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론 이야기 - 창조과학자


이런 식으로 생각하는 창조론자들이 많더군요(사실 의외는 아닙니다. 이 말이 잘못이라는 것을 알 정도면 창조론에 빠지지 않았겠죠).

창조론자들은 흔히 역사상 위대한 창조과학자들을 이야기하곤 합니다. 지질학의 창시자 니콜라스 스테노(1638~1686)의 젊은지구론이라든가 독실한 기독교인이었던
아이작 뉴턴
(1642-1727)의 신앙을 이야기하며, 창조론이 진리임을 강조하곤 하죠. 한가지 자그마한 문제가 있긴 합니다만 그들의 눈에는 전혀 들어오지 않습니다(저들의 탄생연대를 주목해 주세요).


저들이 활동하던 17세기는 1000년간 진행되던 암흑시대에 뒤이은 르네상스가 끝난 시기였습니다. 윗분 말대로라면 그 시기는 창조론이라는 컵 하나만 있고, 모두가 그 안에 주사위가 들어 있으리라 믿고 있었던 시대가 겨우 끝나고 인본주의사상이 자라기 시작하는 시대였습니다. 당연히 그 때의 모든 과학자들은 창조과학자일 수밖에 없었죠.

다만 그 당시 창조과학자들이 지금의 창조과학자들과 다른 점은, 정말로 그 컵 안에 주사위가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컵을 흔들어봤다는 점입니다. 르네상스부터 싹트고 자라온 인본주의사상에 의해 '신성불가침의 창조' 대신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있는 창조'를 연구하게 된 것이죠. 니콜라스 스테노는 노아의 홍수가 진리라는 믿음으로 끝나지 않고 실제로 노아의 홍수의 증거를 찾기 위해 지질학을 연구했습니다.
문제는 그렇게 컵을 흔들어 봤더니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는다는 - 노아의 홍수의 증거가 없더라는 - 결론이 났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의 과학자들은 새로운 (진화론이라는 이름의) 컵을 찾아내서는 그 안에 주사위가 들어 있는지 흔들어보고 있는 중이죠.

위의 창조론자들 말대로 진화론이라는 컵에 주사위가 없다고 해서 창조론이라는 컵에 주사위가 있다고 믿어야 할까요?
이미 창조론이라는 컵은 비어있다는 것이 확인되었습니다. 만약 진화론이라는 컵도 비어있다는 것이 증명된다고 해서 창조론으로 돌아갈 수는 없습니다. 다시 (창조론도 진화론도 아닌) 새로운 컵을 하나 찾아내서 그 안에 주사위가 있는지 확인할 것입니다(그리고 창조론자들은 제 3의 컵도 비어있다고 주장하면서 여전히 창조론이라는 컵을 부여잡고 있겠죠).


X-ray 사진을 찍었더니 창조론이라는 컵 안에 주사위가 보이더라, 그런데 테이프로 컵 안에 고정되어 있기에 지금까지 소리가 나지 않았더라
라는 것이 밝혀진다면 다시 창조론이 받아들여질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16세기의 창조과학자들과는 달리 현대의 창조과학자들은 창조론이라는 컵에 손을 대려고 하지 않습니다. 정말로 X-ray 사진을 찍었다가 컵이 비어있다는 결과가 나올까봐 두려운 것이죠. 그때문에 과학자가 아닌 일반인들만을 상대로, 창조론 증명이 아닌 진화론 부정에만 매달릴 뿐입니다.


니콜라스 스테노 같은 당시의 창조과학자들 덕분에 '창조의 증거가 없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새로운 이론(진화론)을 찾게 되었다는 점에서 그 당시의 창조과학자들은 위대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미 비어있다는 것이 증명된 창조론에 아직까지 매달리는 현대의 창조과학자들과는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 말입니다[참조].


댓글 10개:

  1. rid

    휴우... 겨우 정주행을 마쳤습니다. 수많은 좋은 글들 써주신 데 감사하다는 마음을 전하고 싶어서요~

    근데 뭐랄까요, 액X 블로그까지 따라가서 더욱 많은 글을 읽고서 느낀 점이, 창조론자들의 입을 다물게 한다는 건 그냥 한마디로 불가능하다고 생각되더군요. 그분들은 핍박받는 데서 종교적 희열이라도 느끼는 게 아닐까 싶어요. 하긴 특정 종교의 영향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어도 우리나라 (그리고 미국도) 사람들이 좀 '개천용'을 워낙 좋아하는 경향은 있는 것 같습니다. 휴거가 온다면 그런 분들은 정말로 행복해하시겠죠 아마. 온다면.

    뼛속깊은 문돌이라 이제 이런 쪽의 입문(?)에나 겨우 발을 걸칠까 말까 한 수준인데다 따라잡기조차 영영 힘들 것 같지만, 그래도 덕분에 정말 많은 걸 배우고 갑니다. 종종 들를께요 건필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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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rid님, 들러주셔서 감사합니다.

      [왜 사람들은 이상한 것을 믿는가] 란 책을 보면 이러한 말이 나옵니다. 중세시대 '천동설 vs 지동설'의 논쟁에서 지동설의 승리로 끝난 것은, 천동설을 믿던 사람들이 지동설로 전향(?)을 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새로운 학생들이 천동설보다 더 많은 증거가 있는 지동설 쪽으로 유입되었기에 천동설은 그야말로 '말라죽은' 것이라고 말입니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창조론자들의 입을 막을 수는 없다고 봅니다. 다만 그보다 더 큰 소리(?)로 학생들의 창조론 유입을 막고 싶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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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파랑돌/ 직접 행동했느냐의 여부에 관계없이, 어쨌거나 둘 다 굳센 신앙인이라는 사실은 변함없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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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예, 굳센 신앙인이자 진정한 과학자였죠.
      지금의 창조과학자들은 굳센 신앙인인지는 모르지만 진정한 과학자는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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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보름달씨의 블로그에서 보름달씨는 창조론이 과학발전에 더 기여할수있다고 주장하던데 정말 그럴수있는건지 궁금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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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중세 유럽을 생각해 보세요. 그때야말로 창조론이 득세하던 시절이었습니다.
      그 당시 과학이 얼마나 발전했을까요? 우리는 그때를 '암흑시대'라 부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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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지금 우리는 다시 암흑시대로 들어가려하고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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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암흑시대가 그렇게 좋으면 자기들만 가면 되는데 다른 사람들까지 끌고가려고 해서 문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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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약간 딴지를 걸자면 17세기는 암흑시대가 막 끝나고 겨우 르네상스가 시작되던 시대가 아니라 르네상스가 끝나고도 한참뒤인 시대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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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그러네요.. 찾아보니 르네상스는 14~16세기 사이를 말하는군요. 지적 감사드리고, 본문 수정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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