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인화의 덫 - 농사짓는 아메바

사람들은 흔히 모든 것을 자기 위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 때문에 사물을 설명하기 위해 사람에 빗대어 설명하는 의인화(擬人化 Anthropomorphism)를 종종 사용하곤 합니다. 마치 만화 '일하는 세포(はたらく細胞)'처럼 말입니다.
그냥 사물을 설명하는 것보다 사람에 빗대어 설명하면 좀더 쉽게 이해를 할 수 있습니다. 특히 지식이 부족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할때 더욱 효과적이죠.

하지만 의인화 설명이 지나치면 부작용이 생길 수 있습니다. 저 '일하는 세포' 만화를 보고 나서 '세포들이 모두 인간같은 지능을 가지고 할 일을 찾아서 하고 있구나'라 생각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물론 저 만화를 보고 저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다른 의인화 설명에도 저런 사람이 생기지 않을까요?





이 과정에서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새로운 사실이 처음 관찰됐다. 연구팀이 야생에서 채집한 아메바 덩어리 35개를 분석했더니, 그중 3분의 1가량이 박테리아 먹이를 다 먹어치우지 않고 일부를 아껴 덩어리 몸 안에 남긴 채로 다른 곳으로 이동한 다음에 가져온 박테리아를 뿌려 더 많은 먹이로 번식시킨 뒤 이를 잡아먹는 것으로 밝혀졌다. 주변에서 먹이가 줄면 아메바 점균은 박테리아 일부를 가지고 또 다른 곳으로 이동해 번식한다.

이 글을 읽은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하게 될까요? '아메바가 농사를 짓다나 놀랍다'는 식으로 생각되지 않을까요?

이러한 오해를 풀 수 있는 방법은, 의인화를 단세포생물도 할 수 있는 능력으로 치환하는 것입니다.

박테리아 먹이를 다 먹어치우지 않고 일부를 아껴 덩어리 몸 안에 남긴 채

라면 이것은

소화효소가 줄어드는 변이가 발생하여 박테리아 먹이를 다 소화시키지 못하고

가 더 정확한 표현이겠죠.

다음에 가져온 박테리아를 뿌려 더 많은 먹이로 번식시킨 뒤 이를 잡아먹는 것

이라면

소화시키지 못한 박테리아를 배설한 후 다시 다른 곳에서 먹이를 찾는 동안 박테리아가 번식하는 것

이라고 한다면 지능이 없는 아메바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일 것입니다.

그런데 저런 의인화 설명을 곧이곧대로 해석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까요?

한낱 아메바가 어떻게 농사를 지을 수 있다는 말인가. 이것이야말로 창조주가 아메바를 위해 설계한 증거이다

그야말로 [2000년전 유대 유목민들의 판타지 소설]을 곧이곧대로 해석하는 것처럼 어이없는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이겠죠.

눈에는 눈(Tit for Tat) - 하나

눈에는 눈(Tit for Tat) 전략은 여기서도 몇번 다뤄본 적이 있습니다. 로버트 액셀로드의 협력의 진화라는 책에 나와있는, 상대로부터 협력을 이끌어낼 수 있는 전략입니다.
특히나 리처드 도킨스도 이 책에 대해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합니다. 스스로 서평을 자청하여 이런 내용을 적었더군요.

전 세계 정치 지도자들을 납치하여 골방에 가두고 이 책 한권씩 넣어둔 후, 이 책을 다 읽은 사람만 풀어주어야 한다.

그리고 자신의 저서에서도 이 눈에는 눈 전략을 여러번 언급합니다.

비협조적인 상대에게서 협력을 이끌어낼 수 있다는 것에서, 과학계 뿐 아니라 사회 이곳저곳에서 많이 인용되는 것도 사실이죠. 하지만 나비효과와 마찬가지로 이 팃포탯 전략 역시 오용되는 경우가 많은듯 합니다.

이 전략에 대한 오해에는 이런 것들이 있더군요.



협력배신
협력50100
배신-100


팃포탯 전략은 상대를 이기기 위한 전략이다? 천만에요.

팃포탯 전략을 사용하는 틱택이가 있습니다. 이 틱택이가 배신자와 게임을 하고 있습니다. 협력할 생각이 전혀 없는 배신자를 상대로 틱택이가 승리를 거둘 수 있을까요?

