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념의 차이

창조론을 주장하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다 보면 가끔 겪는 일입니다. 분명히 틀리지 않은, 옳은 말을 하고 있는데 서로 그 말을 이해하는 방식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말 자체는 틀린 말이 아닌데 그 말이 맞다고 인정하기에는 뭔가 께름직한 그런 말 말입니다.
물론 거의 90% 이상은 그들 맘대로 그 말을 이해한 결과이긴 합니다만.
그런 창조론자들이 잘못 이해하는 것들에는 이런 것들이 있더군요.


1. 과학은 추측에 불과하다.


과학자들은 사실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추측을 말할 뿐이다. "~~이다"라 말하는 과학자는 없다. 그들은 항상 "~~일 것이다"라 말한다. 즉 그들은 자신도 확신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실제로 과학자들 중에 '~~이다'라 단정적으로 말하는 과학자 보셨나요? 저는 많이 못본 것 같네요. 특히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유전자 같은 책을 보면 '~~일 것이다', '~~게 되었을 것이다'란 말이 참 많이 나옵니다.
그것이 과연 과학자들이 확신이 없어서 그렇게 말하는 것일까요?

시속 100km인 자동차가 한시간 전에 출발했다면 과학자들은 '100km거리에 있다'고 하지 않습니다. '100km 거리에 있을 것이다'라 하죠. 잘 아시겠지만 과학에는 [반증 가능성]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아무리 확실한 사실이라도 그것이 틀릴 가능성이 늘 존재하기에 자동차가 100km거리에 없을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과학을 모르는 사람들은 이런 과학자들의 신중함과학자들도 확신하지 못하는 것으로 해석합니다.

과학자들은 확신이 없으면 아예 말을 하지 않습니다. 과학자들이 '~~일 것이다'라고 한다면 그것은 그 과학자에게 증거도 있고 확신이 있다는 뜻입니다.



2. 진화론은 100% 완벽하게 증명되지 않았다.


사실 진화론이 100% 완벽하게 증명되지 않은 것은 맞습니다. 하지만 그런 식으로 본다면 과학에서 100% 완벽하게 증명된 것은 없습니다.
과학을 잘 모르는 사람들이 주로 이런 식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있죠.

이것으로 이 이론은 완벽하게 증명되었다. 이제 이 이론은 진리다. 이 이론에 반론을 제시하는 것은 이단이다.

하지만 과학에서 완벽한 증명이란 없습니다. 모든 과학이론들은 계속 발견되는 자연현상을 가지고 끝없는 증명을 요구받습니다. 그래서 더이상 자신을 증명하지 못하면 - 틀렸다는 것이 증명되었다면 정설의 자리를 뺏기게 됩니다. 이를테면 뉴턴역학이 상대성이론에게 자리를 뺏긴 것처럼 말입니다.

즉 과학에서 정설이란 옳다는 것이 완벽하게 증명된 이론이 아니라, 틀렸다는 것이 증명되지 않은 이론을 말합니다.



3. 진화론은 단세포생물이 인간이 되었다는 말이다.


㉠ 영장류가 진화해서 사람이 되었다는 말이 있습니다.
㉡ 설치류가 진화해서 사람이 되었다는 말도 있습니다.
㉢ 어류가 진화해서 사람이 되었다는 말도 있습니다.
어느 말이 맞을까요?
사실 저 셋 다 맞는 말입니다. 신생대 초기의 영장류가 진화해서 인간이 된 것도 맞고 중생대의 설치류가 신생대 초기의 영장류를 거쳐 인간으로 진화한 것도 맞습니다. 데본기의 어류가 중생대의 설치류와 신생대의 영장류를 거쳐 인간으로 진화한 것도 맞죠.
그런 식으로 말하자면 단세포생물이 인간이 된 것도 맞는 말입니다. 선캄브리아기의 단세포생물이 데본기의 어류, 중생대의 설치류, 신생대의 영장류를 거쳐 거의 30억년의 진화과정에 의해 인간으로 진화했다고 할 수 있는 것이죠.
하지만 일반적으로 단세포생물이 인간이 되었다고 하면 보통 이런 것을 상상합니다.

어느날 갑자기 아메바들이 한군데 모이더니 서로 붙어서 인간이 되었다

라고 말입니다.
아무튼 단세포생물에서 인간으로 진화한 것은 맞지만 그것은 30억년의 세월 동안 다세포생물과 어류, 포유류 등의 수많은 단계를 거친 결과입니다. 어느 한순간 단세포생물이 모여서가 아니구요.


4. 과학은 자연발생설을 부정한다.

이것 역시 3번과 비슷한 논리입니다. 파스퇴르에 의해 생명의 자연발생설이 부정되고 생물속생설(생물은 생물에게서만 태어난다)이 대두되었습니다.
하지만 이 이론에 의해 최초의 생물에 대한 논란이 대두되었죠. 최초의 생물이 어떻게 생겨났는지에 대해서 말입니다. 창조론자들은 이 생물속생설로 신에 의한 창조를 주장하고 있죠.

하지만 여기서도 마찬가지지만, 파스퇴르가 부정한 자연선택설은 무기물에서 한순간에 완전한 생물이 태어난다입니다. 최초의 생물을 설명하는 화학진화론에서는 무기물에서 한순간에 최초의 생물이 태어났다고 설명하지 않습니다. 무기물에서 간단한 유기물이 나타나고 이들이 다시 복잡한 유기물로 합성되어 RNA와 같은 자기복제분자가 나타났고, 이 자기복제분자들의 진화에 의해 생명체로 진화했다고 설명합니다(이 과정이 자연선택설처럼 며칠이 아니라 수억년에 걸쳐 일어났습니다).

이것 역시 자연발생설과 화학진화설을 뒤섞어 자기 맘대로 이해하는 것이죠.


5. 과학자들 사이에서도 논란이 존재한다.

과학자들 사이에 논란이 없을 수가 없습니다. 물론 진화론에 대해서도 말이죠. 지금도 수많은 과학자들이 진화론에 대해 갑론을박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진화론에 대한 논란이 과학자들이 진화론을 확신하지 못한다는 증거일까요?
진화론에 대한 과학자들의 논란은 생물은 진화한다/진화하지 않는다의 논란이 아닙니다. 과학자들은 이런 논쟁은 하지 않아요. 과학자들은 생물은 진화한다는 명제에는 모두가 동의했습니다.
과학자들 사이의 논란은 시조새가 현재의 새로 진화했다/시조새가 아닌 다른 경로로 현재의 새가 진화했다라든가 양서류는 바닷가에서 진화했다/얕은 시내에서 진화했다 등의 논쟁 - 진화는 기정사실이며 진화론 안에서의 논쟁만 존재할 뿐입니다.
그런데 창조론자들은 이러한 진화론 안에서의 논쟁을 진화론 자체의 논쟁으로 침소봉대하여 과학자들도 진화론에 확신을 가지지 못한다는 착각을 주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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