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론 이야기 - 동물의 본능과 인간의 이성

얼마 전에 재미있는 기사를 보게 되었습니다.

Azores군도에서 향유고래를 관찰하던 연구팀이, 4마리 새끼를 돌보고 있는 향유고래 한마리를 발견했다. 그런데 그 새끼들 중 한마리만이 어미의 친자식이었다. 다른 어미고래들이 먹이를 사냥하러 간 동안 그 새끼고래들을 모아 한마리가 돌봐주는 일종의 공동육아 - 아기돌보기 품앗이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사진 및 기사 출처).

어떤 것이 진화되기 위해서는 '점진적인 변화의 누적에 의해 커다란 변화가 가능할 것'이라는 조건이 필요합니다. 창조론자들이 가끔 주장하는 '인간의 이성이 어떻게 진화할 수 있었는지 설명해 봐라'는 것 역시 동물의 본능과 인간의 이성 사이에는 건널수 없는 강이 존재한다는 그들의 '믿음' 때문입니다. 물론 그들은 동물의 본성과 인간의 이성이 어떻게 다른지는 '창조주가 자신의 모습대로 만든 인간을 감히 동물과 비교하다니...' 정도로 넘어갈 뿐입니다만.

확실히 동물의 본능과 인간의 이성 사이의 관계가 오른쪽 그림과 같이 '매우 높은 낭떠러지'라면 인간의 이성을 진화론적으로 설명하기가 쉽지 않을 것입니다. 창조론자들의 주장대로 '본능에서 어느 한순간 이성이 튀어나오지 않는 이상' 저런 진화는 불가능하며, 또한 '본능에서 어느 한순간 이성이 튀어나오기' 역시 진화론적으로 생각했을때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위에서 제시한 '고래의 아기돌보기 품앗이' 모습은, 비록 인간의 이성에는 도달하지 못했지만 동물의 본능에서는 벗어난 모습을 보입니다. 그뿐 아니라 주인을 구한 개들이라든지, 죽어가는 동료를 구하려는 돌고래 등 상당히 많은 '동물답지 못한 행동'을 하는 동물들이 있습니다.

그런 것을 본다면 본능과 이성의 관계는 윗그림과 같은 절벽이 아니라 왼쪽 그림과 같은 비탈길, 즉 본능과 이성 사이가 단절된 것이 아니라 그 사이에 수많은 상태가 있는 스펙트럼을 이루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동물적인 본능으로부터 '점진적 변화'를 통해 인간의 이성이 진화할 수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엮인글 : 창조론 이야기 - 원숭이의 양심

원래는...(How It Happened)

원래는...(How It Happened)

(1979년작)                    



Isaac Asimov 저

윤태원 역




이것은 아주 짧은 이야기이지만 나의 다른 꽁트들처럼 말장난으로 끝나지는 않는다. 이 이야기는 사실 꽤 웃기고 또 웃음을 자아낼 목적으로 쓰여졌지만, 순전히 웃기는 이야기로만 쓰여진  것은 아니다.

누군가가 사용할 수 있는 기록매체가 파피루스  뿐이고  인쇄가 불가능한 상황에 처해있다면, 그런 상황에 처한 사람이 쓸 수  있는 책은 오늘날에 비해 상당히 제약될 수 밖에 없다.  즉  당신이그런 상황에 처해 있다면 당신이 쓰려는 글이 무엇이든간에  파피루스를 많이 쓸 수 없다는 사실의 영향을 받는다는 이야기이다.


동생은 할 수있는 가장 엄숙한 목소리로 구술을 - 여러 부족들이 머리를 조아리며 기대하던 - 시작했다.
그는 말을 시작했다.
"태초에, 정확히 152억년전 빅뱅이 있었고 우주가......"

그러나 나는 받아쓰기를 그만둘 수 밖에 없었다.

"150억년 전이라고?"

내 목소리는 불신에 가득차 있었다.

"물론이지, 난 계시를 받았어." 그는 대답했다.

"네가 받는 계시를 믿지 않는 것은 아냐," 나는  말했다.

(물론 믿어야만 했다. 내 동생은 나보다 세살이 어리지만 그가 받는 계시에 의문을 품어본 적은 한번도 없다. 또 지옥에 떨어질 각오가 된 사람이 아니라면 감히 의문을 품을 생각도 하지 못할  것이다.)

"그래도 설마 150억년에 걸친 창조의  역사를  구술하려는 생각은 아니겠지?"

"해야만 해, 그게 우주가 창조된  역사니까. 모든 우주의 역사는 최고의 권위를 가진 바로 이곳에  다기록되어 있다구,"
그는 말하며 자신의 이마를 톡톡 두드렸다.

