비교도 안될 정도로 강하지만 토끼는 세상에서 번성하고 있고 호랑이는 멸종위기에 몰려 있습니다.

자연계의 법은 개체레벨에서는 [전육전식]이며 종 레벨에서는 [적자생존]입니다.

개체 레벨에서는 최종적으로는 모든 개체는 [먹힙니다]%.
모든 개체는 수명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결국에는 죽습니다.
개체간의 수명 차이는 자연계 전체에서 본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어떤 개가 2년을 살고 다른 개가 10년을 산다고 해도 그것은 대부분 크지 않은, 아무래도 좋은 차이입니다.

종 레벨에서는 [적자생존]입니다.
이 말은 오해받은 상태로 널리 펴졌지만, 결코 [약육강식]의 의미가 아닙니다.
[강한 놈]이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적절한 놈]이 살아남습니다.
([살아남는다]의 의미는 [개체가 살아남는다]가 아니라 [유전자가 다음세대로 계속 이어진다]고 하는 의미임에 주의)

그리고 자연이란 것의 특징은 [무한이라고 해도 좋은 환경적응방식이 있다]는 것입니다.

꼭 활발하다고 해서 살아남는다는 법도 없고 나무늘보나 심해생물처럼 극단적으로 신진대사량을 떨어뜨리는 생존전략도 있습니다.
새끼를 많이 낳는 놈, 적게 낳는 놈, 빠른놈, 느린놈, 강한놈, 약한놈, 큰놈, 작은놈, ...
수많은 형태의 생물들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적응]만 되어 있다면 강하든 약하든 상관 없습니다.

그리고 [적자생존]의 의미는 [개체가 생존하는 것]이 아니라 [유전자가 다음 세대로 전달되는 것]이라는 뜻인 이상, 어느 특정 개체가 천적에게 잡아먹히든 말든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10년을 살면서 1마리의 새끼를 낳는 개체와 1년밖에 못살면서 10마리의 새끼를 낳는 개체는 후자가 [적자]로서 [생존]할 수 있습니다#.

[생존]이 [자손을 남기는 것]이며 [적응]의 방법이 무한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이상 어떤 방법으로 [적응]하느냐는 그 생물의 생존전략이라는 것입니다.


인간의 생존전략은.... [사회성]

고도로 기능적인 사회를 만들어 그 상호작용으로 개체를 보호합니다.
개별적으로는 장기생존이 불가능한 개체(즉 질문자가 말하는 "약자")도 살아남게 하면서 번식의 가능성을 최대화한다... 라는 전략입니다.

얼마나 많은 개체가 살아남는지, 어느 정도의 "약자"를 살리는지는 그 사회가 가진 힘에 비례합니다.
인류는 문명을 발전시키면서 전에는 살릴 수 없었던 개체까지도 살릴 수 있는 능력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생물의 생존전략으로서는 대성공이었죠.
(생물이 자손을 늘리는 것은 본질적인 것이며 그것 자체가 어떤 가치를 가지고 있는지 묻는 것은 무의미합니다. [이렇게나 많은 수를 늘릴 필요가 있는가?]라는 의문 역시 자연계에 있어서는 의미가 없습니다.


[우수한 유전자]라는 것은 없습니다.
있는 것은 [어떤 특정한 환경에서 유효할지도 모르는 유전자]입니다.

유전자에 의해 발현되는 이러이러한 "형질"이 이러이러한 환경에서 생존하는데 유리하게 동작하는가는 계산이 불가능합니다.
이를테면 현대사회의 인류에게 [장애]로밖에 보이지 않는 형질도 장래에는 [유효한 형질]이 될 지도 모릅니다.
그러므로 가능한한 많은 패턴의 [장애(말하자면 비정상적인 형질)]를 품어두는 것이 생존전략상의 [보험]에 해당됩니다.

([살아남는데 있어서 눈이 안보이는 것이 어떤 상황에서 유리할까?] 같은 질문은 하지 말아 주십시오. 그것은 어느 누구도 예측할 수 없습니다. 자연이란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것이기에 신이 아닌 이상 모든 것을 계산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아마존 정글에 혼자 방치된 현대인이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것이 명백하기에 [사회]라는 것이 없이 자연상태에 놓인 인간은 모두가 [약자]가 됩니다.

