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라기공원에 나오는 인물들 중 하나인 수학자 말콤은 소설 속에서 이런 말을 합니다. 무분별한 인류 때문에 파괴되어가는 지구를 걱정하는 사람들에게 말합니다.
"인간이 지구를 파괴한다구요? 그것이야말로 과대망상입니다. 지구는 이미 몇번이나 인류 이상가는 충격을 받아왔습니다. 그리고도 항상 그 충격에서 회복되어 왔죠. 인류는 지구를 파괴할 수 없습니다."
흔히들 '환경에 적응 못하고 전멸하는 동식물들까지 돌봐줄 필요는 없다. 그것이 진화론이라는 자연법칙이다'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습니다.
지금은 인간이 환경을 바꾸고 있지만, 지구환경이 바뀌어 대량멸종이 일어난 일은 인간이 유일한 경우는 아닙니다. 가장 유명한 것이 중생대의 공룡시대를 종식시키고 포유류의 시대를 연 칙쇼루브 운석충돌이었죠#. 물론 이 칙쇼루브의 충돌은 지구에서의 문제가 아니라 외계에서 온 것이긴 합니다만.
지구상에 살고 있는 생물에 의해 대멸종이 일어난 경우 역시 인간이 유일한 것도 아닙니다. 이를테면 남조류에 의한 대멸종이 있습니다.
초기 생명체가 탄생했을 때 대기는 산소가 거의 없는 환원성 대기였습니다. 자외선이 물을 분해해서 산소가 생기긴 했지만, 그 산소는 즉시로 주변에 있던 철이나 코발트 등 금속을 산화시키며 소모되었습니다. 당연히 당시의 생물들(박테리아)은 모두 혐기성 세균들이었습니다.
여기서 광합성을 할 수 있게 된 남조류들은 물과 이산화탄소로 탄수화물을 만들고 폐기물인 산소 - 생물의 세포막을 산화시켜 파괴하는 독가스를 뿜어내기 시작합니다. 마치 현대 공장이 스모그와 폐수를 함부로 쏟아내는 것처럼 말입니다.
게다가 스스로 유기물을 합성하는 방식이기에 다른 유기물을 찾아다녀야 하는 다른 박테리아들보다 훨씬 효율적으로 번식해 나가기 시작합니다. 결국 남조류의 수는 점점 많아지고 뿜어내는 산소도 점점 많아지고 산소농도는 점점 증가하게 되었죠.
결국 이 산소에 의해 대부분의 박테리아가 절멸하고 맙니다. 그리고 산소에 적응한 박테리아들만이 살아남고, 그들이 번식,진화해서 지금의 생태계가 만들어진 것이죠.
그보다 규모는 작지만 중생대에서도 그런 생태계의 변화가 있었습니다. 당시 식물계는 소철이나 은행나무 같은 겉씨식물이 대세였습니다.
그런데 이런 식물계에 위기가 닥쳐옵니다. 용각류라 불리는 거대한 공룡들이 식물을 닥치는대로 먹어치우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 속에서 주로 바람 등을 이용해서 수정하여 번식하는 겉씨식물들은 막다른 골목에 몰리게 됩니다.
하지만 그것은 곤충과의 공생을 시작한 속씨식물에게는 기회였죠. 곤충에 의해 쉽게 수정을 하고 쉽게 번식을 할 수 있는 속씨식물들이 급속하게 세력을 키우게 됩니다. 온통 녹색 천지였던 숲에 울긋불긋한 꽃이 보이게 된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볼때, 사실 인간에 의해 전멸하는 동식물을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저 위 수학자 말콤의 말처럼 인간이 지구를 파괴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어차피 인간에게 적응한 동식물들이 다시 지구를 채우게 될 테니까 말입니다.
그런데 과연 그런 변화가 인간에겐 어떻게 작용할까요?
다시한번 옛날로 돌아가, 산소가 없던 시대의 지구 모습을 상상해 봅시다.
자외선을 막아줄 오존층이 없기에 지상에는 바위와 모래밖에 없었습니다. 생물체들이 올라오기 전이라 '흙'이라고 할만한 것도 없었죠. 생물이 육지로 올라와 죽고, 그 사체가 분해되어 유기물이 모래에 섞이면서 '흙'이란 것이 생기기 시작했으니까 말입니다.
대기중에는 메탄, 에탄 같은 유기기체가 뿌연 안개를 이루고 있었으며, 산소가 없으므로 하늘은 푸른색이 아닌 불그스름한 모습이었고, 바다는 그야말로 부패한 묽은 스프같은 유기물 용액이었을 것입니다. 이곳에서 태어난 생명체들에게는 이런 모습이 '정겹고 친숙한' 풍경이었을 겁니다. 유기물이 떠다니는 바다에서는 바로 옆에 먹거리가 풍족하게 있었으니까요.
그런데 산소를 발생시키며 지구 환경은 완전히 달라집니다. 과량의 산소가 바다와 육지의 유기물을 산화시켜 바다와 대기가 맑아지고, 대기중의 산소에 의해 하늘은 푸른색으로 물듧니다. 오존층이 생겨 육지로 생물들이 올라와 지금과 비슷한 모습의 지구가 만들어진 것입니다.
