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0년, 이곳에 도착한 학자들은 놀라운 생명체를 발견합니다. 이곳에서만 사는 물고기였습니다.
겉모양은 일반 물고기와 다를 바 없었습니다. 커다란 눈, 가슴지느러미와 꼬리지느러미, 길게 튀어나온 턱과 그 안의 이빨들...
그러나 다른 물고기들과 뚜렷이 구분되는 특징이 있었는데, 그것은 이 물고기의 몸이 투명하다는 점이었습니다.
마치 얼음처럼 투명하다고 해서 얼음물고기(Ice Fish : 아래 사진)라 이름붙여진 이 물고기는, 연구결과 피에 헤모글로빈이 전혀 없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모든 척추동물의 혈액에는 헤모글로빈이 포함되어 있어 산소를 온몸으로 전달한다는 것이 상식입니다. 그러나 이 얼음물고기의 피에는 소량의 백혈구들만이 발견되었을뿐 거의 완전한 소금물임이 밝혀졌습니다.
어떻게 헤모글로빈 없이 산소공급이 가능할까요? 비밀은 기체의 용해도에 있습니다. 고체물질은 온도가 높을수록 용해도가 크지만 기체는 온도가 낮을수록 용해도가 커지죠. 남극해 근처의 -1℃ 이하의 물에서 사는 이 얼음물고기의 피에는 충분한 산소가 녹을 수 있으며, 그에 따라 헤모글로빈이 없어도 충분한 산소를 온몸에 전달할 수 있었습니다.
이 얼음물고기의 DNA를 조사해본 결과, 헤모글로빈을 만드는 유전자가 완전히 파괴되어 있음이 밝혀졌습니다.
최초에, 생존에 필수적인 헤모글로빈을 만드는 유전자에 돌연변이가 일어났습니다. 일반적인 경우라면 이 헤모글로빈을 만들 수 없는 얼음물고기는 도태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곳은 남극해 부근이었습니다. 차가운 얼음물 속에서, 헤모글로빈 없이도 충분한 산소가 피(소금물)에 녹아 몸에 전달될 수 있었던 것이죠. 오히려 헤모글로빈이 있을 경우, 저온에서는 혈액의 점도가 증가합니다(그때문에 차가운 바다에 사는 물고기들은 일반적으로 적은 양의 적혈구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헤모글로빈을 만들지 않는 얼음물고기들은 오히려 저온에서 혈액의 점도가 증가하지 않는다는 '자연선택상의 이점'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것역시 비타민 C 유전자의 경우와 같이 '나쁜 돌연변이지만 환경에 의해 도태되지 않을 수 있다'는 보기가 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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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창조론자 또는 지적설계론자들 중에는 다음과 같은 주장을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어떤 변이가 생기든, 그것은 태초에 지적설계자가 미리 넣어놓은 유전자가 발현된 것에 불과하며 진화에 의해 새로운 유전자가 생기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저 얼음물고가의 헤모글로빈 유전자를 봅시다. 위에서 '얼음물고기의 헤모글로빈 유전자가 완전히 파괴되어 있었다'고 했습니다. 일반적인 돌연변이는 헤모글로빈 유전자를 '완전히 파괴'할 정도로 일어나지는 않습니다.일단 아주 작은 돌연변이가 일어나서 헤모글로빈 유전자가 제구실을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로는 헤모글로빈 유전자에 계속 생기는 돌연변이는 더이상 자연선택에 의해 제거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결국 사용하지 않는 유전자는 자연선택의 혜택을 받지 못하기에 계속되는 돌연변이에 의해 파괴됩니다. 바로 창조론자들이 좋아하는 '열역학 제 2 법칙'에 의해서 말이죠.
그러므로 지적설계론자들의 말대로 미리 만들었지만 아직 발현되지 않은 유전자가 있다면, 그 유전자는 자연선택의 대상이 아니므로 돌연변이를 걸러낼 수 없고, 결국 그 유전자는 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뱀발 : 이 얼음물고기는 놀라운 진화의 결과물입니다만, 불행히 그 미래는 밝지 못합니다. 전지구적인 온난화에 의해 그들이 사는 환경도 온도가 올라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헤모글로빈이 없는 상태에서 그들의 피에 녹는 산소량은 점차 줄어들 것이며, 결국 그들은 질식해서 도태될 것입니다. 완전하게 파괴된 유전자로 더이상의 헤모글로빈을 만들 수 없기 때문이죠.
출처 : 한치의 의심도 없는 진화 이야기 Making of the Fitness(션 B 캐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