틱택이는 언제나처럼 [협력]부터 시작합니다. 배신자는 처음부터 [배신]을 합니다. 틱택이는 -10점, 배신자는 100점을 얻게 되겠죠.
이후 틱택이는 보복으로 배신을 하겠지만 배신자도 배신을 할 테니 둘 다 0점을 얻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배신자는 계속 배신을, 틱택이는 앞의 배신에 대한 응징으로 배신을 계속하게 됩니다. 처음 배신당했을 때의 110점 차이가 게임 끝날 때까지 계속되죠. 결국 틱택이는 110점 차이로 패배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틱택이가 순진한 협력자와 경기를 한다면 어떨까요? 둘은 처음부터 끝까지 똑같이 협력을 하며 똑같은 득점을 합니다.

즉 틱택이는 순진한 협력자조차 이기지 못하고 동점을 기록하며, 사기꾼을 만나면 근소한 차이(110점 차이)로 지게 됩니다. 틱택이는 상대가 누구든 비기는 것이 최선이며, 틱택이가 이길 수 있는 상대는 없습니다.

그런데 상대를 이길 수 없는데 어떻게 최고의 전략이 될 수 있을까요?

상대가 협력을 할 때는 틱택이는 같이 협력하며 점수를 쌓아올립니다.
상대가 배신을 시작하면 점수를 뺏기지만 그 이후부터 같이 배신하며 더이상 상대가 부당이득을 얻지 못하도록 합니다.

즉 팃포탯 전략은 상대를 이기기 위한 전략이 아니라 자신의 피해와 상대의 부당이득을 최소화하는 전략입니다. 사기꾼을 만났을 때는 사기꾼의 부당이득을 최소화시키며 지는 대신 다른 틱택이나 순진한 협력자와의 경기에서 높은 점수를 얻을 수 있습니다.
배신자는 순진한 협력자와의 경기에서는 더 높은 점수를 얻게 되지만 틱택이와의 경기에서는 110점밖에 얻지 못합니다. 더구나 다른 배신자와의 경기에서는 전혀 점수를 얻지 못합니다.

배신자의 배신에 질린 순진한 협력자가 퇴장한다면, 틱택이는 다른 틱택이와 함께 높은 점수를 얻을 수 있는 반면, 배신자는 점수를 얻을 방법이 사라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아무도 이길 수 없는 틱택이가 결과적으로 이길 수 있는 이유입니다.


그러므로 [난 상대를 이기지 못하면 참을 수 없어]라든지 [저녀석이 이득을 얻는 꼴은 죽어도 못본다]라는 플레이어에게는 팃포탯이 적당하지 않습니다. 팃포탯은 지는 것을 각오하고 시작하는 전략 또는 전투에서는 지고 전쟁에서는 이기는 전략입니다.


팃포탯 전략은 배신에 대한 응징을 중요시한다? 2%가 아니라 50% 부족해요

틱택이가 사기꾼과 대결을 하고 있습니다. 예상대로 사기꾼은 연속 배신을 합니다.
틱택이는 최초의 배신에 의해 110점 뒤떨어지고, 그 이후 연속된 보복에 의해 서로 점수가 없는 소강상태가 지속되고 있습니다.

어라? 그런데 이번에 웬일로 사기꾼이 협력을 해 오네요?

자, 다음번 틱택이의 전략은 무엇일까요?

저놈은 그동안 계속 배신만 해왔어. 지금 협력을 내놓은 것도 뭔가 속이려 하고 있는 거야라 생각하며 보복(배신)을 계속해야 할까요, 아니면 저녀석이 이제 정신을 차린 모양이네. 드디어 협력 시작이다라며 협력을 재개해야 할까요?

팃포탯 전략은 기본적으로 상대의 선택을 되풀이한다입니다. 상대가 얼마나 오래 협력했든 이번에 배신했으면 배신으로 갚아주는 것처럼, 상대가 얼마나 오래 배신해 왔든 이번에 협력을 했으면 협력으로 응답하는 것, 즉 배신자의 배신을 응징한다 + 배신자가 협력하면 용서한다가 합쳐진 것이 팃포탯입니다.

어차피 상대가 계속 배신해 올 동안 틱택이 역시 계속 배신으로 응답했으므로 점수차는 최초 배신당했을 때의 110점 차이일 뿐입니다. 그마저도 상대가 이번에 협력했을때 내가 배신으로 응징에 성공했으므로 점수차는 다시 0이 되었습니다.
상대가 다시 배신해봐야 점수차는 110점으로 되돌아갈 뿐이니 상대가 더 이득을 얻는 것도 아니죠. 그러니 배신자가 모처럼 협력을 한 이번 기회에 상호협력해서 점수를 얻을 길을 찾는 것이 팃포탯 전략입니다.