이런 모습이 예전에 살던 생명체에게는 어떻게 보일까요? 맑아진 바다에서는 먹거리가 사라졌습니다. 게다가 '산소'라 불리는 암살자들이 계속 자기 몸을 산화시켜 파괴하려 노리고 있습니다. 마치 지옥과 같은 모습일 겁니다.
우리 인간에 의해 만들어지는 미래도 비슷할 것입니다. 지금처럼 공기와 물을 오염시켜 나간다면, 그 미래는 스모그 속에서 날아가는 새, 폐수 속에서 헤엄치는 물고기의 세상이 될 것입니다. 그런 환경이 그때의 생물들에게는 친숙한 환경이겠지만(마치 현재 환경이 인류에게 친숙하듯), 인류는 지옥과 같은 환경에서 살아야 할 것입니다. 마치 아직까지 살아남은 혐기성 세균들이 산소가 없는 곳만 찾아다니며 살아가는 것처럼 말입니다.
# 가장 유명한 것이 칙쇼루브의 충돌에 의한 중생대 대멸종이긴 합니다만, 이것이 가장 큰 대멸종은 아닙니다. 중생대의 대멸종은 생물종의 약 75%가 멸종했습니다.
가장 큰 대멸종은 페름기의 대멸종으로 이때는 95%의 생물종이 전멸했죠.
이상은 꿈이고, 자신감이고 우리를 앞으로 나아가게 만드는 희망입니다.
회의는 깨어 있는 것이고 의심하는 것입니다. 과학을 하는 사람들은 절대 이 말을 잊으면 안됩니다.
from : SBS Drama Kaist(마지막 강의)
창조론 이야기 - 최적의 설계라는 망상
지적설계론은 지적설계자를 모욕하는 행위 - 기린의 후두신경에 대해 글을 쓴 적 있습니다. 이것은 '창조주의 실수'로서 상당히 많이 언급되는 모양입니다. 창조과학회에서 이에 대한 반론을 한 것을 발견했습니다.
'창조주 야훼'를 쉴드쳐주기 위해 애를 쓰고 있습니다만, 정말 제대로 쉴드를 치고 있는 것일까요? 만약 여러분들이 기린을 설계한다면 저렇게 설계할까요?
저라면 차라리 후두신경은 짧은 거리로 제대로 만들어 놓고, 별개의 신경을 만들어 저 작업을 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저 말은, 오히려 '대동맥을 돌아가는 후두신경에 저 기능을 붙여넣은 진화론적 결과'라고 할 수 있겠죠.
즉 이미 존재하는 '대동맥을 돌아가는 신경망'에 어떤 신호가 들어올때 가까이 있는 동맥관이 폐쇄되는 기능(돌연변이)이 진화론적 우위를 차지할 수 있기에 저런 구조가 만들어질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최적의 설계라기보다는 오히려 진화론적 땜방이 정확한 표현입니다.
지적설계론은 지적설계자를 모욕하는 행위 - 눈도 반론이 있더군요.
이것도 마찬가지죠. '색을 선명하게 한다'는 말은 있지만 '시력이 흐릿해지지 않는다'는 말은 없네요.
이것 역시 '시신경이 역전된 상태'에서 '보다 선명하게 색을 보는 땜방'이 일어난 결과로 진화론적 해석일 뿐 '최적의 설계'와는 전혀 관련이 없습니다.
이런 식으로 진화론에 어울릴 설명을 해놓고 나서. 이것이 '최적의 설계'라고 주장하는 것이 창조과학회의 수준입니다.
창조과학회 |
'창조주 야훼'를 쉴드쳐주기 위해 애를 쓰고 있습니다만, 정말 제대로 쉴드를 치고 있는 것일까요? 만약 여러분들이 기린을 설계한다면 저렇게 설계할까요?
저라면 차라리 후두신경은 짧은 거리로 제대로 만들어 놓고, 별개의 신경을 만들어 저 작업을 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저 말은, 오히려 '대동맥을 돌아가는 후두신경에 저 기능을 붙여넣은 진화론적 결과'라고 할 수 있겠죠.
즉 이미 존재하는 '대동맥을 돌아가는 신경망'에 어떤 신호가 들어올때 가까이 있는 동맥관이 폐쇄되는 기능(돌연변이)이 진화론적 우위를 차지할 수 있기에 저런 구조가 만들어질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최적의 설계라기보다는 오히려 진화론적 땜방이 정확한 표현입니다.
지적설계론은 지적설계자를 모욕하는 행위 - 눈도 반론이 있더군요.
창조과학회 |
이것 역시 '시신경이 역전된 상태'에서 '보다 선명하게 색을 보는 땜방'이 일어난 결과로 진화론적 해석일 뿐 '최적의 설계'와는 전혀 관련이 없습니다.
이런 식으로 진화론에 어울릴 설명을 해놓고 나서. 이것이 '최적의 설계'라고 주장하는 것이 창조과학회의 수준입니다.
동조 현상과 Solomon Asch
|
이것은 1950년대 하버드대 심리학자 솔로몬 애쉬(Solomon Asch)의 실험이었습니다. 사실 이 실험에서 실험대상자는 오로지 '참솔' 하나였습니다. 나머지 '실험대상자'는 모두 이 실험을 도와 일부러 오답을 말한 학생들입니다.
