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론 이야기 - 멸종해도 좋은 생물?

주라기공원에 나오는 인물들 중 하나인 수학자 말콤은 소설 속에서 이런 말을 합니다. 무분별한 인류 때문에 파괴되어가는 지구를 걱정하는 사람들에게 말합니다.

"인간이 지구를 파괴한다구요? 그것이야말로 과대망상입니다. 지구는 이미 몇번이나 인류 이상가는 충격을 받아왔습니다. 그리고도 항상 그 충격에서 회복되어 왔죠. 인류는 지구를 파괴할 수 없습니다."

흔히들 '환경에 적응 못하고 전멸하는 동식물들까지 돌봐줄 필요는 없다. 그것이 진화론이라는 자연법칙이다'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습니다.

지금은 인간이 환경을 바꾸고 있지만, 지구환경이 바뀌어 대량멸종이 일어난 일은 인간이 유일한 경우는 아닙니다. 가장 유명한 것이 중생대의 공룡시대를 종식시키고 포유류의 시대를 연 칙쇼루브 운석충돌이었죠#. 물론 이 칙쇼루브의 충돌은 지구에서의 문제가 아니라 외계에서 온 것이긴 합니다만.

지구상에 살고 있는 생물에 의해 대멸종이 일어난 경우 역시 인간이 유일한 것도 아닙니다. 이를테면 남조류에 의한 대멸종이 있습니다.

초기 생명체가 탄생했을 때 대기는 산소가 거의 없는 환원성 대기였습니다. 자외선이 물을 분해해서 산소가 생기긴 했지만, 그 산소는 즉시로 주변에 있던 철이나 코발트 등 금속을 산화시키며 소모되었습니다. 당연히 당시의 생물들(박테리아)은 모두 혐기성 세균들이었습니다.

여기서 광합성을 할 수 있게 된 남조류들은 물과 이산화탄소로 탄수화물을 만들고 폐기물인 산소 - 생물의 세포막을 산화시켜 파괴하는 독가스를 뿜어내기 시작합니다. 마치 현대 공장이 스모그와 폐수를 함부로 쏟아내는 것처럼 말입니다.
게다가 스스로 유기물을 합성하는 방식이기에 다른 유기물을 찾아다녀야 하는 다른 박테리아들보다 훨씬 효율적으로 번식해 나가기 시작합니다. 결국 남조류의 수는 점점 많아지고 뿜어내는 산소도 점점 많아지고 산소농도는 점점 증가하게 되었죠.
결국 이 산소에 의해 대부분의 박테리아가 절멸하고 맙니다. 그리고 산소에 적응한 박테리아들만이 살아남고, 그들이 번식,진화해서 지금의 생태계가 만들어진 것이죠.

그보다 규모는 작지만 중생대에서도 그런 생태계의 변화가 있었습니다. 당시 식물계는 소철이나 은행나무 같은 겉씨식물이 대세였습니다.
그런데 이런 식물계에 위기가 닥쳐옵니다. 용각류라 불리는 거대한 공룡들이 식물을 닥치는대로 먹어치우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 속에서 주로 바람 등을 이용해서 수정하여 번식하는 겉씨식물들은 막다른 골목에 몰리게 됩니다.
하지만 그것은 곤충과의 공생을 시작한 속씨식물에게는 기회였죠. 곤충에 의해 쉽게 수정을 하고 쉽게 번식을 할 수 있는 속씨식물들이 급속하게 세력을 키우게 됩니다. 온통 녹색 천지였던 숲에 울긋불긋한 꽃이 보이게 된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볼때, 사실 인간에 의해 전멸하는 동식물을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저 위 수학자 말콤의 말처럼 인간이 지구를 파괴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어차피 인간에게 적응한 동식물들이 다시 지구를 채우게 될 테니까 말입니다.

그런데 과연 그런 변화가 인간에겐 어떻게 작용할까요?