그런데 팃포탯 전략에 의해 응징을 해야 한다는 말은 많이들 합니다만 팃포탯 전략에 의해 용서를 해야 한다는 말을 들어본 기억은 별로 없습니다.

[날 배신한 놈은 절대 용서 못해] 역시 팃포탯 전략이 어울리지 않습니다.#


이 일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팃포탯 전략을 사용해야 한다? 글쎄요....

이 항목은 해석에 따라 옳은 말일 수도 있지만 그른 말일 수도 있습니다.
어떤 일을 해결하기 위해서 팃포탯 전략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일만을 해결하기 위해 팃포탯 전략을 사용해야 하며, 이 일이 해결되면 팃포탯 전략은 끝난다는 것은 잘못입니다.

어느 회사에서 직원 연수 중에 강사를 초빙해서 강의를 했습니다. 그 강사는 이 팃포탯 전략에 대해 강의를 했습니다. 직원들간에 두 팀으로 나뉘어 서로 협력과 배신을 해 가며 게임을 했습니다.
이렇게 끝났으면 좋았을 것을, 강사는 다음과 같은 말을 덧붙입니다.
"자, 여러분, 팃포탯 전략에 대해 잘 아셨습니까? 그럼 마지막으로 게임 한번만 더 하고 강의를 마치겠습니다."

팃포탯 전략이 상대의 협력을 이끌어낼 수 있는 원동력은 이번에 내가 배신하면 [다음번]에는 상대가 배신할 것이다라는 확신입니다. 그런데 그 [다음번]이 없는 마지막 게임이라면 어떻게 될까요?
위의 회사 강의에서도 [다음번]이 없다는 것을 알아챈 한편이 배신해서 대량의 점수를 가져갔으며, 응징할 기회가 없는 다른편은 배신감에 몸서리쳤습니다.@

그러므로 팃포탯은 끝나지 않는 경기, 최소한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는 경기에서만 유효합니다. 끝이 보이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팃포탯은 힘을 잃게 됩니다.
어떤 일을 해결하기 위해 팃포탯을 사용하는 것은 좋지만, 그 일만을 해결하기 위해 팃포탯을 사용할 수는 없습니다. 여러개의 안건을 모아 엮어서 팃포탯 전략을 설계해야 하며, 팃포탯으로 해결되는 안건만큼 새로운 안건을 추가시켜 팃포탯 전략이 계속되도록 하지 않으면 팃포탯 전략을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가 없습니다.
즉, [이 일을 해결하기 위해 팃포탯 전략을 사용한다]가 아니라 [팃포탯 전략에 이 일도 끼워넣는다]가 좀더 정확한 말이죠.


# 이런 식으로 작동하는 전략은 Tit fot Tat이 아니라 Spite입니다. 이 전략 역시 엑셀로드의 실험에 참가했습니다. 결과는 팃포탯보다 훨씬 뒤떨어지는 성과를 보였죠.


@ 응징할 방법이 없어 배신감에 몸서리친 다른편은 어떻게 했을까요? 그들은 결국 상대를 응징할 방법을 찾았습니다. 회사로 돌아간 후 상대방에 대한 업무협조거부로 말입니다.
결국 그 회사 분위기는 엉망이 되었다고 하더군요.
마치 껄끄러운 교사를 해직시켰더니 교육위원으로 돌아온 것처럼 팃포탯이 끝난 것처럼 보여도 언제든지 다시 시작될 수 있습니다.

10^-50

얼마 전에 보렐의 일어날 수 없는 확률에 대한 글을 올린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에밀 보렐에 대한 창조론자들의 주장을 검색한 스크린샷을 올렸었죠.


보시다시피 아무리 뒤져봐도 복붙한 글만 있을 뿐, 정작 보렐이 말했다는 10-50의 확률에 대한 근거는 전무했습니다.

오늘 오랜만에 도서관에 들러 책을 뒤져보다가 드디어 저 말에 대한 근거를 제가 발견했네요.

해당 이야기는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는 책입니다. 우연과 확률에 대한 이야기가 들어 있죠.


이 책에 창조론자들의 저런 주장이 실려 있습니다(빌리고자 했던 책이 아니라서 해당 부분만 사진으로 찍었기에 화질이 별로 좋진 않네요).



이것만 봐도 창조론자들 주장의 헛점을 잘 알 수 있습니다.
'우주적 규모에서 무시할 수 있는 확률'이란 약 1050분의 1보다 작은 확률이다.
입니다. 결코 일어날 수 없는 확률이 아니라 무시할 수 있는 확률이죠.