이 실험은 비디오로도 볼 수 있는데, 다른 사람들의 오답에 당황하는 실험대상자의 모습을 볼 수 있다. |
이런 상황에서 자신의 생각대로 정답을 말한 사람은 불과 ¼에 불과했습니다. 나머지 ¾은 다른 사람들을 따라 ㉠을 답이라고 따라간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왜 이런 결과가 일어나는지 2000년대에 들어와 그래고리 번스(Gregory Berns)가 연구를 시작했습니다. 그는 이와 비슷한 실험을 하면서, 참가자들의 뇌를 MRI로 분석한 것이죠.
그 결과 소신대로 정답을 말하는 사람에게서는 공포와 불안을 관장하는 편도 영역이 활성화된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이런 사람들에게서는 소신을 말함으로써 무리에서 배척되지 않을까 하는 불안이 생긴다는 것이죠.
다른 한편으로는 다수에 따라 잘못된 대답을 할 경우, 시각을 통제하는 후두엽에서 왜곡이 일어난다는 사실을 알아냈습니다. 잘못 대답한 사람 눈에는 실제로 ㉠의 막대가 최초 막대와 같은 길이로 보인다는 것이죠(만약 의식적으로 거짓말을 하게 된다면 전두엽 쪽에서 신호가 보인다고 합니다).
이것은 말하자면, '㉡이라고 말했다간 내가 이상한 놈 취급을 받을 것 같으니 그냥 ㉠이라고 대답하자'가 아니라, '다시 보니까 ㉠쪽이 아까와 같아 보이네'가 된다는 것입니다. 즉 집단에 의해 인지 자체가 바뀌는 것이라 할 수 있죠.
이런 일은 단체생활을 하는 곳에서 흔히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학교에서 모두가 누군가를 왕따로 지목하면 내 눈에도 그녀석이 찌질한, 왕따당할 '자격'이 있는 것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한편으로 그를 왕따에서 구해주려면, 다른 학생들로부터 공격받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과 싸워 이겨야 할 수 있다는 것이죠.
종교단체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종교단체에서 몇 사람이 기적을 보았다고 주장하면 내 눈에도 그 기적이 보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내게도 기적이 보인다'고 말하면 그 말 자체가 다시 옆사람에게 영향을 주어 그의 눈에도 기적이 보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음모론 - 달에서의 이륙
얼마전에 우연히 이런 짤방을 본 일이 있습니다. 지성인이라고 불리는 유시민씨가 이런 합리적 의심을 가지고 있었을지는 몰랐네요. 하긴 그분은 이과가 아니라 경제학과 전공이니 저런 합리적 의심을 가지게 되었을지도 모르죠.
사실 저도 저 프로그램을 보지는 못했습니다. 그래서 저기서 정재승박사가 뭐라고 설명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저런 의문은 달착륙 음모론자들이 흔히들 제기하는 의문이기도 합니다.
지구를 탈출한 아폴로 11호는 새턴 로켓을 사용했습니다. 새턴 로켓은 1단의 무게만 해도 연료포함 2300톤입니다. 그렇다면 중력이 1/6인 달에서 이륙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383톤의 로켓에다가 2단, 3단에 해당하는 다른 로켓이 더 필요할 것이다 생각할 수도 있겠죠.
그런데 달에 착륙한 달착륙선(이글)의 무게는 14.6톤에 불과합니다. 지구에서 탈출하기 위해 2300톤에 달하는 로켓과 연료가 필요했는데, 아무리 1/6의 중력을 가진 달에서 14.6톤의 연료와 로켓으로 탈출할 수 있을지 의심을 가질 수도 있겠죠.
잠깐 시야를 바꿔 이런 것을 생각해 봅시다.
어느 작은 상단이 사막을 건널 일이 생겼다. 사막을 건너기 위해서는 하루의 시간이 필요하다. 그들은 낙타 한마리를 구해서 그들(상단윈 + 낙타 한마리)이 하루동안 먹을 물과 먹거리를 싣기로 했다. 그 물과 먹거리는 낙타 한마리에 빠듯하게 실을 수 있었다. 그 낙타를 끌고 그들은 무사히 사막을 건널 수 있었다. 며칠후 이 상단은 좀더 큰 사막 - 건너는데 엿새가 걸리는 사막을 건너게 되었다. 상단장은 상단원들을 모아놓고 이렇게 명령했다. "지난번에 사막을 하루 건너는데 낙타 한마리에 식량을 싣고 갔었다. 이번에는 엿새니 낙타 여섯마리면 충분히 건널 수 있겠군. 빨리 나가서 낙타 여섯마리를 구해오라." |
이 상단은 엿새에 걸쳐 사막을 건널 수 있을까요? 건널 수 없을 겁니다. 왜냐하면 낙타 한마리에 실을 수 있는 양은 [상단원 + 낙타 한마리가 하루동안] 먹을 수 있는 양입니다. 그러므로 낙타 여섯마리에 짐을 싣는다면 그 양은 [상단원 + 낙타 한마리가 엿새동안] 먹을 수 있는 양이 됩니다. 낙타 다섯마리는 하루 지나서 굶어죽을테고, 상단원들은 남은 낙타 한마리에 하루치 먹거리를 싣고 다시 되돌아와야 할 겁니다.
