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론 이야기 - 시뮬레이션(simulation)

다윈 이후 백여년간 진화론은 (진정한 유사과학인) 창조론계로부터 '유사과학'이라는 비난을 받아 왔습니다. 물론 이것은 종교적 도그마를 과학에 도입하려는(또는 과학을 종교의 도구로 삼으려는) 창조론자들의 딴지이긴 했습니다만, 한편으로는 진화론 자체가 실험이 불가능한 과학이라는 한계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진화라는 현상이 최소한 수천년단위로 일어나기에 진화의 정확한 메커니즘을 실험을 통해 밝히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20세기 중후반에 들어 진화론자들은 강력한 실험도구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바로 컴퓨터죠. 유전자의 움직임을 (때로는 화학반응 수준에서, 때로는 재생산과 돌연변이 수준에서) 묘사하는 시뮬레이션을 통해 생물의 진화과정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분석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컴퓨터에서 유전자를 시뮬레이션하면 대부분 다음과 같은 과정이 벌어집니다.(물론 이름은 학술적인 이름이 아닙니다.)

1. 낙원기(Era of Paradise)
시 뮬레이션의 초기단계입니다. 주변에 자원은 많고 유전자는 적으니 유전자들은 마음껏 자원을 얻어 번식을 할 수 있죠. 이 시기에는 보다 효율적인 번식을 해나가는 유전자들이 대세를 차지합니다. 보다 적은 자원으로 보다 빠른 시간에 번식을 하는 유전자들로 가득 차게 됩니다.

2. 경쟁기(Era of Competition)
유전자들은 점점 많아지고 슬슬 자원의 부족이 찾아옵니다. 여기서부터 유전자들의 이전투구가 극심해집니다. 무슨 수를 써서든 자원을 모아 자신의 복제를 만드는 유전자가 대세를 차지하기에, 옆에 있는 유전자를 분해해서 자신의 복제를 만들 재료로 삼는 만행(?)도 사양치 않습니다.

3. 협동기(Era of Cooperation)
밑의 죄수의 딜레마에 서도 언급했지만 일부의 유전자들이 협동의 방법을 알아냅니다. 물론 그들의 성급한 협동시도는 주위의 다른 유전자들에게 먼저 이득을 주겠지만, 그들끼리 만난다면 이기적인 주위의 다른 유전자에 비해 훨씬 효율적으로 번식해 나갈 수 있습니다. 결국 협동하는 유전자들은 시뮬레이션공간을 가득 채우게 됩니다.

4. 기생기(Era of Parasite)
서로 협력하는 유전자들 사이에서 기생충이 나타납니다. 이들은 다른 유전자를 착취한다는 점에서는 협동기때의 수많은 유전자들과 비슷하지만, 그 착취의 방법이 전문화되었다는 점이 다릅니다. 즉, 눈에는 눈 전략을 가진 숙주로부터 착취하기 위해 숙주를 속이는 쪽으로 발달한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만큼 기생충들은 자력생존은 불가능하죠. 지나치게 번식해서 숙주의 수가 줄어든다면 기생충들 역시 위기에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5. 극복기(Era of Overcome)
숙주가 마침내 기생충을 찾는 방법을 알아내고 기생충에게 눈에는 눈 전략을 시전할 수 있게 됩니다. 즉 기생충을 상대로 승리할 수 있는 것이죠. 하지만 기생충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6. 기생충들은 숙주를 피하는 새로운 방법을 찾아내어 되돌아와 4번부터 되풀이됩니다.

이를테면, 숙주가 완벽하게 기생충을 찾는 방법을 찾아내어 기생충을 몰아냈다고 하더라도 기생충은 시간이 지나면 (거의 반드시) 되돌아옵니다. 왜냐하면 기생충을 찾는 방법 자체가 시간과 자원을 소모하는 과정이기 때문이죠.
기생충이 있는 상황에서는 시간과 자원을 소모하여 기생충을 검색해 없애는 숙주가 번식에 유리합니다. 그러나 기생충들이 추방된 상황에서는 더이상 기생충을 검색하는 행위는 시간과 자원을 소모할 뿐인 일이 되죠. 그때는 기생충 검색을 생략하는 숙주가 유리해져 번성하고 그에따라 기생충이 다시 돌아올 터전이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그러한 '기생충'들은 유전자의 세계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현실사회에서도 사회를 좀먹는 기생충들이 존재하죠.
그때문에 원시사회에서조차 그런 기생충을 막기 위한 '사회 규범'이 존재합니다(진화론적으로 말하자면 그런 사회규범이 없는 사회는 이미 붕괴해 버렸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다만 그런 사회규범은 '약속을 어기면 도깨비가 나타나 약속할때 걸었던 손가락을 잘라먹어버린다', '거짓말을 하면 이가 모두 빠진다' 등등 미신적이고 주술적인 모습으로 전해내렸기에 현대인에게 폄하당하고 있을 뿐입니다.
하지만 아주 옛날 사람들에게 '약속을 어기면 상대방도 약속을 어기게 되고 결국에는 서로가 믿지 못하는 사회가 된다'는 설명보다 '약속을 어기면 도깨비가 나타나 약속할때 걸었던 손가락을 잘라먹어버린다'는 설명이 훨씬 이해되기 쉬웠겠죠. '서로가 거짓말을 하면 결국 다른 사람의 말을 믿지 못하게 되고 그것은 사회공동체의 불이익이 된다'는 설명보다 '거짓말을 하면 이가 모두 빠진다'는 설명이 훨씬 간단하면서도 쉽게 와닿는 설명일 것입니다.

불행하게도 일제시대 이후 급격한 근대화를 이루면서 과거의 많은 사회규범은 '미신'이라는 이유로 대부분 사라졌습니다. 한편 그것들을 대신할 새로운 사회규범이 만들어지지는 않은 상태입니다. 그 때문에 지금 우리사회가 어지러운 것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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