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론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관찰됩니다. '공진화'라는 현상이죠. 천적관계 또는 공생관계인 두 종이 같이 진화해나가면서 서로가 상대방에 대한 선택압으로 작용하여 (창조론자들은 절대로 우연히 생길수 없다고 주장하는) 자연의 신비가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나뭇잎 틈에서 사는 벌레(a)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 벌레를 먹고 사는 새(A)가 있습니다. 이 새의 원시적인 눈은 사물의 명암만 알 수 있는 정도입니다. 그리고 이 벌레의 모습은 그야말로 나뭇잎 위에서 눈에 확 띄는 모습이죠.
벌레들 중 일부가 나뭇잎과 비슷한 색깔로 변이를 일으킵니다(b), (b)는 원시적인 (A)의 눈에 나뭇잎과 구분이 안되므로 (A)의 눈을 피해 살아남아 더 많은 자손을 남깁니다. 큰 차이가 아니라도, 설사 저녁과 새벽의 어스름, 짙은 안개 속에서만 속여넘길수 있는 변화라도 충분합니다.
이런 식으로 원시적인 눈을 가진 (A)가 나뭇잎과 착각하는 (b)가 많아지면 이것은 '약간' 좋은 눈을 가지고 나뭇잎과 (b)를 구분할 수 있는 새(B)에 대한 선택압으로 작용합니다. (B)는 (A)에 비해 더 많은 벌레를 잡아먹고 더 많은 새끼를 낳을 수 있다는 것이죠.
(b)는 다시 (B)의 눈을 속일 수 있을 만큼 나뭇잎과 더 닮은 변이를 일으킨 (c)와의 경쟁에서 뒤떨어지고, (B)는 다시 (c)를 인식할 수 있는 (C)에 의해 도태되고....
이러한 과정이 반복되어 결국 다음과 같은 벌레가 완성되는 것입니다.
즉 이런 벌레들이 딱정벌레나 호랑나비에서 '나뭇잎을 흉내내서 나뭇잎 속에 숨어야지 숨어야지' 하다가 어느 순간 '짠~~'하고 나타난 것이 아닙니다.
형편없던 포식자의 눈과의 오랜 시간에 걸친 공진화의 결과입니다.
참조 : 눈먼 시계공(리처드 도킨스) , 인공생명(스티븐 레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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