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생충이라고 하면 대부분 회충이나 촌충 등만을 떠올리는 사람이 많습니다. 물론 이들도 기생충에 틀림없지만, 진화론에서 기생충이라면 더 넓은 범위, 즉 숙주의 자원을 빼앗아 살아가는 모든 생물을 통칭합니다. 그에 따르면 회충이나 촌충뿐 아니라 숙주에 감염해서 살아가는 박테리아나 바이러스, 벼룩, 이, 빈대 같은 생물들 역시 기생충으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가장 성공적인 기생충은 무엇일까요? 가장 강한 기생충이 가장 성공적인 기생충일까요?
에볼라바이러스(Ebola Virus)를 생각해 봅시다. 더스틴호프만 주연의 '아웃브레이크'에서 한국 선박이 미국에 퍼뜨린 바이러스죠.
아시다시피 바이러스는 숙주에 감염되면 그 숙주세포의 복제장치를 사용하여 자기 자신을 복제합니다. 그 이후 그 세포를 파괴하고 나가 다른 세포에 감염되는 형태로 숙주의 몸 전체로 퍼져나갑니다. 에볼라바이러스는 그중에서도 치사율 90%에 가까운 강한(독한?) 바이러스라 할 수 있습니다. 인간에게 감염되면 불과 며칠만에 발병하여 숙주의 모든 세포가 에볼라바이러스공장으로 바뀝니다.
이 에볼라바이러스에 감염된 숙주(사람)는 며칠만에 죽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그 숙주에 기생하고 있던 에볼라바이러스 역시 전멸을 피할 수 없게 됩니다. 이 에볼라바이러스의 강력함이 오히려 독으로 작용한 것이죠.
이번에는 모낭충(Demodex folliculorum)을 살펴봅시다. 사람의 피부, 특히 모낭에 기생해 살면서 세포에 구멍을 뚫고 세포액을 빨아먹고 사는 기생충입니다. 거의 모든 사람에게 기생해 살고 있지만 보통 사람들은 모낭충에 감염된 줄조차 모르고 일생을 보내죠. 보이지도 않고 통증도 없고, 지나치게 번식했을 때 여드름 등 약간의 문제가 생긴다는 것 이외에는 거의 증상이 없으니 말입니다.
숙주(사람)에 기생한 모낭충은 그 숙주에게 특별한 사고가 없는 한 80년동안(수명이 며칠밖에 안되는 모낭충에게는 상당한 시간입니다) 태평성대(?)를 누릴 수 있습니다.(물론 이들도 지나치게 번식해서 숙주에게 피부질환을 일으키게 되면 외부에서 투입되는 약물에 의해 고난의 세월을 겪기도 합니다.)
어떻습니까? 숙주를 죽일 정도로 강한 에볼라바이러스는 아프리카에서도 일부 지역을 벗어나지 못하는 반면 숙주에게 거의 해를 끼치지 않는 모낭충은 사람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지 퍼져 있습니다. 인정사정없이 숙주에게서 자원을 빼앗아 죽음에 이르게 하고 결국 자신들마저 멸망하는 에볼라바이러스보다는 숙주에게 거의 피해를 주지 않고 같이 사는 모낭충이 더 '성공적인 기생생활'을 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창조론자들은 늘 진화론이 피도 눈물도 없는 생존경쟁을 가르친다고 비난합니다만, '사람이 왜 돕고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설명은 이런 식으로 진화론적으로도 가능합니다.
지구와 인간의 관계는 어떨까요? 인간이 지구에 의존해서 살고 있다는 사실을 보면 지구를 숙주, 인간들을 기생충(?)이라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인간들은 정신없이 숙주를 착취하다가 숙주의 생명과 함께 끝나는 에볼라바이러스일까요, 아니면 숙주에 피해를 주지 않고 숙주가 천명을 다할 때까지 함께 사는 모낭충일까요?
한가지 더, 겨우살이(Viscum album var. coloratum)는 다른 나무에 기생하는 나무입니다. 이 씨앗은 땅에 뿌리를 내리는 것이 아니라 숙주(다른 나무)에 뿌리를 박고 숙주가 뿌리로 흡수한 물과 유기물을 빨아먹습니다.
그러나 겨우살이는 엽록소를 가지고 있으며 자신이 광합성을 할 수 있습니다. 숙주로부터 흡수한 유기물로 광합성을 한 후 만들어진 당분의 일부를 숙주에게 돌려주기도 합니다. 이 경우에는 기생충이면서도 숙주에게 도움을 주는, 공생관계에 가까와진 상태입니다.
이렇게 하여 겨우살이는 기생자이면서도 숙주와 함께 서로 도우며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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