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물을 읽을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거의 모든 설정이 서양식을 따른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물론 SF란 것 자체가 서양에서 시작된 것이기 때문에 서양식 사고방식대로 만들어져 있고, 동양적인 것은 구색맞추기처럼 약간, 일본 아니면 중국식으로 들어가 있죠(스타트랙에서도 유일한 동양인은 일본인 항법사 뿐입니다. 스타워즈에서도 나부행성 여왕은 일본 게이샤와 비슷하죠)
그렇지만 우리나라 사람이 지은 SF들도 마찬가지더군요. 주인공 이름도 대부분 서양식이고 등장하는 나라 이름도 모두 영어 일색입니다. 새로운 우주전함을 만든다면 그 우주전함 이름은 틀림없이 '제우스'가 되지 '단군'이나 '치우'가 되지는 않습니다. 새로운 함대를 만들었다면 그 명칭은 반드시 '스타 가디언'이 되지 '별 지킴이'가 되지 않습니다. 가끔 한국적인 SF도 없진 않았습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그것들은 내용은 부실하고 단지 '한국적이다'란 것을 광고의 포인트로 삼기 위해 만든 듯한 것들 뿐이더군요. 반면에 괜찮은 SF라고 한다면 한국인이 쓴 건지 외국소설을 번역한 건지 구분이 안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제가 많은 SF를 읽지 않아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무엇때문에 이렇게 한글이, 한국문화가 푸대접을 받게 되었을까요.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똑같은 대답을 합니다. 한글로 이름을 붙이면 어딘지모르게 어색하다, 한국문화를 강조하면 유치해진다....
과거 유신시절에 '하면된다'는 식으로 한국문화와 한글전용을 밀어붙인 적이 있었죠. 그래서 동화책마다 단군 이야기나 한민족의 우수성을 이야기하고, 한자어나 영어 대신 한글을 만들어 보급시킨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한 정책이 오히려 역효과를 만든 것이 아닐까요? 자연스럽게 한글말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억지로 만들어 보급시켰기 때문에 입에 익지 않아 어색하기 짝이 없었고, 그결과 '한글이름은 어색하다'는 고정관념만을 남긴채 사라졌습니다.
한국문화에 대한 것도 마찬가지죠. 세뇌교육은 어린시절에 하는 것이 좋기 때문에 주로 어린이들이 보는 동화책들을 이용하여 한국문화의 우수성을 묘사했었고, 결국에는 '한국문화 = 유치원수준'이란 등식을 만들어 버린 것이 아닐까 합니다.
예전에 한창 인기를 끌던 포켓몬스터가 있었죠. 어느 신문에선가, 포켓몬스터의 국제성을 이야기하면서, 포켓몬들이 국가, 인종, 심지어는 성별조차 불확실했기 때문에 많은 나라에서 거부감없이 받아들여졌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저는 그 만화를 보면서 상당히 일본적인 애니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걸핏하면 벗꽃잎이 흩날리고 가끔 사무라이나 게이샤들이 단역으로 출연하고... 특히나 매회 끝날 때마다 포켓몬들 중 하나를 주제로 짫은 시를 읊어주죠. 그것이 바로 일본의 전통적인 시 하이쿠(俳句)입니다. 포켓몬이 국적불명의 캐릭터라 해도 그들이 살고 있는 곳은 틀림없는 일본이었죠. 만약 우리나라에서 만든 만화라면 무궁화꽃밭이 나올까? 만화의 한 귀퉁이를 차지해서 세계인들에게 우리나라의 시조를 알릴 수 있을까? 아마 유치하게 무슨 무궁화냐, 그깟 시조를 넣어서 뭐할거냐, 이런 반응이 올걸요.
만약 지금처럼 우리나라의 문화를 푸대접한다면 우리나라의 만화가 세계에 나간다고 해도(가능할지는 모르지만) 그것을 이용하여 한국문화를 수출하기는 요원할 것입니다. 주인들조차 무시하고 있는 문화를 누가 받아들이겠습니까?
물론 여기서 이런 말을 한다고 달라질 것은 없겠죠.
ps) 저는 단기사병(한마디로 방위)으로서 매일 부대에 출퇴근을 했었습니다. 그때 부대 올라가는 길에 무궁화나무들이 줄지어 서 있었습니다. 어느 초겨울날, 겨울비를 맞으며 출근하던 도중 무궁화꽃 한송이를 발견했습니다. 이미 검게 시들어 버리고 겨울비에 맞아 형편없는 몰골로, 얼핏보면 꽃인지조차 알 수 없을 정도로 초라한 모습이었는데도 떨어지지 않고 끈질기게 줄기에 붙어 있더군요. 그걸 보고 국화와 국민성에 대하여 생각했습니다. 화려하게 피었다가 한꺼번에 떨어지는 벚꽃(아시아 전체로 세력을 뻗었다가 허무하게 항복해버린 일본)과, 차가운 비를 맞아 초라한 모습이면서도 끈질기게 붙어있는 무궁화(수없이 침략을 당했으면서도, 그리고 지금도 강대국에 휘둘리면서도 아직까지 한반도를 유지하고 있는 한국)를 비교해보며 느꼈던 작은 감동을 이 글을 읽는 분들에게 전해 드리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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