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과 같이 높은 낭떠러지 위에 토끼 한마리가 올라가 있습니다. 토끼는 올라갈 수 없는 높이의 낭떠러지였죠.
그것을 보고 ㉩이란 사람은 말합니다.
"저 높은 낭떠러지 위를 토끼가 올라갈 수 있겠는가? 틀림없이 누군가가 토끼를 올려준 것이다"
그리고 이 답에 만족하고, 그는 더이상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반면 ㉨이란 사람은 낭떠러지 주위를 찾아보고는, 낭떠러지 뒤쪽으로 완만한 오르막길이 있음을 발견합니다.
"아, 여기 오르막길이 있네, 토끼는 이 오르막길로 올라갈 수도 있겠는걸?"
그 말을 들은 ㉩은 주로 다음과 같이 반박합니다.
"그렇다면 토끼가 그 오르막길로 올라갔다는 증거는 찾았냐? 그 길에서 토끼 발자국이라도 봤어? 그런 것 없으면 토끼가 그 길로 올라갔다는 것은 네 생각일 뿐이야."
과연 그럴까요?
㉩의 주장은 말하자면 토끼는 스스로의 힘으로 절벽 위로 올라갈 수 없다입니다. 이 주장을 반론하기 위해서는 토끼가 스스로의 힘으로 절벽을 올라갈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는 것으로 충분하죠. 정말로 그 방법으로 올라갔는지까지 증명할 필요는 없습니다.
이를테면 진화론 이야기 - 절반의 눈에서도 마찬가지죠. 눈의 진화는 불가능하다는 주장에 대해 눈의 진화가 가능한 방법을 제시했습니다. 저들의 반응요?
다시 말하지만, 이 경우에는 그렇게 변하였다는 근거는 필요 없습니다. 저런 방법이 있다는 것 자체가 눈의 진화는 불가능하다는 주장의 반론으로 충분하거든요.
아무튼 창조론자들의 주장은 거의 대부분이 저런 진화는 불가능하다로 끝납니다.
이를테면 갯민숭달팽이(nudibranch) 같은 경우가 있습니다.
얘네들의 방어전략은 독특합니다. 히드라 같은 자포동물을 먹고 사는데, 히드라는 자포(刺胞, cnidocyte)라는 무기를 가지고 있죠. 용수철 모양으로 말려있다가 적에 접촉하면 튕겨나가 독을 주입하는 세포입니다.
하지만 갯민숭달팽이는 이 자포에 아무런 해를 입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자포를 흡수해서 등에 배치해서 자신의 무기로 만들어버리죠.
갯민숭달팽이가 진화하려면 자포를 자극하지 않으면서 그 자포를 등에 나 있는 촉수 끝으로 이동시키는 과정이 필요한데 이런 진화가 어떻게 가능할 수 있겠느냐?
이것이 전형적인 창조론자들의 주장입니다. 창조론이 야훼가 다했다로 끝나는 것처럼 진화론도 진화가 다했다 정도로 이해하기에 저런 진화가 한순간에 이루어졌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죠.
이런 주장을 반박하려면 위에서처럼 오르막을 오르는 방법을 찾아내면 됩니다. 즉 다음과 같은 완만한 오르막을 찾아내면 되는 것입니다.
1. 최초의 갯민숭달팽이는 자포에 닿으면 공격을 받는 그런 달팽이였을 겁니다. 히드라를 잡더라도 자포가 없는 부분만 먹어야 했었죠.
2. 자포를 자극하지 않는 특별한 물질을 분비하는 돌연변이가 생깁니다. 이 녀석은 자포가 있는 부분도 맘대로 먹을 수 있습니다. 기존 달팽이보다 더 많은 먹이를 먹고 진화적 우위를 차지할 수 있습니다.
3. 먹은 자포를 배설하지 않고 몸에 보관하는 변이체가 생깁니다. 포식자가 이 달팽이를 먹게 되면 몸에 있는 자포에 의해 피해를 입고 이 달팽이를 기피하게 됩니다. 이것으로 더 높은 진화적 우위를 차지할 수 있습니다.
4. 자포를 그냥 몸에 보관하는 것이 아니라 등으로 옮기는 변이체가 생깁니다. 이렇게 되면 포식자가 달팽이를 잡아먹으려 하면 자포에 의해 피해를 입게 됩니다.
5. 등에 자포가 보관된 부분의 세포분열이 활성화되는 변이체가 생깁니다. 즉 자포가 있는 부분에 촉수가 자라나 좀더 쉽게 자포가 발사됩니다.
물론 갯민숭달팽이가 저런 식으로 진화했다는 증거는 없습니다. 하지만 위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여기서 말하는 것은 갯민숭달팽이는 저렇게 진화했다가 아닙니다. 갯민숭달팽이는 진화할 수 없다는 주장에 대한 반론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