이 [약자]들이 모여 더 많은 [약자]를 살리려고 하는 것이 인간의 생존전략입니다.

그러므로 사회과학에서는 [투쟁]과 [협력] 모두 인간사회를 구성하는 요소지만 인간사회의 본질은 [협력]이라는 답을 하고 있습니다.
[투쟁]이 얼마나 활발하든지간에 마지막에는 [협력]에 의해 인간들이 살아남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는 [약자]이며 [약자]를 살리는 것이 호모 사피엔스의 생존전략입니다.


% 이를테면 호랑이가 죽어 썩어서 풀에게 [먹히고] 풀은 토끼에게 [먹힙니다]

# 전자 역시 적자가 아니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호랑이나 사자 등은 적은 수의 새끼를 낳죠. 적은 수의 새끼를 낳아서 잘 키우는 것도 적응의 한 방법입니다.


관념의 차이

창조론을 주장하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다 보면 가끔 겪는 일입니다. 분명히 틀리지 않은, 옳은 말을 하고 있는데 서로 그 말을 이해하는 방식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말 자체는 틀린 말이 아닌데 그 말이 맞다고 인정하기에는 뭔가 께름직한 그런 말 말입니다.
물론 거의 90% 이상은 그들 맘대로 그 말을 이해한 결과이긴 합니다만.
그런 창조론자들이 잘못 이해하는 것들에는 이런 것들이 있더군요.


1. 과학은 추측에 불과하다.


과학자들은 사실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추측을 말할 뿐이다. "~~이다"라 말하는 과학자는 없다. 그들은 항상 "~~일 것이다"라 말한다. 즉 그들은 자신도 확신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실제로 과학자들 중에 '~~이다'라 단정적으로 말하는 과학자 보셨나요? 저는 많이 못본 것 같네요. 특히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유전자 같은 책을 보면 '~~일 것이다', '~~게 되었을 것이다'란 말이 참 많이 나옵니다.
그것이 과연 과학자들이 확신이 없어서 그렇게 말하는 것일까요?

시속 100km인 자동차가 한시간 전에 출발했다면 과학자들은 '100km거리에 있다'고 하지 않습니다. '100km 거리에 있을 것이다'라 하죠. 잘 아시겠지만 과학에는 [반증 가능성]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아무리 확실한 사실이라도 그것이 틀릴 가능성이 늘 존재하기에 자동차가 100km거리에 없을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과학을 모르는 사람들은 이런 과학자들의 신중함과학자들도 확신하지 못하는 것으로 해석합니다.

과학자들은 확신이 없으면 아예 말을 하지 않습니다. 과학자들이 '~~일 것이다'라고 한다면 그것은 그 과학자에게 증거도 있고 확신이 있다는 뜻입니다.



2. 진화론은 100% 완벽하게 증명되지 않았다.


사실 진화론이 100% 완벽하게 증명되지 않은 것은 맞습니다. 하지만 그런 식으로 본다면 과학에서 100% 완벽하게 증명된 것은 없습니다.
과학을 잘 모르는 사람들이 주로 이런 식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있죠.

이것으로 이 이론은 완벽하게 증명되었다. 이제 이 이론은 진리다. 이 이론에 반론을 제시하는 것은 이단이다.

하지만 과학에서 완벽한 증명이란 없습니다. 모든 과학이론들은 계속 발견되는 자연현상을 가지고 끝없는 증명을 요구받습니다. 그래서 더이상 자신을 증명하지 못하면 - 틀렸다는 것이 증명되었다면 정설의 자리를 뺏기게 됩니다. 이를테면 뉴턴역학이 상대성이론에게 자리를 뺏긴 것처럼 말입니다.

즉 과학에서 정설이란 옳다는 것이 완벽하게 증명된 이론이 아니라, 틀렸다는 것이 증명되지 않은 이론을 말합니다.



3. 진화론은 단세포생물이 인간이 되었다는 말이다.


