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론 이야기 - 과학과 도덕

옛날부터 종교는 도덕성에 많이 관련되어 있습니다. 거짓말하지 말라는 말은 성경의 십계명에도 들어가 있으며 불교의 팔계(八戒)에도 들어가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거짓말을 하면 귀신이 혀를 뽑아간다거나 하는 식의 민간속설도 있습니다.

과연 종교와 도덕성은 원래부터 그렇게 관련이 있는 것일까요?

제 개인적인 생각입니다만, 진화론적으로 생각해 본다면 어떨까요?

㉠이라는 부족국가에는 '거짓말을 하면 신이 노해 마을에 벼락이 떨어진다'라는 속설이 있습니다. 만약 누군가가 거짓말을 한 것이 들통난다면 신의 노여움을 피하기 위해 거짓말한 사람의 혀를 뽑아 제물로 바칩니다.
인접한 ㉡이라는 부족국가에는 너무나 자비로운 신이 있습니다. 거짓말을 해도, 남의 물건을 훔쳐도, 사람들 앞에서 크게 세번을 웃으면 다른 사람들도 같이 세번을 웃어야 하며, 그것으로 모든 잘못은 씻기게 됩니다.

이렇다면 ㉡쪽이 아무래도 ㉠쪽보다 거짓말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고 그만큼 사회적 비용도 클 것입니다. 그 때문에 ㉡쪽보다는 ㉠쪽이 더욱 강대해질 것이고 결국 ㉠은 ㉡을 병합해 버릴 수도 있습니다. ㉠은 부족국가에서 도시국가와 왕국을 거쳐 제국으로 발전해 가며, 그 설화는 '거짓말하면 혀를 뽑아라'라는 교리를 가진 종교로 발전하게 됩니다.

즉 종교와 도덕이 처음부터 관련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도덕적인 종교(를 가지고 있는 사회)만이 살아남아 지금까지 전해내려오고 있는 것이죠(앞에서도 말했다시피 제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종교와 도덕이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고 생각하는 종교인들은 간혹 이렇게 주장하곤 합니다. 종교가 무너지면 도덕도 무너진다고 말이죠. 그 때문에 '신의 창조를 부정함으로써 종교를 쓰러뜨리고 도덕도 붕괴시키려는 진화론'에 반감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옛날 아는 지식이 많지 않았던 과거에는 충분히 종교로서 도덕을 강요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수많은 지식이 쌓여있는 현재에는 그것이 불가능하게 되었습니다,
위의 '거짓말하면 혀를 뽑는 종교' 이야기를 조금 더 해 보죠. 현대인들은 벼락에 대해 잘 알게 되었습니다. 신이 노해서가 아니라 구름에 충전된 전하의 방전현상이라고 말이죠. 그와 함께 번개를 피할 수 있는 피뢰침까지 만들어졌습니다.
어떻게 될까요? 신의 분노라는, 거짓말을 제어할 수 있는 고삐가 풀린 셈입니다. 오히려 더 거짓말이 많아지고 사회의 혼란이 심해지지 않을까요?

이런 현상을 막기 위해서는 두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첫번째는 '벼락에 대한 연구를 막는 방법'이 있습니다. 벼락에 대해 알 수 없으면 거짓말에 계속 고삐를 채울 수 있을 테니까요.
창조론자들을 포함하는 종교근본주의자들이 주장하는 해결책이 이것입니다. 도덕성에 대한 종교의 영향력을 유지하기 위해(정확히 말하자면 사회에 대한 종교의 영향력을 유지하기 위해) 진화론을 제거하자는 주장이죠. 하지만 이것은 더이상 발전하지 말자 - 그냥 여기 주저앉자는 주장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두번째는 '종교에서 왜 거짓말을 하지 말라고 했을까' 또는 '거짓말을 권장하는 종교는 왜 없을까'를 연구하는 방법입니다. 즉 거짓말을 하면 개인적, 사회적으로 어떤 손해가 생기는지를 연구해서 사람들에게 알려주면 자연히 거짓말이 없어지겠죠.


