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론 이야기 - 미친 원숭이

붉은털원숭이
인도와 중국 북부에 서식하는 붉은털원숭이(rhesus macaques)를 연구하던 스티븐 수오미(Stephen Suomi) 박사는, 매 세대마다 통제불능의 수컷원숭이(소위 미친원숭이)들이 일정비율로 태어난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이들 미친원숭이들은 나뭇가지 사이를 위험하게 뛰어다니는등 거의 '광기'에 가까운 무모한 짓을 하곤 했습니다.

이 미친원숭이의 유전자를 분석해본 결과, 뇌에서 세로토닌을 만드는 부분의 유전자에 이상이 있음이 밝혀졌습니다(우울증 치로제인 프로작(Prozac)은 두뇌의 세로토닌 합성에 영향을 줍니다). 아마도 먼 옛날 이러한 돌연변이가 일어난 후 그 유전자가 점차 증가해 왔다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변이는, 작게는 자기 자신의 위험으로부터 크게는 천적의 시선을 끌어 붉은털원숭이 집단 전체에 대한 위험을 불러올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위험한 돌연변이가 어떻게 자연선택이라는 '체'를 통과할 수 있었을까요?
혹시 이 미친원숭이가 강간에 가깝게 암컷과 강제적인 짝짓기를 해서 유전자를 이어나가는 것이 아닐까 하는 가설도 있었지만, 관찰결과 이 미친원숭이들은 집단 전체의 배척을 받기에 암컷에 가까이 갈 기회가 없었습니다.

수오미 박사는 그 이후, 전체 붉은털원숭이 집단에 대해 유전자검사를 실시했습니다. 그 결과 미친원숭이들 뿐 아니라 생각보다 많은 원숭이들이 이 '미친원숭이 유전자'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그 뿐 아니라, 그 유전자를 가진 원숭이들은 소수의 미친원숭이들을 제외하고는 오히려 집단의 주도적 위치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즉 이 돌연변이는 원숭이를 미치게 하는 동시에 상당한 리더쉽을 발휘하게 만드는 그런 유전자라 할 수 있습니다. 그 때문에 집단을 위험에 빠뜨리는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자연선택에 의해 번성할 수가 있었던 것이죠.

그런데 똑같은 유전자가 어떤 원숭이에게는 미친 짓으로 나타나고, 다른 원숭이에게는 리더쉽으로 나타날까요? 몇달에 걸친 연구 끝에 수오미박사는 어미원숭이의 양육방식으로 결론내렸습니다. 어미가 적절한 피드백으로 새끼원숭이를 교육시키면 그 '미친원숭이 유전자'는 높은 리더쉽으로 발현됩니다. 반면 그러한 피드백이 부족하거나 적절치 못하면 무모함으로 발현된다는 것이죠.

훗날 수오미박사는 인도를 떠나 중국 북부의 붉은털원숭이를 연구하게 되었습니다. 인도의 붉은털원숭이가 히말라야산맥을 넘어 중국에 정착한 것이 중국의 붉은털원숭이입니다.
여기서 수오미박사는 중국의 붉은털원숭이가 인도의 원숭이보다 훨씬 '미친짓'을 많이 한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미친원숭이 유전자'의 비율 역시 중국 쪽이 더 높았죠.
세계에서 가장 높은 히말라야 산맥을 넘는 '미친 짓'을 한 원숭이들의 후예답게 말입니다.


참고문헌 : Suomi, S. J. (2005) "Genetic and environmental factors influencing the expression of impulsive aggression andserotonergic functioning in rhesus monkeys." In Development Origins of Aggression (R. E. Tremblay, W. H. Hartup, and J. Archer, eds.) New York, Guilford Press, 63-82

출처 : 진화론의 유혹(데이비드 슬론 윌슨)

창조론 이야기 - 진화론은 일관성이 없다.




빛의 정체에 대해서는오랜 시간 과학자들이 연구해 오고 있었습니다.

피타고라스는 물체들은 모두 미립자들을 방출하며, 그 미립자가 눈에 부딫쳐 사람들이 볼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약 100년 후 엠페도클레스는 반대로 눈에서 나온 입자가 물체에 부딫칠 때 시각이 생긴다고 생각했습니다. 차이는 있지만 그 당시에는 빛의 입자성을 말하고 있죠.

그 후 오랜시간의 중세가 끝나고 다시 빛에 대한 고찰이 시작된 것은 17세기에 이르러서였습니다.
뉴튼이 직접 그린 실험 스케치

뉴턴은 자신의 이중 프리즘 실험에 의해, 일단 프리즘으로 나뉜 빛은 다른 프리즘에 의해 다시 나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이것으로, 빛은 입자이기 때문에 프리즘으로 한번 나뉜 빛은 다시 나뉘지 않는다고 판단한 것이죠. 이것으로 뉴턴은 빛의 입자성을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비슷한 시기의 호이겐스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만약 빛이 입자라면, 두 줄기 빛이 교차할때 빛입자들의 충돌에 의해 서로를 교란시켜야 하는데 그런 것이 없다는 것이죠. 그는 파동에 관한 호이겐스의 원리와 함께 빛의 파동성을 주장했습니다.

광전효과
그 이후 토마스 영의 이중슬릿에 의한 간섭실험, 그리고 빛의 파동을 수식으로 증명한 맥스웰의 방정식 등 빛의 파동성으로 결론나는 듯 했습니다.