㉠ 영장류가 진화해서 사람이 되었다는 말이 있습니다.
㉡ 설치류가 진화해서 사람이 되었다는 말도 있습니다.
㉢ 어류가 진화해서 사람이 되었다는 말도 있습니다.
어느 말이 맞을까요?
사실 저 셋 다 맞는 말입니다. 신생대 초기의 영장류가 진화해서 인간이 된 것도 맞고 중생대의 설치류가 신생대 초기의 영장류를 거쳐 인간으로 진화한 것도 맞습니다. 데본기의 어류가 중생대의 설치류와 신생대의 영장류를 거쳐 인간으로 진화한 것도 맞죠.
그런 식으로 말하자면 단세포생물이 인간이 된 것도 맞는 말입니다. 선캄브리아기의 단세포생물이 데본기의 어류, 중생대의 설치류, 신생대의 영장류를 거쳐 거의 30억년의 진화과정에 의해 인간으로 진화했다고 할 수 있는 것이죠.
하지만 일반적으로 단세포생물이 인간이 되었다고 하면 보통 이런 것을 상상합니다.

어느날 갑자기 아메바들이 한군데 모이더니 서로 붙어서 인간이 되었다

라고 말입니다.
아무튼 단세포생물에서 인간으로 진화한 것은 맞지만 그것은 30억년의 세월 동안 다세포생물과 어류, 포유류 등의 수많은 단계를 거친 결과입니다. 어느 한순간 단세포생물이 모여서가 아니구요.


4. 과학은 자연발생설을 부정한다.

이것 역시 3번과 비슷한 논리입니다. 파스퇴르에 의해 생명의 자연발생설이 부정되고 생물속생설(생물은 생물에게서만 태어난다)이 대두되었습니다.
하지만 이 이론에 의해 최초의 생물에 대한 논란이 대두되었죠. 최초의 생물이 어떻게 생겨났는지에 대해서 말입니다. 창조론자들은 이 생물속생설로 신에 의한 창조를 주장하고 있죠.

하지만 여기서도 마찬가지지만, 파스퇴르가 부정한 자연선택설은 무기물에서 한순간에 완전한 생물이 태어난다입니다. 최초의 생물을 설명하는 화학진화론에서는 무기물에서 한순간에 최초의 생물이 태어났다고 설명하지 않습니다. 무기물에서 간단한 유기물이 나타나고 이들이 다시 복잡한 유기물로 합성되어 RNA와 같은 자기복제분자가 나타났고, 이 자기복제분자들의 진화에 의해 생명체로 진화했다고 설명합니다(이 과정이 자연선택설처럼 며칠이 아니라 수억년에 걸쳐 일어났습니다).

이것 역시 자연발생설과 화학진화설을 뒤섞어 자기 맘대로 이해하는 것이죠.


5. 과학자들 사이에서도 논란이 존재한다.

과학자들 사이에 논란이 없을 수가 없습니다. 물론 진화론에 대해서도 말이죠. 지금도 수많은 과학자들이 진화론에 대해 갑론을박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진화론에 대한 논란이 과학자들이 진화론을 확신하지 못한다는 증거일까요?
진화론에 대한 과학자들의 논란은 생물은 진화한다/진화하지 않는다의 논란이 아닙니다. 과학자들은 이런 논쟁은 하지 않아요. 과학자들은 생물은 진화한다는 명제에는 모두가 동의했습니다.
과학자들 사이의 논란은 시조새가 현재의 새로 진화했다/시조새가 아닌 다른 경로로 현재의 새가 진화했다라든가 양서류는 바닷가에서 진화했다/얕은 시내에서 진화했다 등의 논쟁 - 진화는 기정사실이며 진화론 안에서의 논쟁만 존재할 뿐입니다.
그런데 창조론자들은 이러한 진화론 안에서의 논쟁을 진화론 자체의 논쟁으로 침소봉대하여 과학자들도 진화론에 확신을 가지지 못한다는 착각을 주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지적설계론은 지적설계자를 모욕하는 행위 - 바다뱀

아시다시피 지구의 생물은 바다에서 기원했습니다. 그리고 바다가 가득 차서 생존경쟁이 심해지자 서서히 뭍으로 진출해서 뭍에서 크게 번성했습니다.

뭍도 가득 차게 되자 다시 물로 되돌아간 동물들도 존재합니다. 그들 중 하나가 다음과 같은 바다뱀이죠. 뭍으로 진출한 파충류가 다시 물로 되돌아간 경우입니다.


