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론 이야기 - Émile Borel과 무한의 원숭이 정리

<전략>

예를 들어 여기 400개의 아미노산으로 구성되어져 있는 한 개의 단백질이 있다고 하면, 이 단백질이 우연히 생겨나기 위해서는 20개의 아미노산중에서 한개를 고를 확률 1/20을 400번 곱한 값 즉, 1/10520의 확률을 필요로 하게 된다. 한 계산에 의하면, 스스로 복제가 가능한 가장 단순한 가상적인 생명체가 존재하기 위해서는 400개의 아미노산으로 구성된 이 같은 단백질이 적어도 124개는 있어야 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 같은 생물이 우연히 생겨나게 될 확률은 1/10520을 다시 124번 곱한 값 즉, 1/1064,480이 되게 된다. 그런데, 단백질을 구성하는 아미노산은 L과 D의 두 가지 다른 형태가 있는데, 생물체를 구성하는 단백질 속에는 오로지 L 형태의 아미노산만이 존재하고 있다. 따라서, 이제 앞서 우연히 생겨난 124개의 단백질이 동시에 모두 L 형태의 아미노산을 갖춘 단백질이 될 확률은 1/1078,616으로 계산되어진다. 생각해 보라, 숫자 10 뒤에 영이 78,616개가 나오는 숫자의 크기를. 확률학자 Emil Borel은 전 우주에 걸쳐 1/1050보다 작은 확률은 결코 일어날 수 없는 것과 같다고 했다. 하물며, 1/1078,616의 확률은 오죽하겠는가?


<후략>
출처 : 창조과학회


종종 이런 말을 하는 창조론자들이 있죠.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Emil Borel이란 사람이 누구일까요?

창조론 이야기 - 근거 根據 basis에서의 경험도 있지만 그래도 한번 찾아봤습니다.


역시나 마찬가지군요. 미리보기에서만 봐도 복사-붙임한 티가 팍팍 나는 게시물들 뿐입니다. 아마 원본은 이 글 처음에 인용한 창조과학회겠죠.

그런데 과연 저 말이 사실일까요? 에밀 보렐이란 학자에 대해 조사하다가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에밀 보렐(Émile Borel)은 프랑스 수학자이자 정치가라고 하더군요. 다른 것은 생략하고 에밀 보렐의 논문 중 '무한의 원숭이 정리(infinite monkey theorem)'이란 것이 있습니다. 이것은 원숭이를 이용해서 일어나지 않을 듯한 사건의 발생을 상상하는 사고실험입니다.

한마리 원숭이가 타자기 앞에 앉아서 무작위로 자판을 두들깁니다. 이 원숭이가 셰익스피어 전집을 출력할 가능성은 몇일까요?
아마 0이라고 할 수 있겠죠.

하지만 에밀 보렐의 결론은, 수없이 많은 원숭이가 수없이 많은 시도를 한다면 셰익스피어 전집이 나올 가능성은 점점 커진다는 것입니다.

즉 무한한 수의 원숭이가 단 한번 타자기를 두들긴다면, 또는 한마리 원숭이가 무한한 횟수로 타자기를 두들긴다면 셰익스피어 전집이 아니라 전 세계 도서관의 모든 책을 출력할 확률은 100%라는 점입니다. 창조론 이야기 - 확률계산에서와 같은 방식으로 증명한 것이죠.

결국 에밀 보렐이란 사람은 창조론자들이 내세울 만한 사람이 아닙니다. 오히려 진화론 측에서 내세울 사람이죠. 에밀 보렐의 무한의 원숭이 정리(infinite monkey theorem)에서와 같이 지구 전체에 퍼진 유기물(수없이 많은 원숭이)과 10억년이라는 시간(수없이 많은 시도)이라면 창조론자들의 생각과는 달리 생명이 탄생할 가능성은 점점 커진다는 것이죠.
에밀 보렐을 언급하는 창조론자들은 자신이 자충수를 두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진화론 이야기 - 절반의 눈


눈은 빛을 감지하는 망막과 시신경, 수정체 등이 완전하게 조화된 기관이다. 어느 하나만 없어도 눈의 역할을 하지 못하고 이들이 모두 결합되었을 때에만 눈의 기능을 할 수 있다. 절반만 완성된 눈으로는 아무런 역할도 못한다*.
그러므로 눈은 진화될 수 없고 오로지 창조자의 설계만이 답이다.

이런 식의 억지(?)를 부리는 창조론자들이 흔히 있죠.
절반의 눈으로는 눈의 역할을 하지 못한다... 지금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완전(?)한 눈'을 기준으로 봤을 때는 맞는 말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들이 간과하고 있는 것은, 눈이 진화되는 초기에는 '완전한 눈' 따위는 없었다는 것이죠.
초기 눈 따위는 아무것도 없는 한 종들 가운데 감광 세포 - 현재의 망막세포를 가진 동물이 출현했습니다. 현재의 '완전한 눈'과 비교한다면 절반의 눈도 아니고 1%의 눈 정도밖에 안되겠죠.
하지만 눈이 전혀 없는, 말하자면 0%의 눈을 가지고 있는 다른 동물들에 비해서는 이 1%의 눈이 상당한 효과를 가지고 있습니다. 최소한 빛이 있다 없다만 구분할 수 있어도, 빛이 있는 곳에서는 움직이고 빛이 없는 곳에서는 숨어있을 수 있거든요. 즉 이 1%의 눈은 그 종 전체로 퍼져나갑니다.



이 감광세포가 약간 오목하게 들어간 변종이 출현합니다. 이것은 어떤 장점이 있을까요?
빛을 느낀다는 것은 아주 유용한 것입니다. 이 감광세포에 상처를 입는다는 것은 다른 부위를 다치는 것보다 더 큰 손해죠. 즉 감광세포를 보호한다는 강점이 있습니다. 이 오목한 눈을 가진 변이체 역시 종 전체로 퍼져나갑니다.



감광세포가 더 오목하게 들어갔습니다. 이것으로 빛의 유무 뿐 아니라 빛의 방향까지 감지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감광세포 위에 투명한 세포층이 생겼습니다. 이것은 눈 속에 이물질이 들어가는 것을 막아주는 장점이 있습니다.



이 투명한 세포층이 부풀어올라 렌즈를 형성했습니다. 이것은 제대로된 상을 맺어 사물을 제대로 볼 수 있는 '눈'이 된 것이죠.

창조론자들은 창조주에 의해 '일순간에 완전한' 인간이 만들어졌다고 믿습니다. 그때문에 위에서처럼 '단계적으로 완성되는' 진화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죠.
위의 모델에서처럼 눈의 진화 초기에는 '완전한 눈'이란 없었습니다. 현재 있던 눈보다 '약간 좋은 눈'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창조론자들이 말하는 '완전한 눈'이 만들어진 것이죠.


* 이 질문에 대해 도킨스는 이런 답을 했습니다.
절반의 눈은 49%의 눈보다 1% 좋고, 49%의 눈은 48%의 눈보다 1% 좋다.

엮인글 :

지적설계론은 지적설계자를 모욕하는 행위 - 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