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재미있는 기사를 보게 되었습니다.
Azores군도에서 향유고래를 관찰하던 연구팀이, 4마리 새끼를 돌보고 있는 향유고래 한마리를 발견했다. 그런데 그 새끼들 중 한마리만이 어미의 친자식이었다. 다른 어미고래들이 먹이를 사냥하러 간 동안 그 새끼고래들을 모아 한마리가 돌봐주는 일종의 공동육아 - 아기돌보기 품앗이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사진 및 기사 출처).
어떤 것이 진화되기 위해서는 '점진적인 변화의 누적에 의해 커다란 변화가 가능할 것'이라는 조건이 필요합니다. 창조론자들이 가끔 주장하는 '인간의 이성이 어떻게 진화할 수 있었는지 설명해 봐라'는 것 역시 동물의 본능과 인간의 이성 사이에는 건널수 없는 강이 존재한다는 그들의 '믿음' 때문입니다. 물론 그들은 동물의 본성과 인간의 이성이 어떻게 다른지는 '창조주가 자신의 모습대로 만든 인간을 감히 동물과 비교하다니...' 정도로 넘어갈 뿐입니다만.
확실히 동물의 본능과 인간의 이성 사이의 관계가 오른쪽 그림과 같이 '매우 높은 낭떠러지'라면 인간의 이성을 진화론적으로 설명하기가 쉽지 않을 것입니다. 창조론자들의 주장대로 '본능에서 어느 한순간 이성이 튀어나오지 않는 이상' 저런 진화는 불가능하며, 또한 '본능에서 어느 한순간 이성이 튀어나오기' 역시 진화론적으로 생각했을때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위에서 제시한 '고래의 아기돌보기 품앗이' 모습은, 비록 인간의 이성에는 도달하지 못했지만 동물의 본능에서는 벗어난 모습을 보입니다. 그뿐 아니라 주인을 구한 개들이라든지, 죽어가는 동료를 구하려는 돌고래 등 상당히 많은 '동물답지 못한 행동'을 하는 동물들이 있습니다.
그런 것을 본다면 본능과 이성의 관계는 윗그림과 같은 절벽이 아니라 왼쪽 그림과 같은 비탈길, 즉 본능과 이성 사이가 단절된 것이 아니라 그 사이에 수많은 상태가 있는 스펙트럼을 이루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동물적인 본능으로부터 '점진적 변화'를 통해 인간의 이성이 진화할 수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엮인글 : 창조론 이야기 - 원숭이의 양심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