뭐  결코 일어날 수 없는 확률이나 무시할 수 있는 확률이나, 엎치나 메치나 마찬가지라구요?

이런 생각 한번 해 보죠. 내일 출근길에 교통사고가 나서 내가 죽을 확률은 얼마일까요? 이 확률이 결코 일어날 수 없는 확률일까요?
하지만 저럴 확률이 있다고 해서 내가 내일 출근을 하지 않고 집에만 있어야 할까요? 그것도 아니죠. 즉 출근길에 교통사고가 나서 내가 죽을 확률은 결코 일어날 수 없는 확률은 절대 아니지만 무시할 수 있는 확률인 것은 맞습니다.
현실적으로도 그 출근길에 교통사고가 나서 내가 죽을 확률을 무시하고 출근했다가 사고를 당한 사람들이 적지 않게 나타납니다.

즉 여기서 말하는 10-50의 확률이란 무시할 수 있는 확률일 뿐입니다. 그것을 창조론자들이 결코 일어날 수 없는 확률로 살짝 왜곡해서 써먹고 있는 것이죠. 거기에 에밀 보렐의 무한의 원숭이 정리에 의하면 결코 일어날 수 없는 확률은 0 뿐이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다른 식으로 한번 생각해 볼까요? 저기 이런 말이 있네요.
'지구적 규모에서 무시할 수 있는 확률'이란 약 1015분의 1보다 작은 확률이다.
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우주적 규모의 결코 일어날 수 없는 확률인 10-50보다는 훨씬 큰 확률입니다. 즉 우주적 규모에서는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확률입니다.
이 10-15인 확률이 우주 어딘가 행성에서 일어났습니다. 그렇다면 그 행성에서는 지구(행성)적 규모에서 결코 일어날 수 없는 확률인 10-15의 확률이 일어난 것이네요?
이런 식으로 봐도 여기서 말하는 작은 확률은 결코 일어날 수 없는 확률이 아니라 무시할 수 있는 확률인 것이 맞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이런 이유로 창조론자들의 주장에 근거를 요구하는 것입니다. 근거를 찾아보면 거의 항상 전혀 다른 주장이거든요. 물론 저들이 말하는 생명이 탄생할 확률조차 무기질에서 어느 한순간 생물이 탄생하는 창조론적인 확률이지 화학진화에 의한 생물탄생확률이 아닙니다. 63빌딩 옥상까지 한번에 뛰어 올라갈 수 있는 확률보다 비상구 계단을 통해 올라갈 수 있는 확률이 훨씬 크다는 것은 자명하죠.


그런데.... 창조론자들의 주장의 근거를 제가 직접 찾아서 반박해야 하다니...ㅡㅡ

탄소와 질소

동물에게 필요한 영양소는 크게 두가지가 있습니다. 탄수화물과 단백질이죠*.
탄수화물은 주로 에너지로 사용됩니다. 탄수화물을 태우면서 생기는 에너지로 몸을 움직일 수 있는 것입니다.
단백질은 몸을 만드는 재료로 사용되죠. 세포를 만들기 위해 필수적인 것이 단백질입니다.

탄수화물과 단백질의 가장 큰 차이는 무엇일까요? 바로 질소입니다. 탄수화물에는 질소가 없는 대신 단백질에는 반드시 질소가 들어가게 됩니다.
탄수화물

단백질
그러므로 어느 먹거리에 포함된 단백질 양을 측정하기 위해서는 질소함량을 측정하게 됩니다. 과거 중국의 가짜분유 사건에서 멜라민을 추가한 것 역시 멜라민의 질소가 검출되어 보다 많은 단백질이 포함된 것으로 눈가림을 하기 위해서였죠.
멜라민
앞에 진화론 이야기 - 수페르사우루스의 숨쉬기에서 고대의 산소농도 변화에 대해 이야기했었습니다. 그리고 그 산소농도에 의한 공룡(조류)의 호흡기 진화에 대하여 다루었었죠.
다시한번 과거 대기 농도의 변화를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이 그래프를 본다면, 이산화탄소 농도가 오늘날처럼 낮았을 때는 석탄기 잠시였을 뿐 주로 훨씬 높은 농도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특히 트라이아스기부터 백악기까지의 중생대에는 현재에 비해 상당히 높은 이산화탄소가 존재했습니다. 과연 이런 높은 이산화탄소 대기에서 생태계는 어떤 현상이 일어날까요?

