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론 이야기 - 설계도와 설명서

흔히들 유전자를 생물의 설계도(drawing)라고 합니다. 유전자에 새겨진 설계도대로 생물이 만들어진다는 것이죠.
하지만 유전자를 설계도라고 생각하면 생물의 진화를 이해하기가 어려워질 수 있습니다.

이를테면 이와 같은 단엽기가 있습니다.



만약 유전자가 설계도라면 이 단엽기의 유전자는 다음과 같은 모습이겠죠.



설계도대로 몸통과 날개를 만들고 사각별에 맞추어 붙이면 위와 같은 단엽기가 완성됩니다.(몸체를 접고 붙이는 부분은 생략했습니다)

이 단엽기가 다음과 같은 복엽기로 진화했습니다.



이렇게 진화하기 위해서는 단엽기의 설계도에 다음과 같은 돌연변이가 일어나야 합니다(다음 설계도의 붉은색이 돌연변이가 일어난 곳입니다).




이런 돌연변이가 어떻게 일어날 수 있을까요? 두번째 날개야 유전자의 중복에 의해 일어날 수 있지만
1. 중복된 날개의 사각별 하나가 육각별로 돌연변이가 일어난다.
2. 몸체의 사각별 반대편에 1번과 똑같은 육각별 돌연변이가 일어난다.
두가지(중복까지 생각하면 세가지) 돌연변이가 동시에 일어나지 않으면 제대로된 복엽기가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더구나 2번이 문제가 되는데, 정확한 위치에, 정확히 똑같은 돌연변이가 일어나야 복엽기로 진화할 수 있는 것이죠.



이번에는 유전자를 생물의 설명서(recipe)라고 생각해 봅시다.
위의 단엽기를 만들기 위한 설명서는 다음과 같습니다. 부품이 될 번호가 붙은 네모꼴을 모아놓은 후

1. 앞면네모를 세운다.
2. 앞면네모 위에 뒤로 00을 붙인다.
3. 앞면네모 옆에 뒤로 10을 붙인다.
4. 앞면네모 밑에 뒤로 20을 붙인다.
5. 00 뒤에 01을 붙인다.
6. 10 뒤에 11을 붙인다.
7. 20 뒤에 21을 붙인다.
8. 01 뒤에 02를 붙인다.
9. 11 뒤에 12를 붙인다.
10. 21 뒤에 22를 붙인다.
11. 02 뒤에 03을 붙인다.
12. 12 뒤에 13을 붙인다.
13. 22 뒤에 23을 붙인다.
14. 03 뒤에 04를 붙인다.
15. 13 뒤에 14를 붙인다.
16. 23 뒤에 24를 붙인다.
17. 04 뒤에 05를 붙인다.
18. 14 뒤에 15를 붙인다.
19. 24 뒤에 25를 붙인다.
20. 22 옆에 221을 붙인다.
21. 221 옆에 222를 붙인다.
22. 222 옆에 223을 붙인다.

1번부터 19번까지가 몸체를, 20~22까지 날개를 만드는 부분입니다.

설명서의 어디에 어떤 돌연변이가 일어나야 복엽기가 될까요?

1. 앞면네모를 세운다.
2. 앞면네모 위에 뒤로 20을 붙인다.
3. 앞면네모 옆에 뒤로 10을 붙인다.
4. 앞면네모 밑에 뒤로 20을 붙인다.
5. 00 뒤에 01을 붙인다.
6. 10 뒤에 11을 붙인다.
7. 20 뒤에 21을 붙인다.
8. 01 뒤에 02를 붙인다.
9. 11 뒤에 12를 붙인다.
10. 21 뒤에 22를 붙인다.
11. 02 뒤에 03을 붙인다.
12. 12 뒤에 13을 붙인다.
13. 22 뒤에 23을 붙인다.
14. 03 뒤에 04를 붙인다.
15. 13 뒤에 14를 붙인다.
16. 23 뒤에 24를 붙인다.
17. 04 뒤에 05를 붙인다.
18. 14 뒤에 15를 붙인다.
19. 24 뒤에 25를 붙인다.
20. 22 옆에 221을 붙인다.
21. 221 옆에 222를 붙인다.
22. 222 옆에 223을 붙인다.

