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론 이야기 - 삼엽충을 밟은 발자국의 진실

선사시대의 삼엽충이 인간의 발에 밟힌 화석이 발견되었다면 어떻게 될까요? 삼엽충과 인간이 같이 살았다는 강력한 증거가 되겠죠? 지금도 창조론자들은 저런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 역시 국내가 아닌 외국 사이트를 찾아야 진실을 알 수 있습니다.

The "Meister Print"

대충 해석하면...

멜빈 쿡 박사(1970)의 기록에 의하면, 1986년 유타주 Antelope Springs 근처의 언덕에서 삼엽충을 찾고 있던 William J. Meister라는 지질학자가 지층에서 떼어낸 넓은 판에서 흥미로운 것 - 직사각형 모양의 긴 장방형, 그가 보기에 사람 샌들발자국 - 을 발견했다. 이것은 매우 놀라운 것으로 그 지역은 캄브리아 중기 Wheeler지층, 5억년전에 생성된 것으로 판단되었기 때문이다.
이 샌들 발자국으로 추정된 것은 10.5인치(26.7cm), 3.5인치(8.9cm)로 측정되었으며 판의 양쪽면에 나타나 있었다(양각구조로). 그 시료는 마이스터가 뒷축이라고 간주한 것, 그리고 약간의 작은 삼엽충을 포함하고 있었다.
쿡의 보고 직후, 다른 창조론자들(Kofahl and Segraves, 1975; Baker, 1976; Wysong, 1976; Huse, 1983; Petersen, 1987)은 마이스터의 발견을 진화와 표준 지질학적 연대기를 부정하는 증거로서 인용하였다. 그러나 발자국으로 추정되는 것은 정밀한 조사를 받지 않았다.
그 시료는 실제로 삼엽충을 포함하고 있었다. 그러나 '발자국' 자체는 몇가지 이유에서 의심스러웠다. 자세한 조사에서 전체적인 모양은 응고된 듯한 판에서, 그 판의 다른 부분에서도 나타나는 깨진 패턴의 조합으로 보인다. 그것이 걸음걸이의 일부라는 증거도, 그 판이 노출되었었다는 증거도 어디에도 없다. 그 '발자국'은 매우 얕고 압력에 의한 변형도, 발의 움직임에 의한 가장자리의 변형도 보이지 않는다. '발꿈치'라고 알려진 경계는 실제적으로 그 판 전체를 가로지르는, 발자국이라고 알려진 영역 너머로 뻗어간 균열이었다. 이점에서 근소한 양각의 차이는 균열을 따라근소한 이동에 의한 것이었다(Conrad, 1981; Stokes, 1986).

비슷하게 깨진 패턴들은 여러가지 색깔의 달걀모양의 동심원을 보이는 판, 가끔은 부조와 같은 계단 형태로서 Wheeler 지층에 풍부하다. 여러개의 다른 장방형 모양들 또한 사람 발자국으로
해석되었지만(Cook, 1970), 마이스터의 시료보다도 덜 설득적이다(Conrad, 1981). 연결된 발자국 궤적도 없고, 인간의 발자국임을 신뢰할 수 있는 과학적인 기준을 만족시키지도 않는다.
깨지기 쉬운 Wheeler 지층에 위와 같은 모양을 만들 수 있는, 용해물의 관통, 깨짐, 풍화작용 등의 지질학적 과정에 대해 Stokes(1986)에 의해 자세히 논의되어 왔다.
(이후 생략)

여기까지만 해도 알 수 있겠지만 저것은 단순한 자연현상입니다. 그 자연현상이 '우연히' 발자국모양과 닮아있다는 것이죠.
혹시나 '우연'을 문제삼는 창조론자가 있을 수도 있겠는데 저런 지층에 생긴 균열은 수없이 많습니다. 그중에 발자국처럼 생긴 것이 하나둘쯤 생기는 것은 그다지 불가능한 일은 아닙니다.

창조론 이야기 - 팔룩시강가의 공룡과 사람 발자국

바로 아랫글에도 나와 있지만 팔룩시강가에서 공룡과 인간 발자국이 함께 발견되었다는 것은 창조론자들이 주로 제시하는 떡밥입니다. 팔룩시강의 발자국 실체를 알기 위해서는 국내보다는 외국 사이트를 뒤져보는 것이 훨씬 낫습니다.

The Paluxy Dinosaur/"Man Track" Controversy


서문만 해석을 해 보면 이런 내용입니다.