과학자들은 이와 같은 환경에서의 생태계를 연구하기 위해 인위적으로 높은 농도의 온실에서, 또는 정원에 이산화탄소발생기를 설치하고 소철 등 당시의 식물을 기르는 실험을 하곤 했습니다.

이런 환경에서는 식물들이 훨씬 크고 울창하게 자라긴 했습니다. 그런데 다른 일반적인 생물에 비하여 벌레들이 먹은 자국도 훨씬 크게 나타난다는 사실도 밝혀졌죠.

왜 이런 결과가 나올까요? 이 나뭇잎을 분석해본 결과 일반적인 식물에 비해 질소(N)의 농도가 훨씬 낮게 나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은 무슨 뜻일까요? 나뭇잎에 탄수화물에 비해 단백질의 양이 훨씬 적다는 뜻입니다(나뭇잎 역시 세포로 이루어져 있으며 세포는 단백질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어떤 벌레가 세포를 만들어 몸을 키우기 위해서는 나뭇잎 1장분의 질소(단백질)를 필요로 합니다. 그런데 이산화탄소 농도가 짙어져서 나뭇잎의 질소농도가 1/5로 줄어들었습니다.
이 벌레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벌레는 필요한 질소를 얻기 위해 나뭇잎 5장을 먹으면 됩니다. 그렇게 되면 충분한 단백질을 섭취해서 몸을 키울 수 있습니다. 그 때문에 높은 이산화탄소 농도에서 자란 나뭇잎에 벌레구멍이 더 많이 뚫린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무조건 많이 먹는다고 해서 끝나는 것이 아니죠.
위에서 높은 이산화탄소 농도에서는 질소에 비해 탄소의 양이 훨씬 많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필요한 만큼의 질소(단백질)를 얻는다면, 그것은 탄소(탄수화물)는 필요 이상으로 많이 섭취한다는 그런 뜻이 됩니다. 즉 몸에 탄수화물이 너무 쌓인다는 것입니다.

이 탄수화물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까요?

한가지 방법은 몸을 키우는 것입니다. 몸을 거대하게 하면 그 큰 몸을 움직이기 위해 더 많은 탄수화물을 사용해야 하며, 또한 남는 탄수화물은 몸 곳곳에 더 많이 저장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런 이유로 특히 초식공룡들이 거대한 몸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또한 몸이 커지면 그만큼 천적도 사라진다는 또 다른 장점도 존재합니다.
물론 이렇게 몸이 커지기 위해서는 진화론 이야기 - 수페르사우루스의 숨쉬기에서 언급했듯 호흡기의 진화도 필요했습니다.

다른 방법으로는 그냥 탄수화물을 태워버리는 방법도 있습니다. 즉 근육을 움직이지 않더라도 탄수화물을 태워버리는 것이죠. 이렇게 되면 항상 체온을 높게 유지할 수 있기 때문에, 햇볕에 몸이 데워져야 움직일 수 있는 변온동물에 비해 진화적 우위를 가질 수 있게 됩니다#. 바로 이것이 온혈동물의 시초가 아닐까 학자들은 추측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변온동물인 뱀 중에는 초식이 없습니다. 모두가 육식을 하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변온동물인 도마뱀의 거의가 육식입니다. 극히 일부(이구아나 등)들만이 초식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육식 도마뱀과 초식 도마뱀을 비교해 보면 재미있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일반적인 육식 도마뱀에 비해 초식 도마뱀들은 대부분 몸집이 크거나 더 활동적이거나 체온이 더 높습니다.

이런 것을 보면 높은 이산화탄소 환경에서 단백질보다 탄수화물이 높은 식물을 먹은 초식동물들 중 일부가 과섭취한 탄수화물을 그냥 태우는 과정에서 온혈성을 얻었으며, 예열이 필요없이 빠르게 이동하게 된 이 초식동물을 쫓던 육식동물들도 따라서 온혈성을 얻게 되었다는 추측이 가능합니다. 물론 이것은 아직까지는 추측이며 학자들이 연구중인 과제입니다.(아마 이 구절이 창조론자들이 가장 좋아하는 부분(아직까지는 추측)이겠군요..ㅡㅡ)


본문에는 두가지 방법을 썻지만 실은 한가지 방법이 더 있습니다. 탄수화물은 일부만 흡수하고 그냥 버리는(배설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여기서 창조론자들이 흔히 하는 질문이 있죠.
그렇다면 왜 공룡은 탄수화물을 태워버리거나 배설하는 방법을 쓰지 않고 거대화하는 길을 선택했는가,
이구아나는 왜 그냥 배설하거나 거대화하지 않고 태워버리는 방법을 선택했는가,
이런 질문이 나올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이것은 말하자면 주사위를 던졌는데 왜 2의 눈이 나왔는가와 같은 질문이죠. 주사위를 여러개 던지면 어떤 것은 1이 나오고 다른 것은 4가 나올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높은 이산화탄소 농도에 적응(진화)하는 과정에서 어떤 동물은 거대화된 것이고 다른 동물은 온혈이 된 것 뿐입니다.