단 하나의 돌연변이만으로 복엽기로 진화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이때 5, 8, 11, 14, 17번 유전자는 의미가 없는 Junk유전자가 될 것입니다.
또한 2번이 아니라 5번, 8번 등에서 돌연변이가 일어나도 동일한 복엽기가 만들어질 수 있습니다.

1. 앞면네모를 세운다.
2. 앞면네모 위에 뒤로 00을 붙인다.
3. 앞면네모 옆에 뒤로 10을 붙인다.
4. 앞면네모 밑에 뒤로 20을 붙인다.
5. 00 뒤에 21을 붙인다.
6. 10 뒤에 11을 붙인다.
7. 20 뒤에 21을 붙인다.
8. 01 뒤에 02를 붙인다.
9. 11 뒤에 12를 붙인다.
10. 21 뒤에 22를 붙인다.
11. 02 뒤에 03을 붙인다.
12. 12 뒤에 13을 붙인다.
13. 22 뒤에 23을 붙인다.
14. 03 뒤에 04를 붙인다.
15. 13 뒤에 14를 붙인다.
16. 23 뒤에 24를 붙인다.
17. 04 뒤에 05를 붙인다.
18. 14 뒤에 15를 붙인다.
19. 24 뒤에 25를 붙인다.
20. 22 옆에 221을 붙인다.
21. 221 옆에 222를 붙인다.
22. 222 옆에 223을 붙인다.


그뿐 아니라 다음과 같은 (비교적 간단한) 돌연변이에 의해 여러가지 비행기가 만들어질 수 있습니다.

1. 앞면네모를 세운다.
2. 앞면네모 위에 뒤로 00을 붙인다.
3. 앞면네모 옆에 뒤로 10을 붙인다.
4. 앞면네모 밑에 뒤로 20을 붙인다.
5. 00 뒤에 01을 붙인다.
6. 10 뒤에 11을 붙인다.
7. 20 뒤에 21을 붙인다.
8. 01 뒤에 02를 붙인다.
9. 11 뒤에 12를 붙인다.
10. 21 뒤에 22를 붙인다.
11. 02 뒤에 03을 붙인다.
12. 12 뒤에 13을 붙인다.
13. 22 뒤에 23을 붙인다.
14. 03 뒤에 04를 붙인다.
15. 13 뒤에 14를 붙인다.
16. 23 뒤에 24를 붙인다.
17. 04 뒤에 222를 붙인다.
18. 14 뒤에 15를 붙인다.
19. 24 뒤에 25를 붙인다.
20. 22 옆에 221을 붙인다.
21. 221 옆에 222를 붙인다.
22. 222 옆에 223을 붙인다.




22번이 중복후 돌연변이된다면

1. 앞면네모를 세운다.
2. 앞면네모 위에 뒤로 00을 붙인다.
3. 앞면네모 옆에 뒤로 10을 붙인다.
4. 앞면네모 밑에 뒤로 20을 붙인다.
5. 00 뒤에 01을 붙인다.
6. 10 뒤에 11을 붙인다.
7. 20 뒤에 21을 붙인다.
8. 01 뒤에 02를 붙인다.
9. 11 뒤에 12를 붙인다.
10. 21 뒤에 22를 붙인다.
11. 02 뒤에 03을 붙인다.
12. 12 뒤에 13을 붙인다.
13. 22 뒤에 23을 붙인다.
14. 03 뒤에 04를 붙인다.
15. 13 뒤에 14를 붙인다.
16. 23 뒤에 24를 붙인다.
17. 04 뒤에 222를 붙인다.
18. 14 뒤에 15를 붙인다.
19. 24 뒤에 25를 붙인다.
20. 22 옆에 221을 붙인다.
21. 221 옆에 222를 붙인다.
22. 222 옆에 223을 붙인다.
23. 15 옆에 223을 붙인다.