나는 철필을 내려 놓으며 투덜댔다.
출처
"너 요즘 파피루스 값이 얼마나 하는지 알기나 하니?"

"뭐라고?"
(그는 신성한 계시를 받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나는 때때로 그러한 계시가 파피루스의 가격같은 추잡한 세상사는 고려하지 않음을 느끼곤 한다.)

나는 말을 계속했다.
"네가 파피루스 한 두루마기마다 백만년에 걸친 역사를 구술한다고 생각해보자. 그러려면 우리에겐 파피루스 두루마기가 만오천개나 필요하겠지. 파피루스 만오천개를 쓸 정도로 말을 많이 하려면 얼마 안가서 네 목은 완전히 쉬어버리고  말 게다. 그리고 그 많은 양을 받아쓰고나면 내 손가락은 떨어져 나가버리겠지. 좋아. 우리가 그 많은 파피루스를 구입할 능력이  있고 또 네 목은 쉬지도 않고 내 손가락도  멀쩡하다고  생각해보자구. 도대체 어떤 미친 녀석이 그 많은 양을 다시  베끼려고  들겠니? 우리가 책을 냈다는 것을 증명하려면 사본이 적어도  100개는 있어야 할텐데, 사본을 못만들면 인세는 어떻게 받니?"

동생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양을 좀 줄여야 한다고  생각하는거야?" 그가 물었다.

"물론이지, 사람들에게 읽히려면 그  수밖에 없어." 나는대답했다.


"백년 정도로 줄이면 어떨까?" 그가 제의했다.

"엿새면" 내가 말했다.

그는 겁에 질린 목소리로 대꾸했다.
"창조의 역사를 겨우 엿새에 구겨넣을 수는 없어."

"내가 가진 파피루스는 그 정도가 다야. 어떻게 할래?"

"좋아,"
풀죽은 목소리로 대답한 그는 다시  구술을  시작했다.

"태초에 - 창조에는 엿새가 걸렸다 이거지, 아론?"

나는 엄숙한 목소리로 답했다.
"그렇지, 엿새였단다. 모세야."

출처



카오스 - 프랙탈(Fractal)



망망대해를 항해하던 배가 난파했습니다. 생존자 몇명이 파도에 휩쓸려 다니다가 어느 해안가에 도착했습니다. 과연 그 해안가에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를 살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런 경우 많은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직선'을 찾습니다. 벽도 울타리도 지붕도 길도 사람이 만든 것은 '가능하면 직선에 가깝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자연계에는 직선이 없습니다. 대신 자연계에 있는 것은 프랙탈(Fractal)이죠.

프랙탈은 '자기닮음도형'입니다. 이를테면 다음과 같은 기본도형으로 시작합니다.
기본 도형
이 기본도형에는 10개의 직선이 있습니다. 이 10개의 직선을 다시 기본도형으로 치환합니다.
1차
이번에는 더 짧은 직선 100개가 생겼군요. 다시한번 똑같은 과정을 더 해 봅시다.
2차
이런 과정을 무한히 반복하면 프랙탈 도형이 완성됩니다. 하지만 컴퓨터 성능도 있고 눈의 성능도 있으니 무식하게 무한히 반복할 필요는 없죠.
5차
이러한 자기닮음도형이 프랙탈입니다.
자연에는 이런 프랙탈이 얼마나 있을까요?









윗그림과 같이 해안선과 강줄기 모양이 프랙탈입니다. 번개도 프랙탈이며 구름 모양 역시 프랙탈입니다. 그뿐 아니라 산 표면, 바위 표면 역시 프랙탈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생물은 어떨까요?다음과 같은 기본형으로 시작해 봅시다.
기본 도형
기본형에 3개의 사각형이 있습니다. 다음은 이 3개의 사각형에 기본형을 축소시켜서 치환합니다.
1차
 이렇게 생긴 9개의 사각형에 대해 반복합니다.
2차
 이런 작업을 무한히....는 아니고 (컴퓨터 성능상) 12회 반복한 결과입니다.
12차
보기에는 어색할지 모르지만 제법 고사리 잎을 닮은 모습이 되었습니다.
프랙탈 도형은 복잡해 보일지라도 그 기본형은 매우 간단합니다. 고사리 잎의 경우 기본형은 사각형 3개 뿐이죠. 그러나 이 기본형이 반복해서 발현되는, 일종의 '재귀호출'에 의해 복잡한 고사리잎이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특히 저 3개 사각형들의 크기, 위치관계, 각도 등을 조금씩 변형한다면 상상할수 없을 만큼 다양한 고사리잎을 만들수 있습니다.