다시한번 옛날로 돌아가, 산소가 없던 시대의 지구 모습을 상상해 봅시다.
자외선을 막아줄 오존층이 없기에 지상에는 바위와 모래밖에 없었습니다. 생물체들이 올라오기 전이라 '흙'이라고 할만한 것도 없었죠. 생물이 육지로 올라와 죽고, 그 사체가 분해되어 유기물이 모래에 섞이면서 '흙'이란 것이 생기기 시작했으니까 말입니다.
대기중에는 메탄, 에탄 같은 유기기체가 뿌연 안개를 이루고 있었으며, 산소가 없으므로 하늘은 푸른색이 아닌 불그스름한 모습이었고, 바다는 그야말로 부패한 묽은 스프같은 유기물 용액이었을 것입니다. 이곳에서 태어난 생명체들에게는 이런 모습이 '정겹고 친숙한' 풍경이었을 겁니다. 유기물이 떠다니는 바다에서는 바로 옆에 먹거리가 풍족하게 있었으니까요.

그런데 산소를 발생시키며 지구 환경은 완전히 달라집니다. 과량의 산소가 바다와 육지의 유기물을 산화시켜 바다와 대기가 맑아지고, 대기중의 산소에 의해 하늘은 푸른색으로 물듧니다. 오존층이 생겨 육지로 생물들이 올라와 지금과 비슷한 모습의 지구가 만들어진 것입니다.
이런 모습이 예전에 살던 생명체에게는 어떻게 보일까요? 맑아진 바다에서는 먹거리가 사라졌습니다. 게다가 '산소'라 불리는 암살자들이 계속 자기 몸을 산화시켜 파괴하려 노리고 있습니다. 마치 지옥과 같은 모습일 겁니다.

우리 인간에 의해 만들어지는 미래도 비슷할 것입니다. 지금처럼 공기와 물을 오염시켜 나간다면, 그 미래는 스모그 속에서 날아가는 새, 폐수 속에서 헤엄치는 물고기의 세상이 될 것입니다. 그런 환경이 그때의 생물들에게는 친숙한 환경이겠지만(마치 현재 환경이 인류에게 친숙하듯), 인류는 지옥과 같은 환경에서 살아야 할 것입니다. 마치 아직까지 살아남은 혐기성 세균들이 산소가 없는 곳만 찾아다니며 살아가는 것처럼 말입니다.

# 가장 유명한 것이 칙쇼루브의 충돌에 의한 중생대 대멸종이긴 합니다만, 이것이 가장 큰 대멸종은 아닙니다. 중생대의 대멸종은 생물종의 약 75%가 멸종했습니다.
가장 큰 대멸종은 페름기의 대멸종으로 이때는 95%의 생물종이 전멸했죠.

창조론 이야기 - 최적의 설계라는 망상

지적설계론은 지적설계자를 모욕하는 행위 - 기린의 후두신경에 대해 글을 쓴 적 있습니다. 이것은 '창조주의 실수'로서 상당히 많이 언급되는 모양입니다. 창조과학회에서 이에 대한 반론을 한 것을 발견했습니다.

창조과학회

'창조주 야훼'를 쉴드쳐주기 위해 애를 쓰고 있습니다만, 정말 제대로 쉴드를 치고 있는 것일까요? 만약 여러분들이 기린을 설계한다면 저렇게 설계할까요?
저라면 차라리 후두신경은 짧은 거리로 제대로 만들어 놓고, 별개의 신경을 만들어 저 작업을 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저 말은, 오히려 '대동맥을 돌아가는 후두신경에 저 기능을 붙여넣은 진화론적 결과'라고 할 수 있겠죠.
즉 이미 존재하는 '대동맥을 돌아가는 신경망'에 어떤 신호가 들어올때 가까이 있는 동맥관이 폐쇄되는 기능(돌연변이)이 진화론적 우위를 차지할 수 있기에 저런 구조가 만들어질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최적의 설계라기보다는 오히려 진화론적 땜방이 정확한 표현입니다.

지적설계론은 지적설계자를 모욕하는 행위 - 눈도 반론이 있더군요.

창조과학회
이것도 마찬가지죠. '색을 선명하게 한다'는 말은 있지만 '시력이 흐릿해지지 않는다'는 말은 없네요.
이것 역시 '시신경이 역전된 상태'에서 '보다 선명하게 색을 보는 땜방'이 일어난 결과로 진화론적 해석일 뿐 '최적의 설계'와는 전혀 관련이 없습니다.