방향이 돌연변이되어서

1. 앞면네모를 세운다.
2. 앞면네모 위에 뒤로 00을 붙인다.
3. 앞면네모 옆에 뒤로 10을 붙인다.
4. 앞면네모 밑에 뒤로 20을 붙인다.
5. 00 뒤에 01을 붙인다.
6. 10 뒤에 11을 붙인다.
7. 20 뒤에 21을 붙인다.
8. 01 뒤에 02를 붙인다.
9. 11 뒤에 12를 붙인다.
10. 21 뒤에 22를 붙인다.
11. 02 뒤에 03을 붙인다.
12. 12 뒤에 13을 붙인다.
13. 22 뒤에 23을 붙인다.
14. 03 뒤에 04를 붙인다.
15. 13 뒤에 14를 붙인다.
16. 23 뒤에 24를 붙인다.
17. 04 뒤에 222를 붙인다.
18. 14 뒤에 15를 붙인다.
19. 24 뒤에 25를 붙인다.
20. 22 옆에 221을 붙인다.
21. 221 옆에 222를 붙인다.
22. 222 옆에 223을 붙인다.
23. 15 에 223을 붙인다.



이런 비행기도 만들어질(진화될) 수 있는 것이죠.


즉 설계도(drawing)일 때에 비해 설명서(recipe)일 경우에 유전자의 작은 돌연변이로 표현형의 큰 차이가 생길 수 있는 것입니다. 실제로 최초 앞날개만 달린 단엽기와 마지막 꼬리날개까지 달린 단엽기의 유전자(설명서(recipe))를 비교해 보면 그렇게 큰 차이가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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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다음과 같은 설명서가 있다면 어떤 것을 만들까요?

1. 씨눈을 만든다.
2. 씨눈 앞으로 가지를 만든다.
3. 가지 끝에 씨눈을 만든다.
4. 가지 3/4지점에 60도방향으로 씨눈을 만든다.
5. 가지 2/4지점에 60도방향으로 씨눈을 만든다.
6. 가지 1/4지점에 60도방향으로 씨눈을 만든다.
7. 가지를 키운다.
8. 2번부터 다시 시작

바로 카오스 - 프랙탈(Fractal)에 설명했던 나무를 만드는 설명서입니다.



계속 가지를 만들며 끝없이 자라는 나무인 셈입니다.

너무 대충 설명한 감이 없지는 않지만, 유전자를 설계도가 아니라 설명서로 이해하는 것이 진화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뻘글 - 네이버의 진화론 검색 분석

2016년 9월 13일, 네이버에서 '진화론'을 검색해 봤습니다. 이것저것 보다보니 재미있는 사실이 보이더군요.

일단 블로그에서 '진화론'을 검색한 첫 페이지입니다. 10건의 검색결과 중에 진화론을 옹호하는 글 1개, 창조론을 옹호하는 글 8개군요. 창조론의 압승...ㅡㅡ



다음은 책 검색입니다. 첫페이지 20권의 책 중에 진화론 관련 책 11권, 창조론 관련 책 3권(나머지는 진화론 이름만 빌려온 책입니다). 블로그처럼 상위 10권만 봐도 진화론 5권, 창조론 1권. 결과가 달라지지 않습니다.



이번에는 그 저자를 봅시다. 블로그야 일반 사람들이 하는 것이니 도서의 저자를 찾아보는 것이 낫겠죠.

리처드 도킨스는 잘 알다시피 동물행동학자이며 옥스포드대 교수입니다.
신현철은 식물학을 전공한 현재 순천향대학교 생명시스템학과 교수입니다.
기타무라 유이치는 자유기고가이지만 니혼대학(日本大學) 농수의학부를 전공했습니다.
션 B. 캐럴은 위스콘신 매디슨 대학의 유전학과 교수이자 하워드 휴즈 의학협회의 연구원입니다.

진화론 관련 서적의 저자들은 이렇게 상위 몇명만 봐도 교수에 연구원에 생물학관련전공자들입니다.
반면 창조론 관련 저자들은 어떨까요? 관련책 3권은 '한국 창조과학회'와 '교과서 개정 추진 위원회'에서 나왔으며 그중 두 권을 '김재욱'이란 사람이 썼네요.
책 소개의 '김재욱' 소개는 이렇습니다.

저자 김재욱은 작가로서 교진추 출판담당 위원이며 과학을 남녀노소 모두가 알기 쉽게 설명하는 책을 집필해온 저술가이다.

전공이 무엇이고 지금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는 나와 있지 않습니다.

