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론 이야기 - 진화론이 '완벽한 진리'일까?

창조론자들이 보기에 창조론은 '완벽한 진리'입니다. 신이 쓴 책(성경)에 신의 존재와 그 신의 창조작업이 명시되어 있으니까 말입니다(물론 이런 논증은, 신이 신을 증명하는 '순환논리'일 뿐이지만, 창조론자들에게 중요한 것은 논리가 아니라 믿음이죠).
그때문에 창조론자들은, 진화론자들도 진화론을 '완벽한 진리'라 여기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가끔씩 바뀌는 진화론에 대해 '그렇게 계속 바뀌는 진화론이 진리라는 것 역시 진화론에 대한 믿음이 아니냐'며 진화론을 창조론과 동급인 믿음으로 폄하하곤 합니다.
하지만 그런 반문은 결국 사이비과학인 창조과학과, 진화론을 포함하는 진짜과학을 구분하지 못한다는 반증일 뿐입니다. 왜냐하면 과학이란 것 자체가 자꾸 변하는 학문 - 완벽한 진리에 한발짝씩 다가가는 학문이기 때문입니다.

진화론은 현재까지 발견된 증거들을 가장 잘 설명하는 이론입니다. 하지만 과학자들은 진화론을 '완벽한 진리'라고 하지는 않습니다. 과학은 항상 반증될 가능성이 남아 있으며, 그러한 반증이 나오지 않는지 끊임없이 관찰을 해야 합니다.
언젠가는 진화론으로 설명할 수 없는 새로운 현상이 관측될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과학에 대한, 진화론에 대한 불신을 가질 필요는 없습니다. 새로운 현상을 설명할 수 있는 새로운 이론은 기존 진화론보다 완벽한 진리에 한발짝 더 가까운 이론이 될 테니까 말입니다.
그렇지 않고 '진화론은 완벽한 사실이다'라는 오만에 빠져있는 것이야말로 완벽한 진리에 다가갈 기회를 차버리는 가장 비과학적인 태도입니다.

마지막으로 제목에 대한 답을 하자면,
진화론이 완벽한 진리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창조론보다는 완벽한 진리에 훨씬 가깝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완벽한 진리에 점점 다가가고 있습니다.

진화론 이야기 - 남녀탐구생활 - 쇼핑



동영상은 요즘 인기있는 남녀탐구생활의 한 꼭지입니다. 백화점에서 남자는 처음 들른 가게에서 물건이 '너무 나쁘지 않으면' 사는 반면, 여자는 '여러 가게를 들러보고 가장 좋은 것'을 산다는 점을 약간의 과장과 함께 보여주고 있습니다.

원시시대, 남자는 수렵을, 여자는 채취를 하는 식으로 서로 분업화가 되어 있었습니다.
어느날 아침, 한 마을의 남자들은 동물을 잡으러, 여자들은 과일을 모으러 집을 나섰습니다.

한동안 길을 걷다가, 여자들은 과일이 열린 나무를 발견했습니다. 이때 여자들의 최선의 선택은 무엇일까요?
열매를 따서 돌아가는 것은 하루일을 끝내기에는 너무 이르기에 시간낭비입니다. 그렇다고 열매를 따서 들고 다니기에는 너무 무거울뿐 아니라, 더 좋은 과일이 발견되면 버리게 되겠죠. 결국 여자들의 가장 좋은 선택은 나무의 위치를 기억해둔 후 계속 다른 과일을 찾아다니는 것입니다. 그리고 돌아올때 가장 좋았던 나무들 몇군데만 들러 과일을 따오는 것입니다.

한동안 길을 걷다가, 남자들은 조그만 토끼를 발견했습니다. 이때 남자들의 최선의 선택은 무엇일까요?
여자들처럼 더 큰 사냥감을 찾기 위해 지나쳤다가, 돌아오는 길에 들른다면 그 토끼가 그자리에 있으리라는 보장은 전혀 없습니다. 결국 최선의 선택은 그 토끼를 잡아서 나머지 사냥길동안(무겁지만) 들고 다니는 것입니다. 비록 코끼리를 잡아 지금 잡은 작은 토끼를 버리고 오는 한이 있어도 말이죠.

