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론 이야기 - 유리(琉璃 glass)와 죽은 아몬드(?)

먼 옛날, 길을 가던 여행자가 어느 강가 모래밭에서 모닥불을 피우고 야영을 했습니다.
다음날 아침, 짐을 챙기고 모닥불을 끄던 여행자는 놀라운 것을 발견했습니다. 모닥불 밑의 모래가 녹아 반짝이는 고체가 되어 있는 것이었습니다. 유리의 발견이었습니다.

삼국시대 유리
그 이후 유리는 그릇 또는 장신구로서 고대사회에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특히 투명하게 반짝이는 유리구슬 같은 장신구들은 귀족들의 인기가 높았습니다. 유리구슬을 만들어 파는 장사치들은 큰 돈을 벌게 되었습니다.

다이아몬드
시간이 지나 새로이 다이아몬드가 발견되었고, 다이아몬드를 깎으면 유리구슬과는 비교도 안되게 아름다운 광채가 난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순식간에 다이아몬드는 유리구슬을 제치고 귀족들의 장신구가 되었습니다. 유리는 장신구의 역할에서 그릇의 역할만을 하게 되었습니다.

유리구슬이 헐값이 되자, 유리구슬 장사치들은 애가 탔습니다. 그들은 유리구슬의 가치를 올리기 위해 무슨 일이든 해야 했습니다.
그 단단한 다이아몬드를 정밀하게 깎기 위해 보석세공사들이 어떤 고생을 하는지에는 전혀 관심 없던 그들은 유리구슬을 다이아몬드와 비슷하게 대충 깎아내고는,
"봐라, 이 유리보석이 다이아몬드보다도 더 아름답지 않느냐? 이것이 진짜 보석이다. 모두들 다이아몬드 따위는 버리고 이 유리보석들을 가지고 다녀라"
라고 거의 강요에 가까운 권유를 하고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이 유리란 유리를 모두 모아 보석을 만드는 바람에 그릇을 만들 유리가 동이 났지만, 그리고 그들이 기껏 만든 유리보석은 다이아몬드와 부딪혀 산산조각이 나 버리지만, 그들의 관심은 이미 '유리보석의 권위를 되찾자(그래서 비싼 값에 팔자)' 뿐이었습니다.

옛날, 사람들의 지식이 보잘것없었을 때는 종교의 가르침이 진리라고 여겨졌습니다. 성경이나 불경의 가르침 말이죠. 특히나 (글자 그대로 진리라 여겨졌던) 성경은 그대로 역사서였고 과학서적이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 경전들의 오류가 하나씩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고고학적 발견으로 경전이 역사서가 아니라는 것이 알려졌고, 과학의 발전으로 경전이 과학책이 아니라는 것이 드러났습니다.

하지만, 윗 이야기에서 음식그릇은 다이아몬드로는 만들 수 없고 오직 유리로만 만들 수 있듯이, '삶의 지침서'로서의 역할은 과학책이나 역사서로서는 불가능했습니다. 그러므로 많은 종교인들은 경전의 역할을 '삶의 지침서'로 제한하고 있습니다. 불교에서는 아예 '불경이 과학적 진리다'라고 주장한 적이 없고, 천주교에서도 진화론을 인정하는 등 과학책으로서의 역할을 버리는 쪽으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다만 일부 개신교만이 '아~~ 옛날이여'만을 외치며 유리그릇 역할도 포기한채 유리보석을 만드는 삽질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유리는 유리그릇을 만들었을때 가장 아름답습니다. 유리로 보석을 만든다면 '가짜보석'이라는 비웃음만 받으며 다이아몬드와 부딪혀 깨질 뿐입니다. 유리는 다이아몬드가 할 수 없는 일을 할 때 가치가 있습니다.
성경을 '삶의 지침서'로 인정할 때 성경의 가치가 올라가고 성경의 권위가 높아집니다. 하지만 성경을 과학책이나 역사서로 이용하려 한다면 성경은 '사이비과학', '거짓역사' 취급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에 먹칠을 하는 것은 무신론자들이 아닙니다. 성경을 과학책 취급하는 창조론자들이 성경에 먹칠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댓글 1개:

  1. 싱바싱바:

    어떻게 저런 비유를 생각해내셨는지.. ;
    정말 존경스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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