* 물론 3대 영양소라고 해서 지방도 포함됩니다. 하지만 탄수화물과 지방은 몸 속에서 쉽게 변환이 될 수 있습니다. 반면 질소가 포함된 단백질로의 변환은 쉽지 않습니다.
+ 과거에 이산화탄소 농도가 높았다는 것이 현대의 탄소에 의한 온난화를 정당화시켜주진 않습니다. 환경의 변화가 인류에게 긍정적이라 할 수는 없을 테니까 말입니다.
# 물론 이산화탄소 농도가 낮아진 현대에서는 체온을 유지하기 위해 많은 탄수화물 - 많은 먹이를 먹어야 한다는 단점이 생기기도 했습니다.

이카루스의 역설

이카루스는 잘 아시다시피 그리스의 명공 다이달로스의 아들입니다. 그 다이달로스는 라비린토스를 만들어 미노타우루스를 가두어두게 됩니다. 그런데 어쩐일로 왕의 노여움을 사서 자신이 만든 미로에 아들과 함께 갇히게 됩니다.
이 미궁에서 다이달로스는 날려들어온 새털을 밀랍으로 붙여 날개를 만들어 아들과 함께 날아서 탈출합니다. 하지만 아들 이카루스는 하늘을 나는 쾌감에 들떠 너무 높이 올라가죠. 태양열에 밀랍날개가 녹아 떨어질 정도로 말입니다.
결국 날개를 잃은 이카루스는 하늘에서 떨어져 사망하게 됩니다.

즉 이카루스를 하늘로 올렸던 날개 때문에 이카루스는 하늘에서 떨어지게 된 것이죠. 이와 같은 일을 이카루스의 역설이라고 합니다.

이를테면 시험 전날 밤샘공부를 하는 우등생이 있다고 해 봅시다. 그는 시험전날의 하루밤샘이 우등생이 될 수 있는 날개인 셈입니다.
수능날이 가까워졌습니다. 그러나 그가 우등생이 될 수 있도록 한 날개(시험전날밤샘)는 시험 전날까지 공부를 방해하다가 시험 전날에 날아오르려 합니다. 즉 수능 전날에 밤을 새우게 됩니다. 결국 다음날 공부부족과 수면부족에 수능이라는 긴장감이 겹쳐 시험을 망치고 맙니다. 이런 것이 이카루스의 역설입니다.

이러한 이카루스의 역설은 사회 곳곳에서 나타나지만, 여지없이 진화의 현장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인류는 수십만년에 걸친 원시시대를 거친 이후 문명을 쌓은지 수천년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더구나 지금처럼 (세계 일부에서나마) 풍족한 생활을 하게 된 것은 수십년밖에 되지 않았죠.

수십만년동안의 원시시대를 생각해 봅시다. 그들은 항상 굶주렸습니다. 쉽게 사냥할 토끼 등은 너무 작았고 맘모스같은 큰 동물은 잡기가 힘들었습니다. 과일 등도 품종개량이 되지 않는 야생이라 너무 작고 수도 적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생존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어쩌다가 한번 맘모스 같은 큰 동물을 잡았을 때 가능하면 많이 먹어두는 것입니다. 그중에서도 지방이나 당분 등 가장 열량이 높은 부분을 많이 먹어두는 것이었죠. 그리고 그 열량을 가능하면 몸에 쌓아두는 것입니다. 그래야 식량이 부족한 시기를 버틸 수 있기 때문이었죠

그 때문에 수십만년동안의 원시시대동안 인류의 진화방향은 가장 열량이 높은 부분많이 먹어, 그것을 몸에 쌓아두는 것이었습니다. 원시인들 중에서 저런 사람들이 먹거리가 없는 기간에도 많이 살아남아 번식을 할 수 있었거든요. 그런 이유로 열량이 높은 지방이나 달콤한 당분에 대한 선호도가 유전자에 새겨지게 된 것이죠. 즉 이렇게 진화한 유전자는 원시시대 사람들이 살아남을 수 있도록 했던 이카루스의 날개였습니다.

