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론 이야기 - DNA, 컴퓨터 프로그램, 띠에라

한때 DNA를 설계도에 비유하는 일이 많더니, 요즘 들어서는 컴퓨터 프로그램에 비유하는 사람들이 종종 보입니다.


전에 창조론 이야기 - 비유법과 궤변에서 언급한 일이 있습니다만, 비유법은 잘 사용하면 상대를 이해시키는 좋은 도구가 되지만 잘못 사용하면 궤변(sophistry)이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DNA를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비유하는 것은 일견 옳게 볼 수 있습니다. DNA는 3개의 염기가 하나의 명령어를 이루는 코드가 순차적으로 실행된다고 할 수 있으니까 말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DNA의 작동방식을 프로그램으로 비유할 수 있다는 것이지 DNA의 탄생과 진화를 프로그램으로 비유하려고 하면 위와 같은 억지와 궤변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진화에 있어서 컴퓨터 프로그램과 DNA의 차이점은 무엇이 있을까요?
가장 큰 차이는 '융통성'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컴퓨터 프로그램을 복사할 때 뭔가 오류가 생겨 한비트가 잘못 복사되었다면 어떻게 될까요? 아마 99% 이상은 오동작(다운 또는 무한루프)을 일으킬 것입니다.
반면에 DNA는 어떨까요? '모든 인간은 돌연변이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모든 인간은 이미 100여개의 돌연변이 - 복사오류를 가지고 있는 상태입니다. 만약 DNA가 컴퓨터 프로그램처럼 오류에 민감하다면 인류뿐 아니라 지구상 모든 생명체들은 살아남지 못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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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윗글과는 모순이라고 생각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학자들은 생명체의 진화를 연구하기 위해 컴퓨터 프로그램을 사용하곤 합니다. 물론 이때는 DNA와 같은 특징 - 복사시 오류를 만드는 복사루틴과 오류가 생겨도 문제없이 실행 가능한 프로그램언어를 설계해서 사용하는 것이죠.
그중에 가장 유명한 것이 띠에라(Tierra)라는 프로그램입니다. 1991년 생태학자였던 토마스 레이(Thomas S. Ray)가 진화의 모형으로 프로그램한 것이죠.
컴퓨터상에 Tierra(지구)라는 가상의 환경을 만들어 놓고, 이곳에 최초에 (위에서 언급한 새로운 프로그램언어로) 설계한 세포 하나를 이식한 후 관찰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결과는 매우 놀라왔습니다. 최초의 세포가 (불완전한 복제루틴에 의해) 번식하고, Tierra가 가득 찬 후에는 서로 생존경쟁에 의한 자연선택이 자연히 일어나면서 종분화가 확실하게 나타난 것입니다.


게다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다음과 같은 것들이 차례로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1. 기생 : 다른 세포의 자원을 빼앗을 수 있는 세포
2. 회피 : 기생충에게 감지당하지 않는 세포
3. 반격 : 반대로 기생충의 자원을 뺏는 세포
4. 공생 : 서로 분업화에 의해 협동하는 세포들
5. 새로운 기생 : 공생 사이에 끼어들어 양쪽에서 자원을 뺏는 세포

출처 : 인공생명







숙주(붉은색)가 매우 많다. 기생충(노란색)이 보이지만 아직 드묾

기생에 면역된 숙주(푸른색)가 빠르게 증가하며
기생충은 그들을 피해 메모리 앞쪽에 몰려있음


그러므로 저 댓글의 마지막은 다음과 같이 고쳐져야 마땅합니다.

하지만 그게 가능할까요? 그에 대한 답은 당연히 '그렇다!'입니다.

위에서 언급한 대로 사람의 DNA는 윈도우 프로그램이 아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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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창조론자들이 좋아할지도 모르겠군요.

봐라, 어차피 저 Tierra라는 세계는 토마스 레이가 창조한 세계 아니냐? 이것은 창조론을 증거하는 실험이다!!!

한마디로 '꿈 깨시기'를 바랍니다. 저기서 토마스 레이가 창조한 것은 '모든 세포'가 아니라 '최초 단 하나의 세포' 뿐이었거든요.
그러므로 이 실험은 잘 봐줘야 유신진화론 - 창조주가 45억년 전에 최초의 생명체를 만들었고, 그 생명체가 진화해서 현재와 같은 생명체가 되었다 - 의 근거가 될 수는 있지만 창조론 - 야훼가 6000년 전에 인간을 비롯한 모든 동식물들을 종류대로 만들었다 - 의 근거가 될 수는 없습니다.


또한,

어차피 저 토마스 레이가 최초의 생명체를 만들어낸 것은 사실 아니냐? 그것만 봐도 저것은 진화론을 부정하는 증거임에 틀림없다.

고 생각하실지도 모르겠네요. 마찬가지로 꿈 깨시기를 바랍니다.
진화론 이야기 - 진화론으로 설명할 수 있는 것에서도 언급했지만, 진화론은 '최초의 생명체 이후' 생명체의 분화를 설명하는 이론입니다. 최초의 생명체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는 설명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 실험에서 최초의 프로그램이 수없이 많은 프로그램(기생충, 공생 등)으로 분화해 간 것이 바로 진화가 일어날 수 있다는 실험이 되는 것이죠.

난독증

요즘도 인터넷 창조론자들과 즐겁게 싸우고 있습니다.
그런데 누군가가 이런 말을 하더군요.


<사람들은 흔히 이론과 법칙을 차등적인 것으로 생각하곤 합니다. 법칙은 완전히 증명된 것, 이론은 증명이 아직 안된 것...>
과연 이 말이 'chamsol이란 놈도 이론은 증명이 아직 안된 것이라 주장한다'일까요? 아니면 눈에 창조론자들의 필터를 장착해서 보고 싶은 부분만 본 것일까요?
혹시나 이 글을 볼 다른 창조론자들을 위해 말한다면, 저 뒤에는
<사람들은 흔히 이론과 법칙을 차등적인 것으로 생각하곤 합니다. 법칙은 완전히 증명된 것, 이론은 증명이 아직 안된 것... 하지만 그것은 착각입니다.>


요즘들어 이런 난독증이 더 많아진 것 같기도 합니다. 개나소나 만들 수 있는 동영상을 증거랍시고 올리는 분에게 이런 답글을 했었습니다.
 그에 대해 이런 답변이 올라왔네요...
ㅡ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