그렇다면 엿새동안 사막을 건너려면 낙타 몇마리가 필요할까요?
이를테면 상단이 하루에 먹을 먹거리가 40kg, 낙타 한마리가 하루에 필요한 먹거리 10kg, 낙타 한마리가 50kg의 짐을 질 수 있다고 해 봅시다. 낙타가 여행중 먹을 먹거리는 낙타 자신이 싣는다고 한다면, 하루길은
낙타 한마리 하루 먹이 | 10kg |
낙타 한마리 여유용량 | 50kg - 10kg = 40kg |
상단 하루 먹거리 | 40kg |
필요한 낙타 | 40kg / 40kg = 1 |
와 같이 낙타 한마리면 충분합니다. 하지만 이틀길은
낙타 한마리 이틀 먹이 | 10kg * 2 = 20kg |
낙타 한마리 여유용량 | 50kg - 20kg = 30kg |
상단 이틀 먹거리 | 40kg * 2 = 80kg |
필요한 낙타 | 80kg / 30kg = 2.6666 |
즉, 낙타 3마리가 있어야 합니다.
만약 나흘 걸리는 길이라면
낙타 한마리 나흘 먹이 | 10kg * 4 = 40kg |
낙타 한마리 여유용량 | 50kg - 40kg = 10kg |
상단 나흘 먹거리 | 40kg * 4 = 160kg |
필요한 낙타 | 160kg / 10kg = 16 |
4마리가 아니라 16마리가 필요합니다.
이렇게 낙타 자체의 먹이 때문에, 사막이 넓어질수록 필요한 먹이가 증가하고, 낙타의 먹이를 나르기 위한 낙타도 증가하므로 필요한 낙타 수가 급격히 증가합니다. 마찬가지로 엔진 자체의 무게 때문에, 중력이 커질수록 필요한 연료량이 증가하고 연료의 무게가 증가하기 때문에 엔진의 크기(규모)도 급격하게 증가하게 되죠. 하루길에 낙타 한마리지만 나흘길에는 낙타 네마리가 아니라 16마리가 필요해지는 것처럼 말이죠.
만약 닷새가 걸리는 사막이라면 어떨까요?
낙타 한마리 닷새 먹이 | 10kg * 5 = 50kg |
낙타 한마리 여유용량 | 50kg - 50kg = 0kg |
상단 닷새 먹거리 | 40kg * 5 = 200kg |
필요한 낙타 | 200kg / 0kg = ∞ |
낙타 한마리에 실을 수 있는 양은 낙타 자신이 닷새간 먹을 수 있는 양이기에 상단원의 먹거리를 실을 수가 없습니다. 결국 아무리 많은 낙타를 모아도 사막을 건널 수가 없는 것이죠.
그렇다면 위 예제에서 엿새가 걸리는 사막을 지날 방법은 없을까요?
낙타 12마리에 먹거리를 가득 싣고 출발했다고 합시다.
하루동안 소모된 양은 다음과 같습니다.
실을 수 있는 양 | 50kg * 12 = 600kg |
상단 소모량 | 40kg |
낙타 소모량 | 10kg * 12 = 120kg |
총 소모량 | 40kg + 120kg = 160kg |
남은 양 | 600kg - 160kg = 440kg |
필요한 낙타수 | 440kg / 50kg = 8.8 |
하루동안 상단과 낙타가 160kg을 소모하고 440kg이 남습니다. 이 440kg을 싣기 위해 12마리의 낙타가 다 필요한 것은 아니죠. 9마리만 있으면 충분합니다. 낙타 세마리는(굶어죽든 오아시스를 찾아가든 상관말고)버리고 9마리에 남은 짐을 채우고 길을 출발합니다.
이틀째
남은양 | 440kg |
상단 소모량 | 40kg |
낙타 소모량 | 10kg * 9 = 90kg |
총 소모량 | 40kg + 90kg = 130kg |
남은 양 | 440kg - 130kg = 310kg |
필요한 낙타수 | 310kg / 50kg = 6.2 |
마찬가지로 상단과 낙타 9마리가 130kg의 먹거리를 소모하고 310kg이 남습니다. 이 310kg의 짐은 낙타 7마리면 충분하죠. 다시 두마리를 버립니다.
사흘째
남은양 | 310kg |
상단 소모량 | 40kg |
낙타 소모량 | 10kg * 7 = 70kg |
총 소모량 | 40kg + 70kg = 110kg |
남은 양 | 310kg - 110kg = 200kg |
필요한 낙타수 | 200kg / 50kg = 4 |
나흘째
남은양 | 200kg |
상단 소모량 | 40kg |
낙타 소모량 | 10kg * 4 = 40kg |
총 소모량 | 40kg + 40kg = 80kg |
남은 양 | 200kg - 80kg = 120kg |
필요한 낙타수 | 120kg / 50kg = 2.4 |
닷새째
남은양 | 120kg |
상단 소모량 | 40kg |
낙타 소모량 | 10kg * 3 = 30kg |
총 소모량 | 40kg + 30kg = 70kg |
남은 양 | 120kg - 70kg = 50kg |
필요한 낙타수 | 50kg / 50kg = 1 |
엿새째
남은양 | 50 |
상단 소모량 | 40kg |
낙타 소모량 | 10kg * 1 = 10kg |
총 소모량 | 40kg + 10kg = 50kg |
남은 양 | 50kg - 50kg = 0kg |
필요한 낙타수 | 0kg / 50kg = 0 |
즉 낙타 12마리를 데리고 출발해서 매일 필요없는 낙타를 버린다면 엿새째 마지막 식사와 함께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을 것입니다.