일반적으로 바닷물의 염분은 생물 몸의 염분보다 상당히 짙습니다. 바닷물을 그대로 마시게 되면 삼투압에 의해 세포 안의 물을 짜내게 됩니다. 그 때문에 많은 바다생물들은 신장기능이 상당히 발달되어 있죠. 바닷물에서 들어오는 염분을 빨리 걸러서 내보내지 않으면 온몸이 소금에 절여지게 되니까 말입니다.

그러나 과학자들은 바다뱀들의 신장기능이 다른 바다생물에 비해 발달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즉 다른 동물들처럼 바닷물에서 소금기를 걸러낼 수 없다는 뜻 - 다시 말하면 바닷뱀은 바닷물을 마실 수 없다는 뜻이죠.

그렇다면 이 바다뱀은 수분을 어디서 섭취할까요?

바닷뱀들은 아예 물을 마시지 않습니다. 목말라도 그냥 그 상태로 버티는 것이죠. 그러다가 우기가 되어 비가 오면 수면으로 올라가 빗물이 바닷물과 섞기기 전에 수면 위에 고인 빗물을 게걸스럽게 마십니다. 다시 우기가 끝나 비가 오지 않으면 바다뱀은 물을 마시지 않고 버팁니다.

실제로 바다뱀들은 건기가 되면 물이 빠져 몸무게가 10% 이상 줄어듧니다. 바싹 마른 멸치처럼 극도의 탈수상태에 빠지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우기가 되어 비가 오면 몸무게가 다시 불어나게 되죠. 마치 물에 불은 멸치처럼 말이죠.


틀림없이 바다에 사는 많은 동물들은 바닷물을 염분을 거르는 고성능의 콩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 고성능의 콩팥 설계도를 가지고 있었으면서도 창조주는 왜 바다뱀에게는 만들어 주지 않아서 일생의 반 이상을 목마른 탈수상태에서 살게 만들었을까요?

쥐의 꼬리를 잘라라!

제가 학교 다닐 때 학교 선생님에게서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어떤 학자가 쥐 수십마리를 모아놓고 모두 꼬리를 잘랐어. 그들로부터 태어난 새끼쥐들도 모두 꼬리를 잘랐지.
이런 짓을 수십년동안 했는데도 태어나는 쥐들은 모두 꼬리가 긴 쥐들만 태어났다. 결국 쥐의 진화는 없었다는 것이지
이런 것을 보면서도 진화론이 맞다는 사람들은 바보 아니냐?

이런 말을 했던 분은 제 기억에 과학선생님이 아니라 윤리선생님인가 그랬을 겁니다. 당시에는 저도 그렇고 사회 전체에 진화론,창조론에 대해 관심이 거의 없었죠. 당시에는 그런가 하면서 지나갔던 기억이 있습니다. 물론 제대로 진화론을 공부한 이후에는 저게 잘못된 주장이란 사실을 알게 되었지만 말입니다.

그런데 저런 소리를 수십년 지나서 다시한번 보게 되었네요...ㅡㅡ


수십년 전에 들었던 이야기를 다시 한번 듣게 되어 반갑긴 합니다. 아니면 역시 창조론은 지난 수십년간 전혀 발전이 없었다는 것을 다시한번 확인할 수 있어서 반가운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말입니다.


저 실험은 다윈의 진화론 실험이 아닙니다. 잘린 꼬리라는 획득형질이 유전되는지에 대한 실험 - 즉 라마르크의 용불용설 실험이죠. 아시다시피 용불용설은 이미 폐기된 이론입니다.

이미 폐기된 라마르크의 용불용설에 대한 실험을 가지고 와서 다윈의 진화론을 부정하는 저들을 어찌해야 할까요...


참고로 자연은 꼬리가 긴 쥐를 죽여버리지 꼬리를 자르는 짓은 하지 않습니다. 꼬리가 길다고 무조건 죽여버리는 것도 아니고, 꼬리가 길수록 죽을 확률을 높이는 것입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돌연변이에 의해 만들어지는 짦은 꼬리 유전자가 더 많아지도록 하는 것이 진화의 원동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