하지만 현대에 와서 인류는, 이렇게 인류를 살려온 유전자에 배신을 당하고 맙니다. 지난 수백년간 품종개량으로 인해 크고 열량이 많은 먹거리가 많아졌습니다. 하지만 수십년이란 시간은 [가장 열량이 높은 부분을 많이 먹어, 그것을 몸에 쌓아두는 유전자]가 새로운 진화방향으로 나가기에는 너무 짧은 시간이었죠. 결국 이런 사람들이 많아진 것입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몸매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노력이 필요해졌죠. 식욕을 억제해야 하고 몸에 쌓인 열량을 태우기 위해 운동을 해야 합니다.


이 [가장 열량이 높은 부분을 많이 먹어, 그것을 몸에 쌓아두는 유전자]는 원시시대 사람들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필수적인 유전자였습니다. 하지만 환경이 바뀐 현재로서는 사람들을 성인병에 빠뜨리는, 녹아버린 이카루스의 날개가 되어버린 것이죠.

이와같이 진화의 목적은 [지금 당장 잘 사는 것]입니다. [앞으로도 잘 사는 것]은 진화의 목적이 아니죠. 원시시대에 [지금 당장 잘 살기 위해] 진화한 유전자는 환경이 바뀐 현대에 와서는 해로운 유전자가 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유전자는 당이나 지방에 대한 거부감으로 왜 진화가 되지 않을까요?
첫째, 진화라는 것이 그렇게 쉽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이런 풍족한 환경이 된지 불과 수십년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특히나 인간처럼 한 세대고 긴 종에서 수십년동안에 갑자기 진화가 일어난다면 그것은 진화론이 위험에 처했다는 증거가 됩니다.
둘째, 진화라는 것은 생존력(정확히는 번식력)의 차이에 의해 일어납니다. 만약 저런 비만인들이 빨리 죽거나 해서 생식력이 떨어진다면 그때 진화가 일어납니다.
하지만 현대는 또한 의학이 발달한 상태죠. 저렇게 살쪘다고 해서 쉽게 죽거나 하지는 않는다는 뜻입니다. 그 때문에 저런 [가장 열량이 높은 부분을 많이 먹어, 그것을 몸에 쌓아두는 유전자]가 도태되기에는 더욱 더 많은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혹시 인간 유전자를 완벽하게 분석해서 저런 [가장 열량이 높은 부분을 많이 먹어, 그것을 몸에 쌓아두는 유전자]를 인위적으로 도태시키지 않는다면 말입니다.

지적설계자가 일하는 법

지적설계자가 커다란 집을 지었습니다.
겨울이 되자 사람들의 민원이 들어옵니다.
[벽에서 자꾸 결로현상이 생겨 물이 흘러요. 고쳐주세요]

지적설계자는 어떻게 대응할까요?
[이렇게 벽에 수로를 만들어서 결로가 여기 모이도록 했습니다. 이 물을 식수로 사용하도록 하세요]

다시 사람들의 민원이 생깁니다.
[결로가 모인 물을 먹고 우리 애가 배탈이 났어요. 책임지세요!]

이에 대해 지적설계자는 다시 이렇게 처리를 합니다.
[아, 그래요? 그러면 결로가 흐르는 관에 정수기를 설치하도록 하죠. 정수기를 통과한 물을 먹으면 괜찮을 겁니다.]

다시 사람들이 불평합니다.
[정수기가 전기를 너무 많이 써서 전기료가 많이 나와요. 어떻게 할 수 없나요?]

지적설계자는 다음과 같이 대꾸하죠.
[그 전기료 때문에 파산할 것 같나요? 그렇지 않으면 그냥 사세요.]


물론 이 지적설계자를 추종하는 사람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와 정말 엄청난 집이다. 결로현상을 이용해서 물을 얻을 뿐 아니라 그 물을 정수해서 식수로 사용할 수 있도록 했어. 정말 훌륭한 설계자야.
전기료가 많이 나온다고? 이 좋은 집을 설계해준 설계자에게 무슨 망발이냐? 설계자에게 깊은 뜻이 있을 테니 닥치고 살아!]