지구에서 탈출하는 데도 이런 식의 여행을 합니다. 달에서 출발할 때의 6배의 연료와 로켓이 아니라, 수십배 크기의 로켓, 수십배의 엔진으로 출발하고 나서, 필요없어진 로켓을 버리는 다단계 추진으로 지구를 탈출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이유로 인해, 달에서는 지구에서의 1/6 규모의 로켓이 아니라, 지구에서와는 비교할 수도 없을 정도의 작은 로켓으로도 이륙할 수 있는 것이죠.
* 어쩌다 보니 진화론과 관련없는 글을 올리게 되었네요...
창조론 이야기 - maybe & must be
친구들은 철수와 영희 이야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몇년간이나 썸만 타면서 친구들에게 고구마를 먹이고 있던 철수와 영희가 마침내 첫 데이트를 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친구들 중 하나인 진수가 자기 생각을 말합니다.
"어제 보니까 철수가 영화예약 사이트를 보고 있더라. 그리고 영희가 좋아할만한 영화는 한시간 후에 시작할거야. 그러니 지금쯤 영화관 근처 까페에라도 들어가 있겠지."
그 말을 들은 창민이 반박을 합니다.
"그건 진수 네 생각일 뿐이야. 걔네들이 까페에 들어가는 것을 봤어? 내 생각에 그들은 틀림없이 XX모텔에 있을 거야."
"무슨 증거로 그런 말을 하지?"
"왜냐하면 XX모텔은 여기서 가장 가까운 모텔이거든. 충분히 갈 수 있는 곳이지"
"그럼 넌 그애들이 모텔에 들어가는 것은 보고 그런 소릴 하냐?"
"어차피 너나 나나 걔네들이 어디 들어갔는지 보지 못한 것은 마찬가지 아냐?"
maybe는 단순히 가능성만을 나타냅니다. '~~일 수 있다'일 뿐이죠.
must be는 확실한 사실을 나타내죠. '~~임에 틀림없다'입니다.
위에서 창민이 말하는 '모텔에 갈 수 있다'는 maybe - 단순히 가능성일 뿐입니다. 하지만 창민은 이 '가능성'만을 가지고 '모텔에 갔음에 틀림없다'는 must be로 확장해 버리죠.
고의인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대부분의 창조론자들이 이런 특성 - maybe와 must be를 구분 못하는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자신이 유리한 증거는 무조건 must be로 간주해 버리며 불리한 증거는 모두 maybe로 바꿔버립니다.
이를테면 이런 것이 있습니다.
정말 저런 실험이 있었다고 해도, 그것이 말하는 것은 [그랜드캐년이 짧은 시간 안에 만들어질 수 있다(maybe)]일 뿐입니다. 그러나 창조론자들은 이 실험 하나로 [그랜드캐년이 짧은 시간 안에 만들어졌음에 틀림없다(must be)]로 인식해 버립니다. 즉 그들에게는 maybe와 must be를 구분할 능력이 없다는 것이죠.
그랜드캐년의 지층을 분석해 보면 이와 같은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더구나 다른 지층을 보면 부정합이 더욱 확실해집니다.
과연 저 저탁류 실험으로 이런 구조의 지층을 만들 수 있을까요? 이것만 봐도 이런 지층에는 저탁류를 적용할 수 없다 - 이런 지층은 단시간에 만들어질 수 없다는 것이 확실해집니다.
단지 생각할 줄 모르는 창조론자들만이 저탁류실험 - 지층은 짧은 시간에 만들어질 수 있다(maybe) - 을 가지고 [모든 지층은 짧은 시간에 만들어졌다(must be)]로 바꿔버리는 삽질을 하고 있는 것이죠.
친구들 중 하나인 진수가 자기 생각을 말합니다.
"어제 보니까 철수가 영화예약 사이트를 보고 있더라. 그리고 영희가 좋아할만한 영화는 한시간 후에 시작할거야. 그러니 지금쯤 영화관 근처 까페에라도 들어가 있겠지."
그 말을 들은 창민이 반박을 합니다.
"그건 진수 네 생각일 뿐이야. 걔네들이 까페에 들어가는 것을 봤어? 내 생각에 그들은 틀림없이 XX모텔에 있을 거야."
"무슨 증거로 그런 말을 하지?"
"왜냐하면 XX모텔은 여기서 가장 가까운 모텔이거든. 충분히 갈 수 있는 곳이지"
"그럼 넌 그애들이 모텔에 들어가는 것은 보고 그런 소릴 하냐?"
"어차피 너나 나나 걔네들이 어디 들어갔는지 보지 못한 것은 마찬가지 아냐?"
maybe는 단순히 가능성만을 나타냅니다. '~~일 수 있다'일 뿐이죠.
must be는 확실한 사실을 나타내죠. '~~임에 틀림없다'입니다.
