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름과 틀림



다름과 틀림은 다릅니다. 이 간단한 사실을 모르는 사람들 - 자신과 다르면 틀린 것으로 간주해 버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 때문에 이런 공익광고까지 나오는 것이고 말입니다. '다름'이 '틀림'이 될 수는 없는 것이죠.

하지만 같은 이유로 해서 '틀림' 역시 '다름'이 될 수는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끔씩은 '틀림'을 '다름'으로 위장해서 주장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삼각형 세 각의 합은 180˚이다

이 명제는 어떨까요? 이미 2000여년전 그리스 유클리드에 의해 참임이 밝혀져 있습니다.

그렇다면 다음 명제

삼각형 세 각의 합은 180˚가 아니다

이것은 '다른 명제'일까요, '틀린 명제'일까요?

최소한 18세기까지 이 명제는 '틀린 명제'였습니다. 그때는 유클리드기하학만이 '수학적인 진리'로 통용되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유클리드기하학의 5개 공준들 중 치명적인 공준이 하나 있었습니다. 바로 마지막 제 5공준, 평행선의 공준이었죠. 이것은 사실 너무 장황하기에 수학적으로 증명을 해야 하는 명제입니다. 하지만 유클리드는 물론, 그 이후 2000년간 수많은 수학자들이 저 공준의 증명에 실패했습니다. 그 때문에 '어쩔수 없이' 기하학에서의 공준(postulate) - 약속으로 정의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18세기에 들어, 수학자들중 일부가 엉뚱한 생각을 하게 됩니다.

만약 두 직선이 내각들의 합이 큰 쪽에서도 만날 수 있다면 어떨까?
만약 두 직선이 내각들의 합이 작은 쪽에서도 만나지 않는다면 어떨까?

그리고 이런 경우에도 아무런 모순이 없는 기하학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 밝혀지고, 결국에는 비유클리드 기하학이 태어나게 됩니다. 그리고 이런 비유클리드 기하학에서는 삼각형 세 각의 합은 180˚라고 할 수 없다는 것이 밝혀지죠.
즉,

삼각형 세 각의 합은 180˚이다 : 이것은 유클리드 평면에 있어서 참입니다.
삼각형 세 각의 합은 180˚가 아니다 : 이것은 비유클리드 평면에 있어서 참입니다.

즉 이 두 명제는 관점에 따라서 참이 될 수도 거짓이 될 수도 있는 '다른 명제'일 뿐 둘 다 참입니다.

이런 문제는 정치나 사회적 이슈 같은 부분에서 극명하게 나타납니다.

사드(THAAD)를 설치해야 한다 : 군사적 관점에서 본다면 참입니다.
사드(THAAD)를 설치하면 안된다 : 경제적 관점에서 본다면 참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문제는 여러 관점에서 판단하고, 단점을 줄이는 방향(설치시 경제문제는 어떻게 해결할지, 반대시 군사문제는 어떻게 해야 할지)으로 해결해야지, [사드 설치하면 매국노]/[사드 반대하면 빨갱이] 식으로 주장만 해서는 안되는 일입니다.


다행히 이 블로그 주제인 수학/과학에서는 이런 문제가 덜한 편이죠.


유클리드 기하학에서 삼각형 세 각의 합이 270˚라는 사실을 베른하르트 리만(Bernhard Riemann)이 증명했다.

이 명제는 어떨까요? 관점의 차이에 의한 '다른 의견'일까요?


첫째, 여기서는 이미 이 명제의 관점을 '유클리드 기하학'이라고 명확하게 정의했습니다. 이렇게 명확하게 정의된 이상 이 명제를 다른 관점으로 볼 수 없습니다.
둘째, 구면기하학이라고 해도 삼각형 세 각의 합이 270˚라고 할 수도 없습니다. 위,경도가 (0, 0), (0, 90), (90, 90)인 점으로 만들 수 있는 삼각형만이 270˚일 뿐입니다.
셋째, 베른하르트 리만 이전에도 비유클리드 기하학을 시작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지오반니 사케리(Giovanni Saccheri, 이탈리아), J 볼랴이(Johann Bolyai, 헝가리 Bolyai János), 수학천재인 가우스(Carl Friedrich Gauss, 독일 Carl Friedrich Gauß) 등에 의해 여러 증명이 이루어지다가, 가우스의 제자인 리만에 의해 체계화된 것입니다.

즉 이 명제는 관점에 따라 참이 될 수 있는 '다른 명제'가 아니라 시작부터 '틀린 명제'가 됩니다.

하지만, 유클리드기하학이 뭔지 비유클리드기하학이 뭔지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아, 삼각형 세 내각의 합이 180˚가 아니라 270˚구나, 리만이라는 유명한 사람이 증명했다니 맞는 말이겠지'라 설득당할 수도 있겠죠.



이런 일은 창조과학 같은 사이비에서 흔히 볼 수 있습니다.

지구나이 6000년이다 : 기독교적인 관점에서는 '다른 의견'일 수 있습니다.
과학적 관점에서 지구나이 6000년이다 : 관점을 따질 것 없이 '틀린 의견'이죠.

즉, 창조론을 '다른 의견'으로 만들고 싶으면, 교회 안에서만 주장하면 됩니다. 과학 영역으로 밀어넣고 '다른 의견으로 받아들여달라'는 말은 헛소리에 불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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