협력의 진화
창조론자들의 주장과는 달리 진화론이 도덕성을 망가뜨린다는 증거는 없습니다. 오히려 진화론적으로도 도덕을 지키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증거가 많이 있죠. 가장 대표적인 것이 로버트 액셀로드의 '협력의 진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히려 '과학적인 도덕'은 '종교적인 도덕'에 비해 왜곡될 가능성이 매우 작습니다. 기독교든 불교든 '종교적인 도덕'은 지난 수천년을 지나는 동안 왜곡된 경우가 많았죠.
'사탕수수 농장주에게 종교를 전파시켜서 그 농장의 노예를 해방할 수 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역사상으로 그렇게 해서 노예가 해방된 경우보다 다음과 같은 결과가 훨씬 많이 나왔습니다.
1. 농장주는 농장의 노예들에게 그 종교를 전파해서 한층 더 착취할 수 있다 - 주인 말을 잘 듣는 것이 신의 뜻이므로 주인에게 복종하면 나중에 천국에 갈 수 있다
2. 농장주는 종교의 사제들에게 착취당한다 - 사제 말을 잘 듣는 것이 신의 뜻이므로 사제에게 복종하면 나중에 천국에 갈 수 있다

참고로 액셀로드의 '진화론적 도덕관(?)'은 '상대를 착취하지 말고, 상대에게 착취당하지도 말라'는 것입니다.

댓글 2개:

  1. 이 얘기를 보니 베르베르의 상상력 사전이 생각나네요. 이걸 과거에 읽을 때는 진짜 실험이라고 생각했는데 이게 또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상상력 사전(원래는 그의 유명한 소설 개미에 자주 나오던 '절대적이며 상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이었죠)이므로 진짜 동물 실험이 아니라 그가 자신의 경험과 상상력으로 적은 우화가 아닐까 싶기도 하네요. 하여튼, 거기에 이런 얘기가 나오죠. (이게 유명한 일화인데 http://manwon.tistory.com/290 가면 소개가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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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낭시 대학 행동 생물학 연구소에 실험을 했습니다. 쥐 여섯마리를 하나의 우리에 가두었습니다. 먹이를 나눠주는 사료통은 우리 가운데의 수영장을 헤엄쳐 건너 가야지만 도착할 수 있습니다. 여섯마리의 쥐들 모두 밥 때가 되었을 때 사료통을 향해서 헤엄쳐 나갔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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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고 결과가 이어지는데요. 간단히 결과만 쓰자면, 2마리의 피착취자, 2마리의 착취자, 1마리의 독립자, 1마리의 천덕꾸러기죠.
    현재의 인간 사회에서 액셀로드식의 도덕관은 관철이 매우 어렵다고 보여지네요. 돈이 현실 세상의 신인 상황에서 액셀로드식의 독립자(착취도 안하고 착취 당하지도 않는)가 되기는 착취자가 되기만큼이나 어렵고 절대다수는 피착취자가 되니까요. 피착취자중의 한명의 푸념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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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아, 그 이야기 저도 알고 있습니다.

      그 실험과 관련해서라면, 종교적인 시각에서 가장 바람직한 인간상은 2명의 피착취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선행을 하면 (열심히 귀족에게 갖다 바치면) 나중에 천국에 가든지 다음생에 귀족으로 환생하든지 할 테니까요.
      그에 반해 진화론적 시각에서 가장 바람직한 인간상은 1명의 독립적인 인간이겠죠.

      만약 종교적인 사회에서라면 1명의 독립자는 불신자 내지는 이교도로서 핍박을 받는 일이 많았을 겁니다. 그들을 피착취자로 만들기 위해서 말이죠. 그것만으로도 종교적 도덕관은 왜곡되기 쉽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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