다음과 같은 기본형이 있습니다.
기본 도형
 저 녹색 가지를 기본도형으로 치환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1차
 이 과정을 5회 반복한 결과입니다.
5차
보시다시피 단 5차의 '재귀호출'에 의해 복잡하면서도 근사한(?) 나무가 완성되었습니다. 이것 역시 가지의 갯수와 벌어진 각도, 길이 등에 변화를 주면 그만큼 다양한 나무들을 만들 수 있습니다.

위에서 식물에 대해서만 다루었지만, 동물에도 프랙탈 구조가 있습니다. 다만 동물의 경우에는 겉모습이 아닌 내장에서 프랙탈이 발견됩니다. 허파의 허파꽈리, 혈관망 등에서 말입니다.

여기서 가장 윗 글을 쓴 분에게 한번 묻고 싶습니다.
생명체들에 부과된 질서가 인위적인 질서일까요, 자연적인 질서일까요?
왜... 유독 생명체만은 아니라는 걸까요?
누가 우리의 직관을 이렇게 어지럽혀 놓았을까요?

카오스 이론(Chaos Theory)

어느 습지에 각종 동물들이 살고 있습니다. 한 과학자가 이 습지에서 개구리의 개체수 변화에 따른 파리의 개체수 변화를 연구하려 합니다.
우선 간단하게 알 수 있듯이 개구리 개체수가 증가하면 개구리는 더 많은 파리를 잡아먹기에 둘 사이에는 반비례의 관계가 있습니다.

dNFly = A dNFlog      - ①

그러나 실제로는 그 습지에는 파리와 개구리만 살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개구리의 개체수 변화는 뱀에, 뱀의 개체수 변화는 도마뱀에, 도마뱀의 개체수 변화는 파리에 영향을 미칩니다. 즉 ①식은 다음과 같이 ①'식으로 바뀝니다.

dNSnake = B dNFlog       - ②
dNLizard = C dNSnake - D dNFlog       - ③
dNFly = A dNFlog + E dNLizard       - ①'

또한 개구리 개체수는 파리 개체수 뿐 아니라 메뚜기의 개체수에도 영향을 줍니다. 메뚜기는 풀에, 풀은 토끼에, 토끼는 뱀에 영향을 주어 다시 도마뱀을 거쳐 파리의 개체수에 영향을 줍니다.

dNGrasshopper = F dNFlog + G dNLizard      - ④
..........

결국 파리와 개구리 개체수 사이의 관계를 구하기 위해서는 그곳의 모든 생물들과 그물처럼 얽힌 수많은 방정식을 풀어야 합니다.



①번식과 같이 단 하나의 변수(Nflog)에 의존하는 방정식, 또는 둘 이상의 변수를 가지더라도 그 변수들이 서로 독립인(즉 서로 영향을 주고받지 않는) 방정식을 선형방정식(Linear Equations)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선형방정식은 쉽게 풀 수 있습니다.
그러나 ①, ②, ③, ④, ... 처럼 여러개의 변수가 있을 뿐 아니라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주는 관계에 있는 방정식은 비선형방정식(Non Linear Equations)이라 부릅니다. 이러한 비선형방정식은 일반적인 경우 대수적인 방법으로 풀 수 없다는 것이 알려져 있습니다.


과거의 과학자들은 '비선형방정식은 풀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 때문에 위와 같은 경우 ②, ③, ④, ... 식은 무시해 버리고 'Nflog과 Nfly는 다른 변수에 독립적인 변수다'라는 가정 하에 근사식을 계산하는 것으로 만족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로렌츠 어트랙트
하지만 20세기 들어 과학자들은 놀라운 도구 - 컴퓨터를 얻게 되었습니다. 컴퓨터의 무지막지하면서도 무식한 계산능력에 의해 비선형방정식을 풀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 결과 기존 과학에서는 설명할 수 없었던 무질서에 대한 여러가지 현상을 설명할 수 있게 되었으며, 또한 그 무질서 속에서 질서를 찾아낼 수도 있게 되었습니다. 바로 '카오스 이론(Chaos Theory)'의 탄생입니다.

코흐 곡선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카오스이론을 공부하면서 생물체와 생태계, 그리고 진화과정 자체가 일종의 카오스계(Chaos System) 같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특히나 카오스이론을 적용하면서 진화론을 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역시 개인적인 생각). 물론 어떤 창조론자는 제가 카오스 이론 이야기를 꺼내자 '이젠 카오스이론으로 도망가는 것이냐?'라고 비아냥거리긴 했습니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