그러한 이유로 여자들에게는 여러 곳을 들러 가장 좋은 것을 찾는 본능이, 남자들에게는 처음 들른 곳에서 모든 것을 해결하려는 욕구가 생긴 것입니다.

이것을 진화론적으로 설명하는 이유는, 이러한 본능이 후천적으로 길러진 것이 아니라 선천적이기 때문이죠. 남자라도 어린 시절에는 백화점에 주로 어머니와 갑니다. 그래서 어린 시절부터 어머니의 '여러곳에 들러서 가장 좋은 것 고르기'에 많이 접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남자아이는 나중에 '처음 들른 곳에서 물건사기' 버릇이 들고 맙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본능은 선천적으로 유전자에 박혀 있다고 봐야겠죠.

진화론 이야기 - 매냐 비둘기냐

어떤 동물무리가 있습니다. 같은 종이지만 그들 중에는 조금더 호전적인 개체(매파)가 있는가 하면 비교적 평화로운 개체(비둘기파)가 있습니다.

먹이를 사이에 두고 두 비둘기파가 만난 경우 두 비둘기파는 서로 대치를 합니다. 어느 한쪽이 지쳐 물러나야 대치가 끝납니다.
먹이를 사이에 두고 두 매파가 만난 경우 두 매파는 서로 싸움을 합니다. 결국 어느 한쪽이 심한 상처를 입을 때까지 싸움을 벌입니다.
먹이를 사이에 두고 매파와 비둘기파가 만난 경우 매파의 공격에 비둘기파는 달아나고 맙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저 동물무리가 진화했을때 도달하게 될 안정된 전략(strategy : 매파전략인지 비둘기파전략인지)을 ESS(Evolutionarily Stable Strategy)라 합니다. 과연 저 동물무리의 ESS는 어떤 상황이 될까요.

ESS를 계산하기 위해서는 각 상황에 대해 각 개체가 얻을 수 있는 이익을 수량화시키는 것이 필요합니다.


승자
패자
비둘기파vs비둘기파
먹이(50)+대치(-10)
대치(-10)
매파vs매파
먹이(50)
큰 부상(-100)
매파vs비둘기파
먹이(50)
0

만약 동물무리 전체가 비둘기파로 구성되어 있었다면 그들은 항상 먹이를 사이에 두고 대치만 할 것입니다. 만약 승률이 50%라면 이겼을때 40점, 졌을때 -10점으로 평균 15점을 얻게 됩니다.
이 동물무리 안에 매파가 하나 생겼다면*, 이 매파는 항상 비둘기파와 대결하여 승리하게 됩니다. 즉 이 매파는 50점으로 비둘기파의 15점보다 훨씬 높습니다. 즉 매파 유전자가 무리에 퍼져나갑니다.
그리하여 매파가 무리 전체에 퍼져나간다면, 이제 매파는 항상 매파와만 만납니다. 즉 이겼을떄 50점, 졌을때 -100점으로 (역시 승률 50%라면) 평균 -25점을 얻죠.
이 동물무리 안에 비둘기파가 하나 생겼다면*, 이 비둘기파는 항상 매파와 대결하여 패배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항상 달아나서) 0점으로, 매파의 -25점보다는 훨씬 높습니다. 즉 비둘기파 유전자가 무리에 퍼져나갑니다.

실제로는 이렇게 진동하는 것이 아니라 일정한 비율로 수렴하게 됩니다. 위와 같은 경우, 매파와 비둘기파는 7:5의 비율로 평형을 이루며 이때 모든 개체들의 점수는 6.25입니다.(물론 이겼을 때와 졌을 때의 점수를 바꾸면 비율은 달라집니다).

물론 이것은 극히 간단한 모형이지만, '왜 같은 종에서도 호전적인 개체와 덜 호전적인 개체가 공존하는가'에 대한 진화론적인 대답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출처 : 이기적 유전자

* '콩심은데 콩난다'는 속담도 있지만, 진화론에서는 '콩심은데 거의 콩난다'가 맞습니다. 부모가 모두 매파(또는 비둘기파)라도 그 자손은 비둘기파(또는 매파)가 나올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