이런 식으로 진화론에 어울릴 설명을 해놓고 나서. 이것이 '최적의 설계'라고 주장하는 것이 창조과학회의 수준입니다.

동조 현상과 Solomon Asch

'참솔'은 어떤 심리학 교수가 주최하는 심리학 실험 대상자로 참가했습니다. 그곳에는 이미 여러명의 참가자들이 대기하고 있었습니다.
잠시후 교수가 들어와서 말을 합니다.
"이번 실험은 인간의 지각에 대한 연구를 하기 위한 실험입니다. 일단 이 카드를 잘 봐 주십시오"
그 카드에는 오로지 하나의 막대만이 그려져 있었습니다.
잠시후 그는 카드를 치우고 다시 새로운 카드를 보여줍니다. 이 카드에는 세 개의 막대 ㉠, ㉡, ㉢이 그려져 있습니다.
"자, 이 막대들 중에서 아까 그 막대와 같은 길이의 막대는 어느 것일까요?




참솔은 한눈에 보더라도 ㉢임을 쉽게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다른 실험대상자의 생각은 다른 것 같네요.
"㉠입니다."
"㉠이 아까와 같습니다."
"척 봐도 ㉠이네요"
모든 사람들이 ㉠이라 답합니다. 드디어 마지막으로 '참솔'에게 묻습니다.
참솔은 ㉠이라 답할까요, ㉢이라 답할까요?


이것은 1950년대 하버드대 심리학자 솔로몬 애쉬(Solomon Asch)의 실험이었습니다. 사실 이 실험에서 실험대상자는 오로지 '참솔' 하나였습니다. 나머지 '실험대상자'는 모두 이 실험을 도와 일부러 오답을 말한 학생들입니다.


이 실험은 비디오로도 볼 수 있는데,
다른 사람들의 오답에 당황하는 실험대상자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자신의 생각대로 정답을 말한 사람은 불과 ¼에 불과했습니다. 나머지 ¾은 다른 사람들을 따라 ㉠을 답이라고 따라간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왜 이런 결과가 일어나는지 2000년대에 들어와 그래고리 번스(Gregory Berns)가 연구를 시작했습니다. 그는 이와 비슷한 실험을 하면서, 참가자들의 뇌를 MRI로 분석한 것이죠.

그 결과 소신대로 정답을 말하는 사람에게서는 공포와 불안을 관장하는 편도 영역이 활성화된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이런 사람들에게서는 소신을 말함으로써 무리에서 배척되지 않을까 하는 불안이 생긴다는 것이죠.

다른 한편으로는 다수에 따라 잘못된 대답을 할 경우, 시각을 통제하는 후두엽에서 왜곡이 일어난다는 사실을 알아냈습니다. 잘못 대답한 사람 눈에는 실제로 ㉠의 막대가 최초 막대와 같은 길이로 보인다는 것이죠(만약 의식적으로 거짓말을 하게 된다면 전두엽 쪽에서 신호가 보인다고 합니다).
이것은 말하자면, '㉡이라고 말했다간 내가 이상한 놈 취급을 받을 것 같으니 그냥 ㉠이라고 대답하자'가 아니라, '다시 보니까 ㉠쪽이 아까와 같아 보이네'가 된다는 것입니다. 즉 집단에 의해 인지 자체가 바뀌는 것이라 할 수 있죠.

이런 일은 단체생활을 하는 곳에서 흔히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학교에서 모두가 누군가를 왕따로 지목하면 내 눈에도 그녀석이 찌질한, 왕따당할 '자격'이 있는 것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한편으로 그를 왕따에서 구해주려면, 다른 학생들로부터 공격받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과 싸워 이겨야 할 수 있다는 것이죠.

종교단체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종교단체에서 몇 사람이 기적을 보았다고 주장하면 내 눈에도 그 기적이 보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내게도 기적이 보인다'고 말하면 그 말 자체가 다시 옆사람에게 영향을 주어 그의 눈에도 기적이 보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