텍사스주 글렌로즈 근방의 팔룩스강 석회암지대에서 공룡 발자국 화석을 따라 발견된 사람 발자국, 즉 "거인의 발자국"은 수년동안 창조론자들에 의해 주장되어 왔다. 만약 그것이 사실이라면, 그와 같은 발견은 공룡멸종 후 6천만년 이후 인간이 나타났다는 전통적인 지질학적 관념에 대해 극적인 역전을 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람 발자국'주장은 과학적 관심의 대상이 되지 못했고 최근에는 대부분의 창조론자들조차 그 주장을 포기했다. 그 인간 발자국은 여러가지 현상들, 끌거나 미끄러진 발자국, 발가락만이 아니라 발꿈치까지 디딘 발자국, 형태의 부식, 원래 부정확해서 알아보기 힘든 모양, 그리고 소수의 조각되고 만들어진 것(후자는 대부분 굴러다니는 작은 바위조각에서 발견됨) 등을 포함한다고 제시된다. 소수의 개인 연구자들은 다른 지역의 제 3기 지층에서 인간 발자국을 주장하지만 이러한 주장은 과학계나 대부분의 창조론의 주류에서 밀려나 있다.
즉, 저 발자국은 이미 변형된 공룡발자국으로 판명되어 미국 창조과학회 내부에서도 더이상 주장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나라 창조과학회를 비롯하여 창조론자들은 계속해서 창조의 증거라고 주장하고 있죠.

다음 그림들은 위 사이트에서 퍼온 그림들입니다.

위와 아래 그림 모두 공룡 발자국이 인간발자국으로 변형되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아하, 그래서 미국에서도 진화론 대신 창조론을 가르치는군요.

지금이야 전세계 인구 중 대부분이 지동설이 옳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100%라고 할 수는 없군요. 진심인지 장삿속인지는 모르지만 '성경에 나와있는 대로 지구는 평평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아직까지 있으니 말입니다).
하지만 중세 시대만 해도 지동설을 주장하는 것은 '사탄의 꾀임에 빠진 사람들' 뿐이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자신의 믿음을 그리 쉽게 바꾸질 않습니다. 지금껏 천동설이 옳다고 생각하던 사람들이 '어라? 지금까지 나온 증거들을 보니 천동설보다는 지동설이 더 설득력 있어 보이네'라 생각하고 지동설 쪽으로 바꾸는 일은 거의 일어나지 않습니다. 어떤 증거를 내놓아도 왜곡해서 천동설에 맞추거나 증거 자체를 무시해버릴 뿐이죠.

그런데 어떻게 해서 현재 지동설이 주류로 바뀌었을까요?
그것은 새로운 세대의 결정 때문이었습니다. 천동설만을 배워야 했던 윗세대들과는 달리 그들은 천동설과 지동설을 비교해 볼 수 있었고, 더 논리적이고 설득력이 있는 지동설 쪽으로 유입된 것이죠.

비슷한 일이 지금은 진화론과 창조론 사이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천동설/지동설의 싸움에서 교훈을 얻었는지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은 열심히 (창조론/진화론에 관심이 없었던) 사람들을 창조론 쪽으로 끌고 가려고 하는 모양입니다.
한가지 예를 들어 구글에서 '팔룩시강'을 쳐 보십시오. 가장 많이 나오는 것이 '팔룩시강변에서 공룡과 사람 발자국이 함께 발견되었다'는 각종 블로그들입니다. (반면 Poluxy River를 찾아보면 '공룡발자국이 변형되어 사람 발자국처럼 보이는 현상'이라고 나옵니다)

팔룩시강 문제뿐 아니라 창조론자들이 '창조의 증거'라고 말하는 것은 주로 이런 형태입니다.
1. 신에 의한 창조를 증명하는 듯한 증거가 나타난다.
2. 창조론자들은 그것을 가지고 진화론을 공격한다.
3. 연구가 계속되면 그 증거는 창조론과 전혀 관계가 없든지 오히려 창조론을 부정하는 증거임이 드러난다.
4. 창조론자들은 3을 무시한채 계속 2번에 머물러 있다.

얼마 전에도 창조론자가 올린 글에 누군가가 이런 댓글을 달았더군요.
'아하, 그래서 미국에서도 진화론 대신 창조론을 가르치는군요'(실제로는 미국 창조론자들도 '다른 나라에서는 이미 진화론을 버렸는데 미국에서만 진화론교육에 목숨을 건다'고 한답니다). 참고로 실제 미국에서의 창조론 교육은 이렇습니다.
그 댓글에 열받아서 본문을 하나하나 반박하는 댓글을 올린 것이 최초였습니다. 그 이후로 기회 있을 때마다 말싸움(글싸움?)하다 보니 블로그까지 만들게 되었군요.