이것만 봐도 일명 '진화론자'와 '창조론자'들의 차이점이 명확하죠. '진화론자'들은 대부분이 유명대학 교수 및 연구원들입니다. '창조론자'들은 소위 '듣보'에 불과합니다.

과연 이 '듣보' 저자를 유명대 교수 및 연구원들과 동일시해야 할 이유가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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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보니 공동집필자가 있었군요. 김만복이란 공동집필자와, 임번삼이란 감수자가 있었네요.
그런데 제가 왜 그 사람들을 제대로 보지 못했을까요? 왜 그 이름을 전면에 내세우지 않고 '김재욱'이란 '듣보'를 내세우든지 아니면 '교과서 개정 추진 위원회'라는 단체명 뒤에 숨어 있을까요? '한국생명공학연구원'이나 '고려대에서 미생물학을 전공한 농학박사'를 내세우면 책에 대한 권위가 더 오를텐데 말입니다.

진화론 이야기 - 종분화는 디지털이 아니라 아날로그다.

창조론 이야기 - 창조론자들의 흑백논리에서도 썻던 것이지만, 기독교가 기반이 된 창조론자들은 대부분 흑백논리에 찌들어 있습니다. 그때문에 '점진적 변화'라는 것을 전혀 이해 못하고 진화론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죠.

그뿐 아니라 창조론자가 아닌데도 진화론을 이해 못하는 사람들 역시 몇가지 흑백논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종분화에 대한 것이죠.




이런 것은  A1과 A10은 같은 종이고 A1과 B는 다른 종이라는 흑백논리에 의한 생각이죠.

하지만 진화론 이야기 - 종의분화, 그리고 고리종에서도 언급했듯이 종과 종 사이는 칼로 자르듯이 갈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뿐 아니라 종분화가 되었다고 해서 모두 짝짓기가 불가능한 것도 아니죠.

이를테면 개와 늑대 사이에서는 교배가 가능합니다. 늑대와 코요테 사이에서도, 개와 자칼 사이에서도 교배가 가능합니다. 그뿐 아니라 이렇게 태어난 새끼들도 생식능력이 있습니다.

잘 알다시피 사자와 호랑이 사이에서도 교배가 가능합니다. 이렇게 태어난 새끼는 생식능력이 떨어집니다. 대부분은 생식능력을 가지지 못합니다.

심지어 '속屬, Genus'이 다른 아프리카코끼리와 아시아코끼리 사이에서도 교배가 성공한 경우가 있습니다. 이 새끼코끼리는 결국 각종 장기의 부전과 면역체계 이상으로 짧은 생을 마쳤습니다만.

이런 것으로 볼때, 종분화는 '같은종/다른종'의 이분법 - 디지탈식 구분이 아니라 '같은종-가까운종-먼종-아주먼종-다른종'의 아날로그식으로 구분되는 것 같습니다.
종분화가 생긴 초기에는 별 문제없이 둘 사이에 교배가 가능하지만(늑대-개) 둘 사이가 멀어질수록 교배는 점점 힘들어지며(호랑이-사자) 더 멀어지면 성공해도 결함있는 2세가 태어나고(코끼리) 마침내는 짝짓기 자체가 불가능해지는 식으로 말입니다.

이런 식으로 생각한다면 위에 퍼온 질문글도 설명이 가능해집니다.

A1과 A1이 짝짓기한다면 성공률도 높고 이상없는 2세가 태어납니다.
A1과 A2가 짝짓기한다면 성공률이 약간 떨어지고 이상없는 2세가 태어납니다.
A1과 A3이 짝짓기한다면 성공률이 더 떨어지고 결함을 가진2세가 태어날 가능성도 생깁니다.
.......
A1과 A9가 짝짓기한다면 성공률도 낮고 결함있는 2세가 태어나기 쉽습니다.
A1과 A10이 짝짓기한다면 성공률도 매우 낮습니다.
A1과 B가 짝짓기한다면 성공률도 거의 없고 성공해도 심각한 결함을 가지고 태어납니다.

물론 A10과 B는 큰 문제 없이 짝짓기가 가능합니다.

즉 A1과 B 사이의 종의 경계는 정확히 나뉘어지는 것이 아니라 점점 멀어진다는 것이 더 정확하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