위에서 창민이 말하는 '모텔에 갈 수 있다'는 maybe - 단순히 가능성일 뿐입니다. 하지만 창민은 이 '가능성'만을 가지고 '모텔에 갔음에 틀림없다'는 must be로 확장해 버리죠.
고의인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대부분의 창조론자들이 이런 특성 - maybe와 must be를 구분 못하는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자신이 유리한 증거는 무조건 must be로 간주해 버리며 불리한 증거는 모두 maybe로 바꿔버립니다.
이를테면 이런 것이 있습니다.
정말 저런 실험이 있었다고 해도, 그것이 말하는 것은 [그랜드캐년이 짧은 시간 안에 만들어질 수 있다(maybe)]일 뿐입니다. 그러나 창조론자들은 이 실험 하나로 [그랜드캐년이 짧은 시간 안에 만들어졌음에 틀림없다(must be)]로 인식해 버립니다. 즉 그들에게는 maybe와 must be를 구분할 능력이 없다는 것이죠.
그랜드캐년의 지층을 분석해 보면 이와 같은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더구나 다른 지층을 보면 부정합이 더욱 확실해집니다.
자이언캐년(Zion Canyon)의 부정합 |
과연 저 저탁류 실험으로 이런 구조의 지층을 만들 수 있을까요? 이것만 봐도 이런 지층에는 저탁류를 적용할 수 없다 - 이런 지층은 단시간에 만들어질 수 없다는 것이 확실해집니다.
단지 생각할 줄 모르는 창조론자들만이 저탁류실험 - 지층은 짧은 시간에 만들어질 수 있다(maybe) - 을 가지고 [모든 지층은 짧은 시간에 만들어졌다(must be)]로 바꿔버리는 삽질을 하고 있는 것이죠.
진화론 이야기 - 나쁜 유전자는 어떻게 유전되는가.
진화론에 의문을 가지는 사람들이 흔히 가지는 의문이 있습니다.
진화론이란 번식에 도움이 되는 유전자가 살아남아 집단 전체에 퍼지는 현상이라고 알고 있는데, 막상 자연계를 보면 번식에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 유전자(이를테면 동성애 관련 유전자)들이 살아남거나 반대로 생존에 도움이 되는 유전자(이를테면 인간의 비타민 C 생성 유전자)가 도태되는 일이 종종 생깁니다.
이런 이유로 인해 진화론 역시 제대로된 과학이론이 아니라 생각하는 사람이 꽤 됩니다.
과연 어떤 이유로 인해 이런 진화론에 반하는 일이 일어날까요? 그리고 이런 일이 과연 진화론의 반증이 될 수 있을까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런 일은 진화론의 모순이 아닙니다. 마치 나뭇가지 끝에 매달린 빗방울이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고 해서, 그것이 만유인력의 반증이 될 수 없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것은 중력의 반증이 아니라 새로운 요인 - 표면장력을 이용해서 설명할 수 있기 때문이죠.
그렇다면 어떤 이유로 인해 이런 진화론에 반하는 일이 일어나는 것일까요?
1. 한 유전형 다른 표현형
보통 하나의 유전형은 하나의 표현형으로 나타나지 않습니다. 하나의 유전자가 두가지 이상의 발현형으로 발현하거나, 그 유전자가 발현할 때의 조건 또는 그 표현형이 성장할 때의 환경에 따라 다른 형태의 발현형으로 나타나곤 합니다.
이를테면 붉은원숭이에 나타나는 미친원숭이 유전자가 있습니다. 같은 유전자이면서 자랄 때의 환경에 따라 긍정적인 유전자가 되기도 하고 부정적인 유전자가 되기도 합니다.
2. 한 염색체 두 유전자
여러 개의 유전자가 세포 안에서 각각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염색체라는 긴 끈 위에 여러개의 유전자가 모여 있으며, 번식할 때 유전자 단위로 번식하게 됩니다.
다음과 같이 아주좋은유전자 G와 조금나쁜유전자 B, B가 같은 염색체 위에 있다면 어떻게 될까요?
생존에 도움이 되는 유전자 G에 붙어서 나쁜유전자 B, B도 유전될 수 있습니다. 같은 염색체에 있는 유전자들은 함께 움직이기 때문이죠. 물론 다음과 같이 교차에 의해 분리된다면, G와 멀리 있는 B가 분리되어 도태될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G 바로 옆에 존재하는 B가 교차에 의해 G와 분리될 가능성은 훨씬 낮죠.
3. 유전적 부동(창시자효과, 병목현상)
이것은 창조론자들이 좋아하는 우연에 의한 결과입니다. 위와 같이 좋은 유전자 G와 나쁜 유전자 B가 분리되었습니다.
그 이후 나쁜 유전자 B를 가진 일족이 어딘가로 이주해 간 후 시간이 지나 종분화가 일어났습니다. 이렇게 되면 종분화된 이 일족에는 좋은 유전자 G가 아니라 나쁜 유전자 B를 가지게 되죠. 즉 어딘가로 이주해 간 나쁜 유전자 B를 가진 일족은 새로운 종의 창시자가 되는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나쁜 유전자를 가진 창시자에 의해 분화된 종에는 그 나쁜 유전자가 유전될 수밖에 없습니다.