하나님의 종일까 사탄의 종일까

예전에 어떤 드라마를 본 일이 있습니다.

어느 조그만 교회에 남루한 옷을 입은 여인이 찾아와 눈물로 기도를 올립니다. 너무 애처롭게 기도하는 모습을 보고 사람들이 사정을 묻죠.
그녀는, 남편은 사업에 실패해서 감옥에 들어가 있고, 자식은 병에 걸려 수술을 해야 하는데 돈이 없어 하나님께 기도하는 중이라고 울며 말하더군요.
며칠이 지나 그녀는 활짝 웃는 표정으로 교회를 찾아옵니다. 병원에 갔더니 의사는 아이의 병이 완전히 회복되었다고 기적이라고 놀라와한답니다. 게다가 남편은 정상이 참작되어 석방되었을뿐 아니라 하던 사업도 순풍에 돛단듯 잘 굴러간다더군요.
그후로도 그녀는 하루가 다르게 화려해지는 옷차림으로 그 교회를 다닙니다. 거액의 헌금은 물론이고 간증기도회에도 빠지지 않죠.
그녀가 늘 하는 말이 있습니다.
"돈없어서 헌금 못한다는 사람들, 정말 한심해, 날 보라구, 진심으로 기도하면 하나님은 다 도와주게 돼 있어. 가난하다는 것은 결국 신앙심이 부족해서 간절히 기도하지 못한다는 것밖에 안된다구"
그러면서 그녀는 없는 사람들을 '신앙이 부족한 사람들'로 매도하며 부유한 사람들끼리만 몰려다닙니다.
결국 작지만 신앙에 충만했던 그 교회는 혼란에 빠지고 신도들은 뿔뿔이 흩어지게 되죠. 그리고 그녀는 임무 완수를 사탄에게 보고하면서 끝납니다.

가끔씩 전철역에서 '예수천국 불신지옥'을 외치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저 드라마가 생각나더군요. 무조건 성경이 진리라는 둥, 성경에 과학적 사실들이 있다는 둥 헛소리하는 성경무오론자들을 볼 때오 마찬가지입니다.
거기서 나온 악마처럼 세련된 방식도 아니지만, 그들 역시 겉으로는 기독교를 포교하는 척 하면서 실제로는 사람들에게 기독교에 대한 반감을 유도해서 교회에서 멀어지도록 하고 있으니까 말입니다. 그런 사람들을 볼 때마다 '교회에 가면 사람이 저렇게 되는구나'하는 생각밖에 나질 않습니다.
그야말로 힘은 힘대로 쓰고, 욕은 욕대로 먹은 후에 수고했다는 말은 하나님이 아니라 사탄에게서 듣게 되지나 않을지요.

동양(한국)문화와 SF...

SF물을 읽을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거의 모든 설정이 서양식을 따른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물론 SF란 것 자체가 서양에서 시작된 것이기 때문에 서양식 사고방식대로 만들어져 있고, 동양적인 것은 구색맞추기처럼 약간, 일본 아니면 중국식으로 들어가 있죠(스타트랙에서도 유일한 동양인은 일본인 항법사 뿐입니다. 스타워즈에서도 나부행성 여왕은 일본 게이샤와 비슷하죠)

그렇지만 우리나라 사람이 지은 SF들도 마찬가지더군요. 주인공 이름도 대부분 서양식이고 등장하는 나라 이름도 모두 영어 일색입니다. 새로운 우주전함을 만든다면 그 우주전함 이름은 틀림없이 '제우스'가 되지 '단군'이나 '치우'가 되지는 않습니다. 새로운 함대를 만들었다면 그 명칭은 반드시 '스타 가디언'이 되지 '별 지킴이'가 되지 않습니다. 가끔 한국적인 SF도 없진 않았습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그것들은 내용은 부실하고 단지 '한국적이다'란 것을 광고의 포인트로 삼기 위해 만든 듯한 것들 뿐이더군요. 반면에 괜찮은 SF라고 한다면 한국인이 쓴 건지 외국소설을 번역한 건지 구분이 안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제가 많은 SF를 읽지 않아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무엇때문에 이렇게 한글이, 한국문화가 푸대접을 받게 되었을까요.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똑같은 대답을 합니다. 한글로 이름을 붙이면 어딘지모르게 어색하다, 한국문화를 강조하면 유치해진다....

