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론 이야기 - 바이러스 진화설

항생제는 박테리아를 잡기 위해 사용하는 약품입니다. 그런데 항생제가 오남용될 경우, 박테리아들은 그 항생제에 대한 저항성을 가지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데 가끔씩 그 항생제를 접해본 적이 없는 박테리아들조차 항생제에 대한 내성을 가지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러한 것을 '유전자의 수평이동'이라 합니다. 그리고 유전자가 수평이동하는 원인은 바이러스, 특히 레트로바이러스(retrovirus) 때문인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세포는 DNA를 가지고 있지만 실제로 단백질을 만드는 것은 RNA입니다. 그러므로 세포가 단백질을 만들 때는 자신의 DNA로부터 RNA를 전사(transcription)한 후 RNA로 단백질을 만들게 됩니다. 바이러스들은 RNA를 가지고 있으므로 직접 단백질을 만들 수 있죠.
하지만 레트로바이러스들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RNA를 DNA로 역전사하는 효소(reverse transcriptase)를 가지고 있을 뿐 아니라, 이렇게 만들어진 DNA는 핵 속으로 들어가 숙주의 DNA 속에 자리잡을 수 있습니다. 이후로 이 세포는 새로운 DNA의 명령에 의해 바이러스의 RNA와 바이러스 외피를 생산하고 만들어진 바이러스들이 세포 밖으로 나가게 됩니다.

하지만 문제는 바이러스의 복제과정이 이렇게 깔끔하게 끝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레트로바이러스에 감염되어 DNA가 훼손되었지만 더이상의 바이러스생산이 계속되지 않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바이러스 복제 중에 숙주 DNA의 부분까지 같이 끼어들어가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그러므로, 바이러스가 복제될때 항생제에 대한 저항성을 주는 부분까지 끼어들어가 복제된 후, 이 바이러스가 다른 박테리아에 감염된다면, 새로운 박테리아는 자신이 접해본 적이 없는 항생제에 대한 내성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바이러스 진화설이란 이러한 과정이 진화의 한 축을 이루게 된 것이 아닐까 하는 연구입니다. 비단 이러한 '유전자의 수평이동'이 박테리아들 사이에서만 일어날 필요는 없기 때문이죠. 이를테면

- 어느 참새가 레트로바이러스에 감염되었습니다. 이 바이러스에서 역전사된 DNA는 깃털을 만드는 유전자 바로 옆에 자리잡았습니다.
- 이 바이러스가 복제되는 도중 깃털을 만드는 유전자까지 딸려서 복제되었습니다. 결국 깃털을 만드는 유전자를 가진 바이러스들이 퍼져나갔습니다.
- 새로운 바이러스는 수정란 상태의 송어에 감염되었습니다. 수정란은 깃털을 만드는 유전자를 가진 채 성체 송어로 자라났습니다.

이와 같은 방법으로 깃털 유전자를 가진 송어*가 만들어질 수 있는 것입니다. 만약 이 깃털유전자가 송어에게서 발현된다면 깃털을 가진 송어가 나타날 테고, 만약 이 깃털에 의해 적응성이 늘어난다면 '깃털을 가진 송어'라는 새로운 종으로의 '진화'가 일어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비록 위와 같이 바이러스에 의해 쓸만한 유전자가 전달되지 않는다고 해도 숙주의 DNA를 훼손하는 레트로바이러스의 특성상 숙주에게 유전적인 '질병'이 발생할 가능성도 있죠. 기린의 긴 목이 바이러스에 의한 '유전병'일 것이라는 설도 나오고 있습니다**.

물론 위에서 제가 '바이러스 진화설'이라고 쓴 것처럼 이것은 아직 '가설'에 불과합니다. 아직까지 연구해야 할 과제가 많이 남아 있죠. 이 바이러스 진화설이 '바이러스 진화론'이란 정설이 될지, 아니면 폐기될지는 아직 알 수 없습니다.

*제가 '깃털유전자를 가진 송어'에 대해 처음 접한 것은 꽤 오래전 리더스 다이제스트(Readers Digest)라는 잡지에서였습니다. 송어 유전자를 분석하는 과정에서 조류들만이 가지고 있는 깃털유전자가 발견되었다는 기사였습니다. 다만 쓰이지 않는 곳에 위치하고 있었기에 발현되지 않고 있었답니다.
당시에는 제가 진화론에 대한 흥미가 없었기에, 단순히 '깃털유전자를 가진 물고기'라는 기억만 남아 있는데, 지금은 그 자료를 찾을 수가 없군요.

** 기린의 긴 목이 바이러스에 의해 유전자가 훼손된 결과라는 설에 대해서는 개인적으로 약간의 의문을 가지고 있습니다. 기린의 긴 목을 가지기 위해서 필요한 장치가 많기 때문이죠. 먼저 머리 끝까지 피를 밀어올릴 수 있는 강력한 심장, 그 혈압을 견딜 수 있는 동맥, 그리고 머리를 숙였을때 피가 두뇌로 한꺼번에 몰리지 않도록 하는 그물망(괴망) 등등... 만약 기린의 목이 바이러스 때문이라면 이러한 장치들에 대해서도 설명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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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개:

  1. 여태껏 창조론자들의 오류를 지적하시던 분이 그들과 같은 오류를 저지르시다니요! 바이러스에 의해 처음부터 그렇게 완벽한 장치들이 짠 하고 발생했다고 생각하시는 것이 문제입니다. 불완전하고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도 최초로 바이러스에 의해 그런 장치들의 원형이라고 할만한 것이 삽입되었다면 그다음부터 자연선택을 통해 더 잘 작동하도록 진화되는게 순서 아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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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우선 제 글에 관심을 가져주셔서 고맙습니다.

    바이러스진화설에 대해 '대강' 설명한 것이 그런 오해를 낳은 것 같습니다.
    바이러스 진화설에 의한다면(물론 바이러스진화설이 완전하게 확립되지는 않았습니다만) 완벽한 장치가 그대로 옮겨지는 것이 불가능하지는 않습니다. 위에서 말한 박테리아간의 항생제 저항성 문제는 '완벽한 장치의 이동'이라고 할 수 있으니까요.
    ' 박테리아보다 훨씬 복잡한 다세포생물의 경우에도 그와 같은 완벽한 장치의 이동이 가능한가'는 아직까지 연구중이죠. 보기의 '깃털달린 송어' 역시 '이론상으로는 가능'하니까요(물론 연구 결과 '불가능'으로 결론날 수도 있습니다만).
    또한 '완전한 깃털'이 그대로 이동되었다고 해도, 송어에게 있어서 깃털은 쓸모없는 '불완전한 기관'입니다. 그것이 자연선택에 의해 송어에게 쓸모있는 '완전한 기관'이 되는 것 역시 진화론적 설명이 되겠죠.

    이 글의 요지는 '바이러스에 의해 유전자가 수평이동을 할 수 있다'와 '(아직 확실치는 않지만) 이러한 유전자의 수평이동이 진화의 원동력이 될 수 있다' 정도로 이해해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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