또는 어떤 재해에 의해 많은 개체가 사라지고 소수의 개체만 남았을 때도 마찬가지죠. 그 남은 소수의 개체가 B를 가닌 개체들이었다면 마찬가지로 그 소수의 개체에 의해 B가 번성하게 됩니다. 이런 식으로 많던 개체가 어떤 이유로 줄어들어 여러 유전자가 사라지는 현상을 병목현상이라 합니다.
4. 환경에 따른 우열
이것은 진화를 사람 중심으로, 자기 자신을 중심으로 생각하고 있기에 하는 착각입니다. 사람처럼 지능이 높아야 생존에 유리하고, 사람처럼 직립을 해야 생존에 유리하고, 사람처럼 손을 잘 써야 생존에 유리하다는 착각 말입니다. 내가 사막 한가운데 떨어지면 내가 오래 살까 전갈이 오래 살까를 생각해 보라고 해도 이해 못하는 사람들이 많더군요.
이런 형태의 ‘나쁜유전자’로 겸상적혈구증이 있습니다.
겸상적혈구증은 유전자에 일어난 돌연변이에 의해 헤모글로빈의 글루탐산(Glu)이 발린(Val)으로 바뀌는 바람에, 원래 둥근 모습의 헤모글로빈이 연결되어 긴 모습의 결정으로 바뀌는 것입니다.
사람들의 오해와는 달리 겸상적혈구 유전자를 가지고 있으면 반드시 겸상적혈구에 의한 빈혈증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정상유전자 G와 겸상적혈구유전자 V를 하나씩 가지고 있는 사람(GV)은 정상적인 적혈구에 말라리아에 대한 저항성까지 가지고 있습니다. GG인 사람들이 말라리아로 사망하는 환경에서 GV형은 상당히 좋은 유전자입니다. 말라리아에도 저항성이 있고 빈혈도 없기 때문이죠. 그 때문에 비록 VV형은 도태되지만, 말라리아 환경에서 생존성이 높은 GV 덕에 V유전자가 도태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5. 늦게 발현되는 유전자
사람의 치매라든지 무릎관절염, 허리디스크 등을 일으키는 유전자는 왜 도태되지 않을까요? 또는 그런 병을 방지하는 진화는 왜 일어나지 않을까요? 무릎관절의 연골이 좀 더 단단해지거나 허리근육이 좀더 발달하면 그런 병에 걸리지 않을 텐데 말입니다.
그런 병에 대한 진화가 일어나지 않는 이유는 너무 늦게 발병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번식기(?)가 다 지나고, 더이상의 번식기능이 사라진 이후에 발병하기 때문이죠.
이를테면 치매를 방지하는 유전자가 나타났다고 해 봅시다. 그들이 한창 '생식활동'에 힘쓸 때는 치매가 발생하지 않죠. 그 때문에 그 유전자가 있든 없든 그 유전자는 진화적 우위를 차지할 수 없습니다. 그런 이유로 해서 치매를 방지하는 유전자가 진화할 수 없는 것이죠.
진화론이란 번식에 도움이 되는 유전자가 살아남아 집단 전체에 퍼지는 현상이라고 알고 있는데, 막상 자연계를 보면 번식에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 유전자(이를테면 동성애 관련 유전자)들이 살아남거나 반대로 생존에 도움이 되는 유전자(이를테면 인간의 비타민 C 생성 유전자)가 도태되는 일이 종종 생깁니다.
이런 이유로 인해 진화론 역시 제대로된 과학이론이 아니라 생각하는 사람이 꽤 됩니다.
과연 어떤 이유로 인해 이런 진화론에 반하는 일이 일어날까요? 그리고 이런 일이 과연 진화론의 반증이 될 수 있을까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런 일은 진화론의 모순이 아닙니다. 마치 나뭇가지 끝에 매달린 빗방울이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고 해서, 그것이 만유인력의 반증이 될 수 없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것은 중력의 반증이 아니라 새로운 요인 - 표면장력을 이용해서 설명할 수 있기 때문이죠.
그렇다면 어떤 이유로 인해 이런 진화론에 반하는 일이 일어나는 것일까요?
1. 한 유전형 다른 표현형
보통 하나의 유전형은 하나의 표현형으로 나타나지 않습니다. 하나의 유전자가 두가지 이상의 발현형으로 발현하거나, 그 유전자가 발현할 때의 조건 또는 그 표현형이 성장할 때의 환경에 따라 다른 형태의 발현형으로 나타나곤 합니다.
이를테면 붉은원숭이에 나타나는 미친원숭이 유전자가 있습니다. 같은 유전자이면서 자랄 때의 환경에 따라 긍정적인 유전자가 되기도 하고 부정적인 유전자가 되기도 합니다.
2. 한 염색체 두 유전자
여러 개의 유전자가 세포 안에서 각각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염색체라는 긴 끈 위에 여러개의 유전자가 모여 있으며, 번식할 때 유전자 단위로 번식하게 됩니다.
다음과 같이 아주좋은유전자 G와 조금나쁜유전자 B, B가 같은 염색체 위에 있다면 어떻게 될까요?