오르막길 찾기



그림과 같이 높은 낭떠러지 위에 토끼 한마리가 올라가 있습니다. 토끼는 올라갈 수 없는 높이의 낭떠러지였죠.
그것을 보고 ㉩이란 사람은 말합니다.
"저 높은 낭떠러지 위를 토끼가 올라갈 수 있겠는가? 틀림없이 누군가가 토끼를 올려준 것이다"
그리고 이 답에 만족하고, 그는 더이상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반면 ㉨이란 사람은 낭떠러지 주위를 찾아보고는, 낭떠러지 뒤쪽으로 완만한 오르막길이 있음을 발견합니다.
"아, 여기 오르막길이 있네, 토끼는 이 오르막길로 올라갈 수도 있겠는걸?"
그 말을 들은 ㉩은 주로 다음과 같이 반박합니다.
"그렇다면 토끼가 그 오르막길로 올라갔다는 증거는 찾았냐? 그 길에서 토끼 발자국이라도 봤어? 그런 것 없으면 토끼가 그 길로 올라갔다는 것은 네 생각일 뿐이야."

과연 그럴까요?
㉩의 주장은 말하자면 토끼는 스스로의 힘으로 절벽 위로 올라갈 수 없다입니다. 이 주장을 반론하기 위해서는 토끼가 스스로의 힘으로 절벽을 올라갈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는 것으로 충분하죠. 정말로 그 방법으로 올라갔는지까지 증명할 필요는 없습니다.

이를테면 진화론 이야기 - 절반의 눈에서도 마찬가지죠. 눈의 진화는 불가능하다는 주장에 대해 눈의 진화가 가능한 방법을 제시했습니다. 저들의 반응요?



다시 말하지만, 이 경우에는 그렇게 변하였다는 근거는 필요 없습니다. 저런 방법이 있다는 것 자체가 눈의 진화는 불가능하다는 주장의 반론으로 충분하거든요.

아무튼 창조론자들의 주장은 거의 대부분이 저런 진화는 불가능하다로 끝납니다.
이를테면 갯민숭달팽이(nudibranch) 같은 경우가 있습니다.



얘네들의 방어전략은 독특합니다. 히드라 같은 자포동물을 먹고 사는데, 히드라는 자포(刺胞, cnidocyte)라는 무기를 가지고 있죠. 용수철 모양으로 말려있다가 적에 접촉하면 튕겨나가 독을 주입하는 세포입니다.
하지만 갯민숭달팽이는 이 자포에 아무런 해를 입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자포를 흡수해서 등에 배치해서 자신의 무기로 만들어버리죠.

갯민숭달팽이가 진화하려면 자포를 자극하지 않으면서 그 자포를 등에 나 있는 촉수 끝으로 이동시키는 과정이 필요한데 이런 진화가 어떻게 가능할 수 있겠느냐?

이것이 전형적인 창조론자들의 주장입니다. 창조론이 야훼가 다했다로 끝나는 것처럼 진화론도 진화가 다했다 정도로 이해하기에 저런 진화가 한순간에 이루어졌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죠.

이런 주장을 반박하려면 위에서처럼 오르막을 오르는 방법을 찾아내면 됩니다. 즉 다음과 같은 완만한 오르막을 찾아내면 되는 것입니다.

1. 최초의 갯민숭달팽이는 자포에 닿으면 공격을 받는 그런 달팽이였을 겁니다. 히드라를 잡더라도 자포가 없는 부분만 먹어야 했었죠.
2. 자포를 자극하지 않는 특별한 물질을 분비하는 돌연변이가 생깁니다. 이 녀석은 자포가 있는 부분도 맘대로 먹을 수 있습니다. 기존 달팽이보다 더 많은 먹이를 먹고 진화적 우위를 차지할 수 있습니다.
3. 먹은 자포를 배설하지 않고 몸에 보관하는 변이체가 생깁니다. 포식자가 이 달팽이를 먹게 되면 몸에 있는 자포에 의해 피해를 입고 이 달팽이를 기피하게 됩니다. 이것으로 더 높은 진화적 우위를 차지할 수 있습니다.
4. 자포를 그냥 몸에 보관하는 것이 아니라 등으로 옮기는 변이체가 생깁니다. 이렇게 되면 포식자가 달팽이를 잡아먹으려 하면 자포에 의해 피해를 입게 됩니다.
5. 등에 자포가 보관된 부분의 세포분열이 활성화되는 변이체가 생깁니다. 즉 자포가 있는 부분에 촉수가 자라나 좀더 쉽게 자포가 발사됩니다.

물론 갯민숭달팽이가 저런 식으로 진화했다는 증거는 없습니다. 하지만 위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여기서 말하는 것은 갯민숭달팽이는 저렇게 진화했다가 아닙니다. 갯민숭달팽이는 진화할 수 없다는 주장에 대한 반론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