과거 유신시절에 '하면된다'는 식으로 한국문화와 한글전용을 밀어붙인 적이 있었죠. 그래서 동화책마다 단군 이야기나 한민족의 우수성을 이야기하고, 한자어나 영어 대신 한글을 만들어 보급시킨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한 정책이 오히려 역효과를 만든 것이 아닐까요? 자연스럽게 한글말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억지로 만들어 보급시켰기 때문에 입에 익지 않아 어색하기 짝이 없었고, 그결과 '한글이름은 어색하다'는 고정관념만을 남긴채 사라졌습니다.
한국문화에 대한 것도 마찬가지죠. 세뇌교육은 어린시절에 하는 것이 좋기 때문에 주로 어린이들이 보는 동화책들을 이용하여 한국문화의 우수성을 묘사했었고, 결국에는 '한국문화 = 유치원수준'이란 등식을 만들어 버린 것이 아닐까 합니다.

예전에 한창 인기를 끌던 포켓몬스터가 있었죠. 어느 신문에선가, 포켓몬스터의 국제성을 이야기하면서, 포켓몬들이 국가, 인종, 심지어는 성별조차 불확실했기 때문에 많은 나라에서 거부감없이 받아들여졌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저는 그 만화를 보면서 상당히 일본적인 애니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걸핏하면 벗꽃잎이 흩날리고 가끔 사무라이나 게이샤들이 단역으로 출연하고... 특히나 매회 끝날 때마다 포켓몬들 중 하나를 주제로 짫은 시를 읊어주죠. 그것이 바로 일본의 전통적인 시 하이쿠(俳句)입니다. 포켓몬이 국적불명의 캐릭터라 해도 그들이 살고 있는 곳은 틀림없는 일본이었죠. 만약 우리나라에서 만든 만화라면 무궁화꽃밭이 나올까? 만화의 한 귀퉁이를 차지해서 세계인들에게 우리나라의 시조를 알릴 수 있을까? 아마 유치하게 무슨 무궁화냐, 그깟 시조를 넣어서 뭐할거냐, 이런 반응이 올걸요.

만약 지금처럼 우리나라의 문화를 푸대접한다면 우리나라의 만화가 세계에 나간다고 해도(가능할지는 모르지만) 그것을 이용하여 한국문화를 수출하기는 요원할 것입니다. 주인들조차 무시하고 있는 문화를 누가 받아들이겠습니까?

물론 여기서 이런 말을 한다고 달라질 것은 없겠죠.

ps) 저는 단기사병(한마디로 방위)으로서 매일 부대에 출퇴근을 했었습니다. 그때 부대 올라가는 길에 무궁화나무들이 줄지어 서 있었습니다. 어느 초겨울날, 겨울비를 맞으며 출근하던 도중 무궁화꽃 한송이를 발견했습니다. 이미 검게 시들어 버리고 겨울비에 맞아 형편없는 몰골로, 얼핏보면 꽃인지조차 알 수 없을 정도로 초라한 모습이었는데도 떨어지지 않고 끈질기게 줄기에 붙어 있더군요. 그걸 보고 국화와 국민성에 대하여 생각했습니다. 화려하게 피었다가 한꺼번에 떨어지는 벚꽃(아시아 전체로 세력을 뻗었다가 허무하게 항복해버린 일본)과, 차가운 비를 맞아 초라한 모습이면서도 끈질기게 붙어있는 무궁화(수없이 침략을 당했으면서도, 그리고 지금도 강대국에 휘둘리면서도 아직까지 한반도를 유지하고 있는 한국)를 비교해보며 느꼈던 작은 감동을 이 글을 읽는 분들에게 전해 드리고 싶네요.

어느 선거유세장

여러분, 21세기는 진보의 세기가 되어야 합니다. 낡은 것은 과감히 버리고 새로운
질서를 세워야 합니다.
그러나 아직까지 시대에 뒤떨어진 소리를 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지금
21세기에 들어선 지가 언젠데 아직까지 '고전'물리학법칙을 찾고 있습니까?
한시바삐 '고전'물리학법칙을 폐기하고 '21세기형'물리학법칙을 만들어야 합니다.
제게 한표를 주신다면 '21세기형'물리학법칙 제정을 임기내에 이루겠습니다.
기호 *번, ***에게 한표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