생존에 도움이 되는 유전자 G에 붙어서 나쁜유전자 B, B도 유전될 수 있습니다. 같은 염색체에 있는 유전자들은 함께 움직이기 때문이죠. 물론 다음과 같이 교차에 의해 분리된다면, G와 멀리 있는 B가 분리되어 도태될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G 바로 옆에 존재하는 B가 교차에 의해 G와 분리될 가능성은 훨씬 낮죠.
3. 유전적 부동(창시자효과, 병목현상)
이것은 창조론자들이 좋아하는 우연에 의한 결과입니다. 위와 같이 좋은 유전자 G와 나쁜 유전자 B가 분리되었습니다.
그 이후 나쁜 유전자 B를 가진 일족이 어딘가로 이주해 간 후 시간이 지나 종분화가 일어났습니다. 이렇게 되면 종분화된 이 일족에는 좋은 유전자 G가 아니라 나쁜 유전자 B를 가지게 되죠. 즉 어딘가로 이주해 간 나쁜 유전자 B를 가진 일족은 새로운 종의 창시자가 되는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나쁜 유전자를 가진 창시자에 의해 분화된 종에는 그 나쁜 유전자가 유전될 수밖에 없습니다.
또는 어떤 재해에 의해 많은 개체가 사라지고 소수의 개체만 남았을 때도 마찬가지죠. 그 남은 소수의 개체가 B를 가닌 개체들이었다면 마찬가지로 그 소수의 개체에 의해 B가 번성하게 됩니다. 이런 식으로 많던 개체가 어떤 이유로 줄어들어 여러 유전자가 사라지는 현상을 병목현상이라 합니다.
4. 환경에 따른 우열
이것은 진화를 사람 중심으로, 자기 자신을 중심으로 생각하고 있기에 하는 착각입니다. 사람처럼 지능이 높아야 생존에 유리하고, 사람처럼 직립을 해야 생존에 유리하고, 사람처럼 손을 잘 써야 생존에 유리하다는 착각 말입니다. 내가 사막 한가운데 떨어지면 내가 오래 살까 전갈이 오래 살까를 생각해 보라고 해도 이해 못하는 사람들이 많더군요.
이런 형태의 ‘나쁜유전자’로 겸상적혈구증이 있습니다.
겸상적혈구증은 유전자에 일어난 돌연변이에 의해 헤모글로빈의 글루탐산(Glu)이 발린(Val)으로 바뀌는 바람에, 원래 둥근 모습의 헤모글로빈이 연결되어 긴 모습의 결정으로 바뀌는 것입니다.
사람들의 오해와는 달리 겸상적혈구 유전자를 가지고 있으면 반드시 겸상적혈구에 의한 빈혈증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정상유전자 G와 겸상적혈구유전자 V를 하나씩 가지고 있는 사람(GV)은 정상적인 적혈구에 말라리아에 대한 저항성까지 가지고 있습니다. GG인 사람들이 말라리아로 사망하는 환경에서 GV형은 상당히 좋은 유전자입니다. 말라리아에도 저항성이 있고 빈혈도 없기 때문이죠. 그 때문에 비록 VV형은 도태되지만, 말라리아 환경에서 생존성이 높은 GV 덕에 V유전자가 도태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5. 늦게 발현되는 유전자
사람의 치매라든지 무릎관절염, 허리디스크 등을 일으키는 유전자는 왜 도태되지 않을까요? 또는 그런 병을 방지하는 진화는 왜 일어나지 않을까요? 무릎관절의 연골이 좀 더 단단해지거나 허리근육이 좀더 발달하면 그런 병에 걸리지 않을 텐데 말입니다.
그런 병에 대한 진화가 일어나지 않는 이유는 너무 늦게 발병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번식기(?)가 다 지나고, 더이상의 번식기능이 사라진 이후에 발병하기 때문이죠.
이를테면 치매를 방지하는 유전자가 나타났다고 해 봅시다. 그들이 한창 '생식활동'에 힘쓸 때는 치매가 발생하지 않죠. 그 때문에 그 유전자가 있든 없든 그 유전자는 진화적 우위를 차지할 수 없습니다. 그런 이유로 해서 치매를 방지하는 유전자가 진화할 수 없는 것이죠.
창조론자와 진화론자의 차이
이런 식의 댓글을 받은 일이 있습니다.
창조론은 단순합니다. 야훼가 다했다 이 여섯글자로 끝납니다.
그래서 창조론자들은 진화론도 그렇게 단순하다고 오해를 하곤 합니다. 진화론도 창조론과 마찬가지로 저절로 생겼다 이 여섯글자로 끝난다고 말이죠.
만약 사막에서 집을 발견했을때, 저절로 생겼다로 만족하는 진화론자들은 없을 것입니다. 그곳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서 이런 집이 생겼는지 만족할 만큼 설명이 되지 않는다면 말이죠.
마찬가지로 누군가가 만들었다는 설명에도 그냥 만족하는 진화론자도 없을 것입니다. 최소한 재료는 어디서 구했고 여기까지 어떻게 운반했으며 인부들은 어디서 모았고 인부들의 먹거리, 숙소는 어떻게 해결했으며... 이런 것을 다 밝혀낸 후에야 누군가가 만들었다는 설명을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죠.
피드 구독하기:
글 (At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