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과학에 대처하는 과학의 자세

꽤 옛날(벌써 15년 전이네요) 드라마였던 '카이스트'를 유튜브에서 보고 있습니다. 옛생각이 새록새록 나는군요.
그런데 그중에서 '초대받지 않은 손님'이란 에피소드가 눈길을 끏니다. 제 기억으로는 한여름에 납양특집으로 방송했던 것 같은데요..



어느 여름, 수많은 과학도와 공학도들이 모여있는 카이스트 교정에서 귀신소동이 벌어집니다. 교정의 분수가 있는 호수에서 처녀귀신이 나타난다는 소문이었죠. 이곳을 밤늦게 지나던 목격자들의 증언이 쏟아지며 학교 전체가 술렁거립니다.
그와 함께 주인공들의 친구였던 두 여학생이 갑자기 환청과 환시 등의 환각을 경험합니다. 덕분에 그들은 극단적인 노이로제에 시달리게 되죠.

이때 주인공들인 과학도(정확히는 공학도들이지만)들의 대처는 어땠을까요?
그냥 '귀신이나 환각은 비과학적이다'라 치부하며 무시했을까요, 아니면 '정말 귀신은 있었어'라며 무당에게 달려갈까요?

그들이 가장 처음에 한 것은 '대상을 확인하는 일'이었습니다. '귀신이 무엇인지'에 대해 서술한 책과 논문을 뒤지는 것이죠. 지피지기 백전불태(知彼知己 百戰不殆), 우선 상대방에 대해 알아야겠죠. 물론 그것들은 다른 차원의 존재라는둥, 일종의 파동이라는둥 뜬구름을 잡는 말이 많았지만 말입니다.

두번째로 한 일은 '대상을 측정하는 일'입니다. 일단 모은 정보를 바탕으로 '일종의 파동'이란 가설을 세운 후 그 가설을 검증하는 것입니다.
파동이라면 측정은 간단합니다. 파동을 감지할 수 있는 마이크나 안테나들, 그리고 감지한 파동을 눈에 보여줄 수 있는 오실로스코프를 조합하면 되니까요. 게다가 장소가 장소(카이스트)니만큼 재료는 주위에 널려 있죠. 그들은 환각을 보는 여학생 주위에 감지기를 설치해 놓은 후 감시를 시작합니다. 그 결과 그녀가 환각을 경험할 때 그 주위에서 알 수 없는 파동을 감지하게 됩니다.

결과적으로 그들의 탐구는 실패로 끝납니다. 환각을 겪던 여학생들은 그 환각이 과거의 트라우마와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것을 이겨낸 후 더이상의 환각을 겪지 않게 되었으니까요. 파동은 검출할 수 있었지만 그 파동의 정체가 뭔지는 알아낼 수 없었습니다(하다못해 '마침 주위를 지나가던 대형트럭에서 나던 진동이었다'라고 할 수도 있었죠). 재연되지 않는 실험은 실험이 아니죠.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 에피소드에는 비과학을 과학으로 분석하는 과학자들의 모습이 잘 담겨 있습니다. 비록 비과학을 맹신하는 일부 사람들은 '그것봐라, 결국 그 환각이 뭔지 알아내지도 못하지 않았냐'고 주장할지 모릅니다만...

그들이 좋아하는 '창조주'를 실제로 '측정'하지 못하는 이상, '창조과학'은 영원히 '사이비 과학'으로 남아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