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카루스의 역설

이카루스는 잘 아시다시피 그리스의 명공 다이달로스의 아들입니다. 그 다이달로스는 라비린토스를 만들어 미노타우루스를 가두어두게 됩니다. 그런데 어쩐일로 왕의 노여움을 사서 자신이 만든 미로에 아들과 함께 갇히게 됩니다.
이 미궁에서 다이달로스는 날려들어온 새털을 밀랍으로 붙여 날개를 만들어 아들과 함께 날아서 탈출합니다. 하지만 아들 이카루스는 하늘을 나는 쾌감에 들떠 너무 높이 올라가죠. 태양열에 밀랍날개가 녹아 떨어질 정도로 말입니다.
결국 날개를 잃은 이카루스는 하늘에서 떨어져 사망하게 됩니다.

즉 이카루스를 하늘로 올렸던 날개 때문에 이카루스는 하늘에서 떨어지게 된 것이죠. 이와 같은 일을 이카루스의 역설이라고 합니다.

이를테면 시험 전날 밤샘공부를 하는 우등생이 있다고 해 봅시다. 그는 시험전날의 하루밤샘이 우등생이 될 수 있는 날개인 셈입니다.
수능날이 가까워졌습니다. 그러나 그가 우등생이 될 수 있도록 한 날개(시험전날밤샘)는 시험 전날까지 공부를 방해하다가 시험 전날에 날아오르려 합니다. 즉 수능 전날에 밤을 새우게 됩니다. 결국 다음날 공부부족과 수면부족에 수능이라는 긴장감이 겹쳐 시험을 망치고 맙니다. 이런 것이 이카루스의 역설입니다.

이러한 이카루스의 역설은 사회 곳곳에서 나타나지만, 여지없이 진화의 현장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인류는 수십만년에 걸친 원시시대를 거친 이후 문명을 쌓은지 수천년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더구나 지금처럼 (세계 일부에서나마) 풍족한 생활을 하게 된 것은 수십년밖에 되지 않았죠.

수십만년동안의 원시시대를 생각해 봅시다. 그들은 항상 굶주렸습니다. 쉽게 사냥할 토끼 등은 너무 작았고 맘모스같은 큰 동물은 잡기가 힘들었습니다. 과일 등도 품종개량이 되지 않는 야생이라 너무 작고 수도 적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생존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어쩌다가 한번 맘모스 같은 큰 동물을 잡았을 때 가능하면 많이 먹어두는 것입니다. 그중에서도 지방이나 당분 등 가장 열량이 높은 부분을 많이 먹어두는 것이었죠. 그리고 그 열량을 가능하면 몸에 쌓아두는 것입니다. 그래야 식량이 부족한 시기를 버틸 수 있기 때문이었죠

그 때문에 수십만년동안의 원시시대동안 인류의 진화방향은 가장 열량이 높은 부분많이 먹어, 그것을 몸에 쌓아두는 것이었습니다. 원시인들 중에서 저런 사람들이 먹거리가 없는 기간에도 많이 살아남아 번식을 할 수 있었거든요. 그런 이유로 열량이 높은 지방이나 달콤한 당분에 대한 선호도가 유전자에 새겨지게 된 것이죠. 즉 이렇게 진화한 유전자는 원시시대 사람들이 살아남을 수 있도록 했던 이카루스의 날개였습니다.

하지만 현대에 와서 인류는, 이렇게 인류를 살려온 유전자에 배신을 당하고 맙니다. 지난 수백년간 품종개량으로 인해 크고 열량이 많은 먹거리가 많아졌습니다. 하지만 수십년이란 시간은 [가장 열량이 높은 부분을 많이 먹어, 그것을 몸에 쌓아두는 유전자]가 새로운 진화방향으로 나가기에는 너무 짧은 시간이었죠. 결국 이런 사람들이 많아진 것입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몸매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노력이 필요해졌죠. 식욕을 억제해야 하고 몸에 쌓인 열량을 태우기 위해 운동을 해야 합니다.


이 [가장 열량이 높은 부분을 많이 먹어, 그것을 몸에 쌓아두는 유전자]는 원시시대 사람들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필수적인 유전자였습니다. 하지만 환경이 바뀐 현재로서는 사람들을 성인병에 빠뜨리는, 녹아버린 이카루스의 날개가 되어버린 것이죠.

이와같이 진화의 목적은 [지금 당장 잘 사는 것]입니다. [앞으로도 잘 사는 것]은 진화의 목적이 아니죠. 원시시대에 [지금 당장 잘 살기 위해] 진화한 유전자는 환경이 바뀐 현대에 와서는 해로운 유전자가 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유전자는 당이나 지방에 대한 거부감으로 왜 진화가 되지 않을까요?
첫째, 진화라는 것이 그렇게 쉽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이런 풍족한 환경이 된지 불과 수십년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특히나 인간처럼 한 세대고 긴 종에서 수십년동안에 갑자기 진화가 일어난다면 그것은 진화론이 위험에 처했다는 증거가 됩니다.
둘째, 진화라는 것은 생존력(정확히는 번식력)의 차이에 의해 일어납니다. 만약 저런 비만인들이 빨리 죽거나 해서 생식력이 떨어진다면 그때 진화가 일어납니다.
하지만 현대는 또한 의학이 발달한 상태죠. 저렇게 살쪘다고 해서 쉽게 죽거나 하지는 않는다는 뜻입니다. 그 때문에 저런 [가장 열량이 높은 부분을 많이 먹어, 그것을 몸에 쌓아두는 유전자]가 도태되기에는 더욱 더 많은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혹시 인간 유전자를 완벽하게 분석해서 저런 [가장 열량이 높은 부분을 많이 먹어, 그것을 몸에 쌓아두는 유전자]를 인위적으로 도태시키지 않는다면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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