그러나 빛의 파동성으로는 절대로 설명할 수 없는 현상이 남아 있었습니다. 금속에 빛을 쬐면 전자가 튀어나오는 광전효과는, 빛이 입자가 아니라면 설명할 수 없는 현상이었죠.
그에 아인슈타인은 빛의 입자성을 다시 부활시켰지만, 몇백년동안 모인 빛의 파동성의 증거들을 무시할 수는 없었습니다. 결국 빛은 입자이면서 파동이라는 빛의 양면성으로 결론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결론은 입자인 전자의 파동성을 발견하고 ‘물질파’라 명명한 루이 드 브로이에 의해 뒷받침되었습니다.


이러한 이야기를 창조론자들이 본다면 뭐라고 할까요?
빛의 성질에 대한 물리학자들의 주장을 보면 가관이다. 빛이 입자랬다가 파동이랬다가 다시 입자랬다가, 결국에는 '빛은 입자면서 파동이다'라는 웃기지도 않는 주장을 하고 있다. 이런 일관성없는 물리학을 믿을 수 있는가?

그런데도 이렇게 '일관성없는' 물리학을 가지고 뭐라 하는 창조론자들은 없습니다. 단지 '일관성없는' 진화론만을 물어뜯고 있는 것입니다.

'일관성이 없다'는 것은 과학의 특징입니다. 그뿐 아니라 과학의 장점입니다.
만약 과학에 일관성을 도입한다면 아마 지금도 '물질에서 튀어나오는 빛이 눈에 부딫쳐서 사람이 볼 수 있는 것이다'라는 2500년전 이론을 배우고 있겠죠.
과학이 일관성없이 변해 왔기에 지금 와서 우리는 각종 조명기구나 광통신 등의 혜택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진화론 역시 일관성 없이 자꾸만 바뀌고 있습니다. 그러나 진화론 이야기 - 만약 진화론이 붕괴된다면...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자연현상을 보다 더 잘 설명할 수 있는 이론으로 바뀌는 것입니다.
'진화론은 일관성이 없다'는 창조론자들의 비난은 결국 '나는 과학을 전혀 모른다'는 고백일 뿐입니다.

창조론 이야기 - 진화의 정지?

유전자 알고리즘의 원리를 먼저 설명하겠습니다.

위와 같은 함수의 최소값을 유전자알고리즘으로 구하는 방법입니다.


우선 일정한 범위에서 랜덤한 값을 취한 후 함수값을 계산합니다.
위와 같이 6개의 랜덤값이 나온 경우 (지금 찾으려는 것이 최소값이므로) 함수값이 최소인 를 고릅니다. 그리고 번식(재생산 및 돌연변이)시킵니다. 즉 2세대의 값은 를 중심으로 근처에 분포하게 됩니다.
여기서도 최소값인 번식시킨다면 3세대는 를 중심으로 분포합니다.
이러한 작업을 반복하면 수치들은 최소값에 모이게 되며, 마침내는 함수의 최소값 주위에 옹기종기 모여있는 모습을 발견할 것입니다*.

그런데, 최초에 랜덤값의 분포가 다음과 같다면 어떨까요?
이 경우에는, 선택된 점들 중 최소값은 입니다. 결국 를 중심으로 재생산을 하기에, 다음세대는
가 되며, 결국 이 경우에는 최소값이 아닌 극소값 - 전체적인 최적은 아니지만 근방에서의 최적 - 으로 모이게 됩니다. 그리고 만약 이와 같은 상황이 된다면, 아무리 변이를 만들어도 그것은 이미 수렴된 값보다 나쁜 값이 되어 도태될 것이기에 더이상의 개선효과가 없는(진화가 안되는) 것으로 보일 것입니다.



창조과학회의 주장
Phyllium bioculatum
잎벌레가 4700만년동안 진화하지 않았다**는 것이 진화론이 거짓이라는 증거랍니다. 하지만 조금만 생각해 보면 알 수 있죠.

잎벌레가 살아남을 수 있는 이유는 '겉모습이 나뭇잎을 닯아서'입니다. 그런데 이 잎벌레에게 변이가 일어나서 모습이 (나뭇잎과) 달라진다면 어떻게 될까요? 그 변이체는 다른 포식자의 눈에 쉽게 띄어 잡아먹혀 도태될 것입니다. 즉, 잎벌레에게 있어서 현재의 모습이 전체적인 최적은 아닐지라도 위 알고리즘에서처럼 근방에서의 최적인 상태입니다. 그 때문에 4700만년 동안이나 더이상의 진화를 멈춘 듯이 보이는 것입니다.

이들의 모습이 변하기 위해서는 주위의 환경이 변해야 합니다. 주위 나뭇잎의 모습이 변한다면 이들도 그 나뭇잎의 모습에 맞추어 자신의 모습을 바꾸어 갈 것입니다. 결국 이런 간단한 생각조차 거부하는 창조과학회의 주장은 그야말로 진화적으로 생각하는 것의 대안은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이다의 전형을 보여주는 것이죠,

뱀발 : 창조주의 졸작인 인간의 눈 역시 마찬가지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최초의 시세포가 혈관 뒤에 있던 세포였기에, 문어의 눈이 아니라 현재 척추동물의 눈 - 전체적인 최적은 아니지만 근방에서의 최적 - 으로 수렴된 것이죠.


* 이 보기는 유전자 알고리즘을 사용하기에 적절치 않은 문제입니다. 유전자알고리즘보다는 미분을 이용하는 것이 더 빠르고 정확한 방법입니다. 여기서는 이해하기 쉬운 보기를 제시한 것입니다.

** 사실 '진화하지 않았다'는 것 역시 창조론적인 생각이죠. 그들 역시 진화를 했습니다. 창조론을 부정하는 살아있는 화석을 참고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